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8

‘코딩 교육 봉사’ 나선 고3 삼총사

'설리번 프로젝트' 이찬희 김동우 배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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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강의실. 교복을 입은 열댓 명의 학생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인공지능(AI) 강의를 듣고 있는 이들은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학생들. IT특성화고 학생들이 외부 IT교육을 받는 건 이상할 게 없다.그런데 이들은 학교에서 시켜서도 아니고 누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필요해서 달려온 학생들이다.

교육을 신청한 이유가 더 독특하다.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려면 트렌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나 뭐라나. 아니, 배우는 학생이 누굴 가르친다고? 진로와 졸업 준비에도 시간이 빠듯한 고등학생이 도대체 무슨 교육을, 누구한테 한다는 얘기일까.

‘모든 헬렌들에게 설리번의 기회를’이라는 모토를 내건 이들은 다른 중고생들에게 무료 코딩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기투합한 설리번 프로젝트 봉사단이다.

눈치빠른 사람은 이름에서 짐작했겠지만 헬렌 켈러의 가정 교사였던 앤 설리번 선생님의 역할을 빗대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지만 돈이 없는 친구, 코딩에 관심은 있지만 자신이 없는 친구, 딱딱한 코딩 교육에 흥미를 잃어버린 친구 등이 이들이 찾고 있는 ‘헬렌’들이다. 자신들이 그랬듯이 무엇이든 직접 재미있게 만들어보며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찾아내기 바라는 게 이들이 ‘설리번’을 자처하고 나선 이유다.

설리번 프로젝트를 2년째 이어가고 있는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이찬희(웹 프로그래밍과 3), 김동우(e비즈니스과 3), 배주웅(해킹방어과 3) 학생을 만나 설리번을 꿈꾸는 세 청춘의 세상을 향한 열망을 들여다봤다.(학생들의 대답은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정리했다.)

도움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설리번 프로젝트. 진학과 졸업 준비에 바쁜 고3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쪼개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찬희, 김동우, 배주웅 학생 ⓒ 조인혜/ ScienceTimes

도움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설리번 프로젝트. 진학과 졸업 준비에 바쁜 고3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쪼개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찬희, 김동우, 배주웅 학생 ⓒ 조인혜/ ScienceTimes

고3인데 대학 진학 준비로 바쁘지 않나.

= 한 명은 수시에 합격했고 둘은 정시 모집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짬 날 때마다 조금씩 준비한다. 그 와중에 설리번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하고 교육생 모집과 외부 지원 요청 등을 하고 있다. 설리번 홈페이지는 찬희가 수시 한 곳을 떨어져 정신이 없을 때 뚝딱 만들었다. 찬희는 주로 정신이 없을 때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설리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 지난해 10월 찬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 누구도 처음에는 코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 않나. 우리도 코딩에 대해 전혀 몰랐던 헬렌이었고 동네에서 프로그래밍, 코딩을 배우려면 시간이나 비용 그 어느 것 하나도 여의치 않았다. C언어나 자바 등의 책은 외계어처럼 어렵게만 보였고. 만들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고민이었을 때 지금의 학교를 들어가 IT를 정말 잘하는 친구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내가 원했던 것을 만들었다는 느낌, 내가 만든 것을 남도 쓸 수 있구나 하는 느낌, 그걸 우리는 느껴보았다. 그 느낌을 더 많은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 설리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같이 할 친구들을 모으는 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 우리 셋이 의기투합한 후 학교에서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았는데 20명이 참여했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 이외 홍보, 장소 섭외, 비용 정산 등 각종 처리할 일은 우리 셋이 담당하고 다른 친구들은 커리큘럼과 교육만 맡는다. 올해는 1~2학년들이 추가로 참여해 30명이 넘었다.

교육은 어떻게 진행하나.

= 우선 교육을 담당하는 친구들이 각자 하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커리큘럼을 만든다. 올해는 ‘덕질을 위한 나만의 팬페이지 만들기’, ‘아두이노로 시작하는 생활개선 프로젝트’, ‘나만의 방범장치 만들기’, ‘취미로 하는 웹 해킹’, ‘식물과 함께하는 코딩 교육’, ‘캔버스로 구현하는 일상 속 과학’, ‘Unity 3D게임 개발하기’ 등이 있다.

내용은 담당자가 알아서 하되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직접 만들어보는 내용으로 꾸린다. 커리큘럼마다 난이도 차이가 있고 교육 기간이나 모집정원도 조금씩 다르지만 12개 커리큘럼별로 8~10명씩 교육하는 형태다. 장소도 대상에 맞게 서울, 안산, 수원 등 10여군데서 진행한다. 1월 3일까지 설리번 홈페이지(https://sullivanproject.in)에서 신청을 받고 1~2월 방학기간을 이용해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세 친구의 명함이 예술이다. 꿈과 열망이 살아숨쉬는 문장이 이런 것 아닐까. ⓒ 조인혜/ ScienceTimes

세 친구의 명함이 예술이다. 꿈과 열정이 살아숨쉬는 문장이 이런 것 아닐까. ⓒ 조인혜/ ScienceTimes

지난해 교육에 대한 반응은.

= 올해와 비슷한 일정으로 68명에 대해 교육을 진행했는데 삽질도 많이 하고 반성도 많이 했다. 시간 여유가 없어 번갯불에 콩볶는 식으로 시작됐고 미처 준비가 안된 것들도 좀 있었다. 무엇보다 IT교육을 듣기만 하다가 막상 가르치려고 하다보니 전혀 감이 없었던 거다. 첫날 강의를 시작했는데 ‘어, 이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보고 무척 당황했다. 선생님의 고충을 처음으로 이해했다(웃음). 첫 강의 후 나머지 커리큘럼을 완전히 다 뜯어고쳐 다시 구성했다. 동우는 그런 점에서 처음인데도 성공한 케이스다. 처음부터 쉽게 하자는 목표를 세운 게 효과가 난 것 같다. 그래도 당시 교육받은 아이들이 좋았다고 말해주고 지금도 진로 상담을 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다.

어려운 점은 없는지.

= 교육받을 대상을 모으는 게 가장 어렵다. 분명 우리가 도움이 되는 학생들이 있을텐데 학교에만 있다보니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고 다른 그룹을 찾아 다니며 부탁도 하는데 홍보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장소나 비용 문제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비영리IT지원센터, 경기마을교육공동체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여러 장소가 필요하다보니 추가 비용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책자도 많이 필요한데 e브레인, NHN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지만 역시 아직 부족한 편이다.

중간에 그만두자고 한 사람은 없었나. 

= 전혀 없었다. 그냥 계속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동우는 명함에도 썼지만 컴퓨터를 하려고 여기 학교를 왔는데 이제는 교육 자체를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강해졌다. 코딩 교육 동아리를 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육에 참여한 학생이 응용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올 때 정말 보람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면 항상 재미있다. 서로 막 씹기도 하지만(웃음).

인터뷰를 마치자 저녁 8시.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밤길을 나선다. 아직 세상은 괜찮아 보인다. ⓒ 조인혜/ ScienceTimes

우린 누군가에게 헬렌이고 또 설리번이다. 인터뷰를 마치자 저녁 8시.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밤길을 나서는 세 친구들. 아직 세상은 괜찮아 보인다. ⓒ 조인혜/ ScienceTimes

졸업 후 설리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나.

= 우리가 졸업해도 지금 재학중인 많은 학생들이 설리번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다. 처음부터 설리번이 헬렌을 교육하고, 그 헬렌이 다시 설리번이 되는 이상적인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초 ‘설리번교육연구소’라는 이름의 설리번 프로젝트 지원 단체를 정식으로 설립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다시 진지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수치로 말하자면 2018년까지 300명 이상의 선생님을 모아 700명 이상의 헬렌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 찬희 : IT 외에 심리학, 인문학도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 영원히 가는 교육기관을 세우고 싶다. 시간과 공간, 과목 등에 제한받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 정답게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그런 곳.

= 동우 :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스타트업을 실컷 경험한 후 여건이 된다면 이상적인 학교를 세우고 싶다.

= 주웅 : 많이 배우고 싶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난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기회를 접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리고 설리번을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가도록 키우고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하던 이 ‘세 친구’는 이제 자신들의 인생을 차곡차곡 만들고 있다. 생각을 하면 행동으로 옮기고, 도움을 받으면 되돌려주고, 나보다 우리가 더 중요한 가치임을 알아차린 대견한 청춘 앞에 부끄러운 기성세대는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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