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코 모양 결정하는 유전자 찾았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71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 블레즈 파스칼

“넌 다 좋은데 콧대가 너무 센 게 단점이야.”

“그 친구 코를 납작하게 해줬지.”

일상생활에서 코는 단순히 얼굴 가운데 솟아있는 호흡기의 일부가 아니다. 그 사람의 자존심은 물론 인격이나 품위까지도 코를 통해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코의 역할을 절대적이다. 성형수술에 돈을 들일 결심이 서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곳도 코일 것이다.

황신혜, 김태희, 장동건으로 대표되는, 소위 ‘조각 미인들’도 알고 보면 다 코가 잘생겼다. 코의 형태가 완벽하지 않고서는 개성있는 외모를 지녔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교과서적인 미인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기원전 1세기 이집트에서 제작된 대리석 두상으로 클레오파트라로 추정된다. 현재 독일 베를린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베를린구박물관

기원전 1세기 이집트에서 제작된 대리석 두상으로 클레오파트라로 추정된다. 현재 독일 베를린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베를린구박물관

최근 수년 사이 게놈분석비용이 크게 떨어지고 빅테이터 처리기법이 눈부시게 향상되면서 얼굴의 형태를 결정짓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가 한창이다. 얼핏 생각하면 얼굴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전자 수백 개가 복잡하게 얽혀 작용할 것이므로 불가능한 일 같지만 ‘전장유전체연관분석연구(GWAS)’라는 기법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즉 각 개인의 신체 특성을 수치화한 뒤 게놈(정확히는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분석해 데이터를 통계처리하면 어떤 신체 특성과 연관을 보이는 SNP를 찾을 수 있다.

얼굴 중간이 유전성 커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5월 19일자에는 게놈에서 코의 모양에 관여하는 SNP 자리 네 곳을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영국 런던대 유전학연구소 앙드레 뤼즈-리나레 교수팀과 공동 연구팀들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있는 중남미 5개국의 6000여명의 얼굴 사진(정면과 측면)으로 얼굴의 특징을 결정짓는 14가지 수치를 측정했다. 즉 정면사진에서는 코뿌리 폭, 콧날 폭, 콧방울 폭, 코끝 모양, 광대뼈 돌출, 윗입술 두께, 아랫입술 두께, 턱 모양을 측정했다. 측면사진에서는 이마선, 눈 위 뼈 돌출, 콧등의 선, 코기둥(코끝에서 인중 사이) 기울기, 코 높이(얼굴면에서 코끝까지 길이), 턱 돌출을 측정했다.

그리고 이들의 게놈에서 SNP를 분석한 결과 코의 모양과 관련이 있는 SNP 자리 네 곳을 찾았다. 즉 4번 염색체에 있는 SNP는 코기둥 기울기에 관여했고 6번 염색체에 있는 SNP는 콧날 폭에 관여했다. 또 7번 염색체과 20번 염색체에 있는 두 SNP는 콧방울 폭과 연관돼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SNP 자리에 있는 유전자의 기능을 살펴본 결과 코 모양 결정에 관여할 가능성이 높았다. 즉 4번 염색체 SNP 자리(코기둥 기울기)에는 DCHS2라는 유전자가 있는데 세포부착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다. 2014년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DCHS2 단백질은 척추동물의 안면육곽 발달과정에서 연골의 분화를 조절하는데 관여한다.

6번 염색체 SNP 자리(콧날 폭)에 있는 RUNX2 유전자는 전사인자, 즉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는데 그 변이가 개의 주둥이 길이에 관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중남미 사람 6000여 명의 얼굴 정면사진과 측면사진에서 14가지 특징을 측정해 이들 게놈의 SNP 분석 데이터와 통계처리해 각 특성에 관여하는 SNP를 찾았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이번 연구에서는 중남미 사람 6000여 명의 얼굴 정면사진과 측면사진에서 14가지 특징을 측정해 이들 게놈의 SNP 분석 데이터와 통계처리해 각 특성에 관여하는 SNP를 찾았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한편 7번 염색체 SNP 자리(콧방울 폭)에 있는 GLI3 유전자 역시 전사인자를 암호화하고 있는데 연골세포의 분화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이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는 안면윤곽에 기형을 보이는데 그 특성 가운데 하나가 코가 넓적한 것이다. 끝으로 20번 염색체 SNP 자리(콧방울 폭)에 있는 PAX1 유전자 역시 전사인자로 연골세포 분화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즉 GLI3 유전자와 같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유전자다.

이번 조사에서는 턱의 돌출 정도에 관여하는 SNP도 하나 찾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코의 모양에 관여하는 SNP였다. 왜 그럴까.

얼굴 형태의 유전성을 조사한 신체인류학 연구를 보면 얼굴을 상중하로 나눴을 때 중간부분, 즉 코가 포함된 영역이 유전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할 때 코의 모양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으로 우리 경험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따라서 얼굴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 사냥에서 코 유전자들을 많이 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각각의 SNP가 그 특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1% 내외로 나왔다. 즉 이번 연구결과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어떤 SNP 조합의 결과인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10927)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