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태양에서는 매일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다

신동호의 '발견의 즐거움'

눈으로 보는 태양은 고요하다. 하지만 대기권 바깥에서 태양을 바라보면 태양의 운동은 놀랄 만큼 격렬하다. 이런 태양 활동 때문에 비행 중인 콩코드 초음속비행기에서 느닷없이 방사선 경고가 울린다. 또 인공위성이 망가져 통신이 두절된다. 급작스러운 정전 사고가 일어나 도시가 암흑의 세계가 된다. 모두 태양의 활동 때문이다.



태양 중심부에서는 1천500만 도의 고온 고압 상태에서 수소의 원자핵 4개가 뭉쳐 헬륨 원자핵 하나가 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질량이 0.7% 줄어들면서 질량이 막대한 에너지로 바뀌어 태양이 열을 내뿜는다. 그리고 이 에너지의 일부가 코로나 형태로 지구에 도착한다.



1995년 12월 미국항공우주국과 유럽항공우주국이 함께 발사한 ‘소호위성’(SOHO)은 태양에서 지구에 영향을 미칠 만큼 격렬한 코로나 물질 방출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밝혀냈다. 이 위성은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라그랑지안 지점에 있다. 이 지점은 지구와 태양으로부터의 중력이 비기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 위성을 놓아두면 위성은 늘 그 지점에서 태양을 관찰한다. 이 위성은 24시간 쉬지 않고 태양 관측 자료를 보내오고 있다.



우리가 가시광선으로 보는 태양은 온도 6천 도인 태양의 표면, 즉 광구의 모습이다. 태양 주변을 둘러싼 코로나는 온도가 수백만 도까지 올라간다. 여기에서는 가시광선보다 엑스선과 자외선 영역의 에너지가 주로 방출된다. 하지만 엑스선과 자외선은 지구 대기에 흡수되기 때문에 대기권 밖 과학 위성을 통해서만 관측할 수가 있다.



소호 위성은 자외선 관측 활동을 통해 태양의 코로나가 갑자기 수백만 킬로미터까지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면서 물질을 대량 방출하는 현상을 계속해서 포착했다. 코로나 물질 방출 때 나온 고속의 입자들은 지구의 극지방에서 강한 자기장과 충돌해 오로라를 연출하며 지구의 자기장을 교란시켜 통신 등을 마비시킨다. 이것이 태양풍이다.



특히 태양 활동이 왕성했던 1991년 3월에는 캐나다 퀘벡 지방에서 정전 사고를 일으켜 9시간 동안 암흑 상태를 만들었다. 또 통신위성이 고장 나는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우주 환경예보를 도입했다.



왜 우리는 태양을 감시해야 할까?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반도체 회로의 선폭은 좁아지고 이를 따라 흐르는 전기도 아주 약해진다. 이럴수록 반도체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지만 전자파나 태양풍에 대해서는 매우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강력한 태양풍은 반도체 내부의 전자의 흐름을 바꾸거나 회로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



태양이 가끔씩 코로나 물질과 플레어 또는 홍염을 분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장의 변화 때문이다. 실제로 플레어가 분출된 뒤에는 태양 표면의 자기장이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태양 폭발의 에너지 원천이 자기 에너지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플레어가 자기장이 강한 흑점 주변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플라스마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플라스마 상태를 보기 힘들지만 우주는 99% 이상이 플라스마 상태다. 태양을 포함한 모든 별은 플라스마다. 우주에서는 고체나 액체 또는 기체 상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구와 같은 행성에만 고체나 액체 또는 기체가 존재한다.



원자를 수만 도로 달구면 원자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가면서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다. 이런 상태를 플라스마 상태라고 한다. 기체는 전기를 띠지 않지만 플라스마 상태의 기체는 전기를 띠게 된다. 따라서 플라스마가 움직이면 자기장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소호 위성의 가장 큰 업적은 태양에서 어떻게 플라스마가 이동하면서 자기장이 생겼다가 없어지는지를 밝혀낸 것이다. 이를 밝히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소호 위성의 마이켈슨 도플러 이미저(MDI)이다. 이 장치는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5분 간격으로 태양 표면의 진동을 측정한다. 도플러 효과란 달려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멀어져 가는 기차의 기적 소리보다 더 높은 음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태양 표면을 MDI로 관측하면 태양 표면이 지구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진동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태양 표면은 몇 분 동안에도 수십~수백 킬로미터씩 수직 상승 또는 하강한다.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진파를 분석하면 태양 내부의 움직임까지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이 깊이 2만5천㎞까지 태양 내부의 온도와 플라스마 흐름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태양의 자전 속도는 적도 근처가 극지방보다 빨라 적도 근처의 기체가 1년 뒤에는 극지방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제트기류나 무역풍 같은 기류가 태양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런 플라스마 기류가 태양의 자기장에 변화를 일으켜 국부적인 태양 폭발과 물질 분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태양이 내뿜는 빛과 열은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상 모든 생명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가 더욱 작아지고 통신과 원격 탐사에 인공위성이 쓰이면서 태양은 현대 문명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늘 태양과 함께 태양에 의존해 생활한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든다. 하지만 태양도 수명이 있다. 태양이 연료인 수소를 다 태워 죽게 되는 약 50억 년 뒤에는 적색 거성이 된다. 이때가 되면 태양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태양 표면이 거의 지구에 이를 만큼 부풀어 오르게 된다. 그때가 되면 태양이 가벼워져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더 먼 곳으로 이동하지만 지표면의 온도가 1천200도까지 올라가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게 된다.



한 가지 더. 태양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빛이 빠져 나오는 데는 무려 1천만 년이 걸린다. 태양 내부가 워낙 높은 밀도의 물질로 꽉 차 있어 방출된 빛이 흡수와 방출을 거듭하면서 태양 표면까지 나오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빛은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기도 전에 만들어져 지금 우리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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