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2019

태반의 미스터리, 밝혀질까

미국 NIH 인간태반프로젝트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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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 2010년 3월 24일 서초구 우면동 국민임대주택단지의 한가운데에 있는 야산 일대 1만5250㎡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산이라고도 할 수 없는 높이의 그 야산 정상에 있는 석조물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했다.

경기도 가평군 서면에는 해발고도 185m의 야트막한 야산이 하나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부터 제작되는 고지도마다 다른 산은 빠뜨려도 이 야산의 위치는 정확히 기재했다. 또한 산 아래에 있는 마을들 중 상당수가 그 산의 이름을 차용해 지명으로 사용할 만큼 지역의 중요한 산지로 인식되어져 왔다.

서울 우면동과 가평군 서면에 있는 야산의 명칭은 똑같이 ‘태봉산’으로 불린다. 바로 이 이름 속에 문화재로 지정되고, 고지도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야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면동의 태봉산 정상에 있는 석조물은 조선시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태실이며, 가평군 서면의 태봉산은 조선시대 중종의 태가 봉해져 있는 곳이다.

‘태(胎)’는 산모가 출산할 때 신생아와 함께 나오는 태반이나 탯줄 등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왕자와 공주의 태를 버리지 않고 정성껏 보관했다가 길지를 택해 묻었다. 이를 태실이라고 하며, 태실을 모신 산은 대개 ‘태봉산’이라 불렸다. 태봉산을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태봉골이나 태봉리, 태산 등의 지명은 거의 대부분 태실과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태반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인간태반프로젝트가 시직됐다. 그림 속의 빨간 부분이 바로 태반이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태반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인간태반프로젝트가 시직됐다. 그림 속의 빨간 부분이 바로 태반이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태반이란 임신 후 모체의 자궁 내벽에 생기는 장기로서, 태아와 탯줄로 연결된다. 태반은 기본적으로 모체와 태아 사이에서 태아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물질교환을 매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태반을 통해 엄마는 산소와 영양분을 태아에게 공급하고, 태아는 생성된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모체로 넘겨준다. 아직 각종 기관이 형성되지 않은 태아에게 있어 태반은 소화기관 및 호흡기관, 배설기관 등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양수가 터지면서 태아가 출산하면 태반은 10~20분 후 자궁에서 벗겨져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태반생식을 하는 포유류는 어미가 출산 직후 자신의 태를 먹어버린다. 태반이 영양덩어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먹는 대신 태를 소중히 보관하는 풍습을 발달시켰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옛날엔 태를 신성한 곳에 묻었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파라오의 태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사후 함께 묻는 풍습이 있었다.

태반은 전 생애 건강에 영향 미쳐

이처럼 태반을 소중히 여긴 데는 이유가 있다. 기능이 불량하거나 자궁과 약하게 결합된 태반은 태아를 굶겨 성장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임신중독증을 일으켜 조산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태반의 기형은 후에 성인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태반에 결함이 생겨 산모와 태아 사이의 대화가 중단될 경우 정상적으로 출산해도 몇 년 후 자폐증이나 아스퍼거증후군 같은 발달 장애를 나타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염색체 이상이나 유전질환 같은 경우에도 태반의 생물학적 이상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태아는 모체와 혈액형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이처럼 혈액형이 다르면 피가 섞여 응집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모체와 태아는 서로 유전적 구성이 다르다. 따라서 모체의 면역체계로부터 태아가 공격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태반은 이 같은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한 태반에는 줄기세포와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 등이 풍부해 의학자들로부터 신약 개발의 텃밭으로 주목받아 왔다.

태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 중 하나다. 그러나 태반은 인간의 장기 중에서 연구가 가장 미진한 축에 속해 지금까지 거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우선 태반은 외견상으로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태반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서 건강한 임신부의 태반도 비정상적인 모양을 가질 수 있으며, 반대로 질병에 걸린 태아에게서 적출된 태반이라도 멀쩡해 보일 수 있다.

또 하나, 포유류는 각각 다른 생물종마다 태반 발달이 특이하므로 동물을 모델로 한 태반 연구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의 태반을 직접 연구해야 하는데, 현재의 초음파나 자기공명영상 같은 기술로는 태반에 관한 제한된 관점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사성동위원소 같은 추적물질(tracer)을 태반에 주입해 관찰할 수도 없다. 윤리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산 직후 얻을 수 있는 태반도 기능적인 문제에서 한계를 보인다. 예를 들어 모체의 바이러스가 태아로 넘어가지 못하는 막는 태반 양막세포의 방어메커니즘은 태아가 태반에 연결되어 있는 동안만 작동하며 출산 후 24시간 내에 소멸돼 버린다.

임신 중 실시간으로 태반 조사 계획

그런데 지난 2월 26일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이 드디어 인간태반프로젝트(Human Placenta Project ; HPP)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초점은 태반이 지닌 정상적 혹은 비정상적 기능을 임신 기간 내내 실시간으로 이해하는 것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실시간으로 태반을 조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다. 나노입자를 이용해 산모의 순환계에서 태반으로 건너가고, 스캔에서 가시화활 수 있는 이미지 기술 개발이 그중 하나다.

그밖에도 산모의 혈액에서 태아의 DNA를 테스트하는 기술부터 칩 위에 인공태반을 만드는 기술까지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런 기술이 개발된다면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장치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 ‘칩 위의 초소형 태반’ 혹은 ‘임신기간 내내 태반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분자센서’ 같은 첨단기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NIH가 앞으로 4년 동안 415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인간태반프로젝트에는 많은 연구단체들이 관심을 보이며 지원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완료될 경우 그동안 출산 후 의료 폐기물 신세를 면치 못했던 태반이 그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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