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커피머신, 실험기기로 변신!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74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커피를 발암물질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커피가 방광암 등 각종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논문들을 바탕으로 26년 전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B군으로 분류했는데, 최근 관련 논문 1000여 편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커피 두세 잔은 몸에 좋다는 게 상식이 된 요즘 커피가 26년 동안이나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돼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의아하다.

지난 5월 25일 학술지 ‘분석화학’ 사이트에는 커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공개됐다. 커피 자체 얘기는 아니고 커피를 뽑아내는 에스프레소머신이 훌륭한 분석장비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대부분은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다. 즉 원두를 갈아 에스프레소머신에 넣고 고압의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 커피액, 즉 에스프레소를 얻는다.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에 입맛을 들임에 따라 직장이나 집에 소형 에스프레소머신을 갖춘 사람들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좀 더 편리한 캡슐에스프레소머신이 인기다. 매번 원두를 갈아 넣는 번거로움을 겪는 대신 원두 분말이 들어있는 캡슐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다.

흙과 커피분말의 유사성에 주목

스페인 발렌시아대 분석화학과 프란세스크 에스테베-투리야스 교수팀은 실험에 지친 연구원들이 커피브레이크 때 애용하는 캡슐에스프레소머신으로 토양이나 침전물 시료에서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를 추출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는 벤젠고리가 여럿 있는 분자로 유기물질의 불완전연소로 발생한다. 좀약으로 알려진 나프탈렌도 PAH의 하나다.

PAH는 산불 등 자연적으로도 만들어지지만 대부분은 화력발전소나 쓰레기소각로 등에서 나온다. 보통 숲의 토양에는 1kg 당 5~100㎍(마이크로그램) 수준의 PAH가 존재하고 도심 토양에는 600~3000㎍ 수준이다. 도로의 먼지에는 8~300mg(밀리그램)까지 들어있다.

많은 PAH가 발암물질로 규정돼 있어서 토양이나 침전물 등의 PAH 수치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분석방법은 문제가 있다. 즉 전형적인 화학실험실 방법은 시료에서 PAH를 추출하는데 유기용매가 많이 쓰이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 자체가 환경친화적이지 못하고 효율이 낮다는 말이다. 반면 초음파추출이나 초임계유체추출 등 최신 방법은 분석장비가 비싸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다.

캡슐에스프레소머신으로 토양 속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고압의 뜨거운 용매가 캡슐에 들어있는 토양 시료를 통과하며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같은 물질을 추출하는 메커니즘이다. ⓒ 분석화학

캡슐에스프레소머신으로 토양 속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고압의 뜨거운 용매가 캡슐에 들어있는 토양 시료를 통과하며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같은 물질을 추출하는 메커니즘이다. ⓒ 분석화학

연구자들은 고압의 뜨거운 물로 커피가루에서 커피성분을 추출하는 것이나 흙에 들어 있는 PAH를 추출하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보고 시도를 해봤다. 즉 농도를 알고 있는 PAH 혼합물을 섞은 흙 시료를 캡슐에 넣고 추출해 얻은 ‘PAH 에스프레소’를 액체크로마토그래프로 분석해 PAH분자들의 농도를 구했다. 그 결과 많은 PAH 분자가 거의 다 회수됐지만 일부 소수성이 큰, 즉 물에 잘 안 녹는 분자들은 회수율이 낮았다.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출 용매 조성을 바꾼 실험을 해 물과 유기용매인 아세토니트릴(CH3CN)이 6:4인 최적의 용매조성을 찾았다. 최종적으로 토양 시료 5그램을 캡슐에 담아 72도에서 혼합용매 50밀리리터로 11초 동안 추출하는 방법을 확립했다. 캡슐에스프레소머신으로 추출해 얻은 PAH 수치 데이터는 기존 추출법으로 얻은 데이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실제 토양시료를 분석해봤다. 즉 고속도로 주변과 트럭 주차장, 공업단지 등에서 구한 시료 5종을 대상으로 에스프레소머신 추출법과 기존 방법으로 PAH 수치 데이터를 얻었다. 그 결과 역시 두 방법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토양뿐 아니라 식품을 포함해 고체인 모든 시료에서 농약과 계면활성제 등 다양한 물질의 수치를 분석하는데 캡슐에스프레소머신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에스프레소머신을 한 대 사서 여러 식재료로 추출실험을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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