기획·칼럼

표절자로 몰린 현대 유전학 창시자

노벨상 오디세이 (19)

1910년 5월 미국 콜롬비아대학 실험동물학의 연구실에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정상적인 노랑초파리를 장님 초파리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 흰눈 초파리가 탄생한 것. 연구진을 이끌던 토머스 모건 교수는 어떻게 해서 돌연변이가 생겼는지를 추적하는 대신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돌연변이로 탄생한 흰눈 초파리와 정상적인 빨간색 눈을 지닌 초파리를 교배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다음 세대로 탄생한 1240마리 개체 모두가 빨간색 눈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첫 번째 교배로 태어난 빨간색 눈 초파리들끼리 다시 교배시킨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손 중 1/4이 흰눈 초파리였던 것. 흥미롭게도 그 흰눈 초파리들은 모두 수컷임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모건은 빨간색 눈 형질이 흰색 눈에 대해 우성이며, 초파리 눈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X염색체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전자로서의 염색체 기능을 발견한 토머스 모건 박사. ⓒ Public Domain

유전자로서의 염색체 기능을 발견한 토머스 모건 박사. ⓒ Public Domain

암컷의 경우 두 개의 X염색체를 지니므로 한 개의 흰눈 형질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X염색체가 우성이면 우성 형질인 빨간색 눈이 된다. 그에 비해 수컷은 단 하나의 X염색체를 지니고 있으므로 열성 형질을 지닐 경우 그것이 그대로 발현돼 흰색 눈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 이 실험 결과는 멘델의 유전법칙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완두의 교배 실험을 통한 멘델의 유전 법칙은 당시 유전에 관한 낡은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견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유전학에 주어진 최초의 노벨상

그 후 세포와 세포핵에 대해 알게 되고 염색체가 발견되는 등 유전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점차 발전하면서 멘델의 법칙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거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유전자로서의 염색체 기능을 발견한 모건 박사의 그 실험이었다.

추가 연구를 통해 모건 박사는 유전 염색체 지도에서 유전인자가 목걸이의 구슬처럼 염색체에 배열되어 있음을 밝혔다. 놀라운 것은 그 같은 연구결과 대부분이 염색체를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초파리 교배의 통계적인 분석으로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그의 연구는 멘델의 통계적 연구 방법과 현미경적 방법을 결합한 셈이었다.

모건 박사의 연구가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초파리를 실험대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었다. 초파리는 다음 세대가 태어나기까지의 시간이 12일에 불과해 1년에 약 30세대까지 번식이 가능하다. 실험실에서 기르기 쉬운 이 동물은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기도 쉬울 뿐더러 염색체의 수가 단 4개뿐이다. 즉, 초파리는 그때까지 알려진 어떤 실험대상보다 우수했던 것이다.

그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토머스 모건은 193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유전학에 주어진 최초의 노벨상이었다. 현대 유전학의 탄생을 알린 연구라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그런데 토머스 모건의 노벨상 수상을 놓고 한 과학자가 반발하고 나섰다. 바로 그의 제자였던 허먼 멀러다. 멀러는 초파리 염색체의 유전자 지도를 만든 것은 대부분 자신의 업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이 쓴 논문을 모건이 베끼기도 했다며, 스승을 표절자로 몰아붙였다.

사실 모건 교수의 업적은 실험실에서 함께 연구한 많은 학생들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노벨 위원회도 공식적으로 명시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엔 이의를 제기한 멀러를 포함해 스터트반트, 브리지스 등이 포함되며, 그들은 모건학파라고 불렸다.

모건의 업적과 제자들의 업적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노벨 위원회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모건에게 단독으로 노벨상을 안긴 까닭은 공동 수상자를 최대 3명까지만 허용하는 노벨상의 규칙 때문이었다.

즉, 모건과 멀러, 스터트반트, 브리지스까지 4명에게 공동 수상을 할 수 없어 모건에게만 상을 주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모건은 노벨상 상금을 제자들에게도 분배해 자식들의 학비를 내는 데 보태게 했다.

스승에 이어 제자도 초파리 연구로 노벨상 수상

멀러가 스승인 모건을 표절자라고 몰아붙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평소 모건의 태도도 문제가 됐다고 봐야 한다. 함께 연구하는 제자 중 누군가가 모건의 생각이 틀렸음을 명백히 보여주며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모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건이 제자들의 의견을 경청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태도였다.

돌연변이 재현 방법을 발견해 194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허먼 멀러. ⓒ Indiana University

돌연변이 재현 방법을 발견해 194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허먼 멀러. ⓒ Indiana University

이처럼 스승과 충돌하긴 했으나 멀러는 초파리의 돌연변이를 인공적으로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일찌감치 연구를 시작했다. 초파리에 다양한 세기의 X선을 쬐는 실험을 하던 중 멀러는 드디어 방사선을 조사한 초파리의 새끼들은 거의 100%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실험 결과는 1927년 논문으로 발표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막 힘을 얻어가던 멀러의 연구는 차질을 빚었다. 당시 미국에 발생한 대공황이 문제였던 것. 그로 인해 주식 시장이 붕괴하자 멀러는 자본주의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평소 사회주의 성향의 우생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베를린과 레닌그라드를 거쳐 1933년 소련 모스크바 유전학연구소로 가버렸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우생학 연구에 매진하려던 그의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다.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이 유전된다는 주장을 펼친 소련의 생물학자 리센코와 결국 충돌한 것이다. 리센코는 멘델과 모건파의 유전학을 탄압했으며, 결국 멀러는 4년 만에 소련을 탈출해 영국을 거쳐 1940년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허먼 멀러는 돌연변이 현상을 모든 실험실에서 간단하게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194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도 드디어 멘델과 스승인 모건에 이어 현대 유전학 창시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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