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캐낼수록 의문투성이 계획도시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33) 마추픽추

고고학자였던 미국의 예일대 하이럼 빙엄 교수는 페루 우루밤바 계곡의 산꼭대기에 고대 도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나서기로 했다. 그가 1911년에 원주민 소년의 안내를 받아 산 정상에 오르자 계곡 어디에서 올려다보아도 보이지 않던 도시의 풍경이 어느 순간 탁 펼쳐졌다.

황홀한 풍경에 홀린 빙엄 교수는 원주민 농부에게 그 도시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영어를 알 리 없던 농부는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줄 알고 ‘늙은 봉우리’라고 대답했다. 인디언들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는 ‘마추픽추’였다.

400여 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공중도시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추픽추를 건설한 잉카는 인구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광대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피사로가 이끄는 단 168명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에 의해 주민들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그 이후 마추픽추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해발 2430m에 자리한 마추픽추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완벽한 계획도시다. ⓒ UNESCO / Author : F. Bandarin

해발 2430m에 자리한 마추픽추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완벽한 계획도시다. ⓒ UNESCO / Author : F. Bandarin

이처럼 스페인 정복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바람에 마추픽추는 오히려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안데스 산맥에서 가장 매력적인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은 잉카 제국의 마지막 근거지이자 놀라운 건축기술과 고고학적 중요성을 지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로 꼽힌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계획도시

마추픽추를 세운 이는 통일 잉카제국을 건설한 9대왕 파차쿠티(재위 1438~1472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의 석조 건축물과 사다리꼴의 출입문이 그가 다스리던 당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건설한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해발 2430m에 자리한 마추픽추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완벽한 계획도시다. 왕실구역, 종교구역, 산업구역, 농부구역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산을 조각한 것처럼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발견 당시부터 의문투성이였던 마추픽추는 조사를 거듭할수록 현대 과학도 풀지 못하는 미스터리들만 쌓이게 했다. 궁전과 신전, 학교, 공장, 양수장 그리고 계단식 경작지까지 모두 바위를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이 같은 인공구조물은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화강암 산지가 지천에 흩어져 있기는 하나 그처럼 많은 석재를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옮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페루는 지진 다발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의 모든 건물에는 석회 같은 모르타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그 대신 바위와 바위가 맞닿은 면은 면도칼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추어져 있어 지진에 훨씬 더 안전하다.

태양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인 건축법도 놀랍다. 인공구조물 가운데 최대 규모로서 말굽 모양으로 만들어진 ‘태양의 신전’에는 창문이 2개 있다. 그중 동남쪽 창문은 동짓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통과하도록 건설돼 있다.

또한 서쪽 언덕의 맨 위에 세워진 ‘인티우아타나’는 절기를 알려주는 천체 시계 역할을 한다. 케추아어로 인티는 태양을, 우아타나는 연결이란 뜻인데, 중앙에 직육면체의 돌출부를 지닌 바위다. 그런데 매년 춘분과 추분이 되면 태양이 이 바위와 정확히 일치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과학적인 계단식 경작지와 관계수로

당시의 과학적 농경 기술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만명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마추픽추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가파른 산을 깎아서 만든 계단식 경작지다. 경작지 아래는 돌로 벽을 쌓았는데, 이 돌벽은 토양 유실을 막는 최적의 장치 역할을 한다. 이 경작지에서는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마약의 일종인 코카가 재배되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산 정상의 밭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마르지 않고 흐르는 관개수로 덕분이다. 마추픽추의 관개수로는 산에서 솟은 샘을 지하 수로를 이용해 16곳에 달하는 수원지로 이동시킨 후 주요 장소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 도시의 기능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검증된 기록이나 눈에 보이는 충분한 물적 증거가 없어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곳에서는 175구의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그중 150구가 여자이고 나머지는 어린 사내와 사제로 추정되는 남자였다.

따라서 마추픽추는 제례 의식을 올리는 장소였다는 설이 우세하다. 발견된 미라들이 태양의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발굴된 미라가 대부분 여성인 것은 스페인 군대가 침략해 왔을 때 남자들은 전쟁을 하러 산 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에서는 이곳이 파차쿠티 왕의 여름 별궁이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밖에도 잉카인의 우주관과 상징적으로 연결된 순례지였다는 설, 피난용 도시나 비밀 요새라는 설 등과 심지어 외계인의 지상기지라는 설까지 나왔다.

마추픽추는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됐다. 복합유산은 인간이 만든 문화유산과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된 자연유산이 모두 잘 보존된 지역이다. 이곳이 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놀라운 도시 창조물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돼 인간과 자연 환경의 상호 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의미에서였다.

마추픽추에는 양치식물과 야자나무 등의 울창한 산림과 함께 멸종 위기종 및 희귀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종으로는 오셀롯, 보아뱀, 안데스바위새, 안데스콘도르 등이 있으며, 희귀한 종인 안경곰에게도 이곳은 안전한 서식지를 제공한다. 그밖에 난쟁이사슴, 수달, 긴꼬리족제비, 팜파스고양이 등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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