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칭기즈칸 유전자의 비밀, 풀리나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이광호 교수, 칭기즈칸 일족 유전자 확인

진화 유전학자 크리스 타일러-스미스는 지난 2003년 미국 인류유전학회지에 흥미로운 논문 하나를 게재했다. 중앙아시아 남성 2123명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8%가 거의 동일한 Y염색체 배열을 갖고 있다는 것. 남성에게만 유전되는 Y염색체를 분석하면 부계 기원의 추적이 가능하다. 즉, 중앙아시아의 각지 흩어져 사는 남성들의 8%가 한 할아버지의 후예라는 의미였다.

연구진의 조사 결과 그 할아버지 조상의 생존 시기는 약 700년 전에서 1300년 전 사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시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남성 후보는 단 한 명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활한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이 바로 그 주인공.

8%를 중앙아시아 전체 남자 인구수로 환산하면 약 1700만명이다. 즉, 전 세계 남성의 0.5%가 그의 후손인 셈이다. 때문에 칭기즈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유전자를 남긴 이로도 꼽힌다.

칭기즈칸 가계의 상징인 송골매 문양이 새겨진 타반톨고이의 황금반지. ⓒ 중앙대 이광호 교수

칭기즈칸 가계의 상징인 송골매 문양이 새겨진 타반톨고이의 황금반지. ⓒ 중앙대 이광호 교수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1700만명이 그의 후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칭기즈칸의 DNA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1226년 서역 정벌 참가를 거부한 서하(西夏)를 응징하기 위해 출정한 칭기즈칸은 다음해 여름 지금의 간쑤성 칭수이현 시장 강변에서 병사했다. 그의 시신은 비밀리에 운구됐으며, 우연히 운구 행렬을 목격한 약 2000명의 사람들이 모두 살해됐다.

칭기즈칸 무덤 위치 아무도 몰라

당시 몽골에는 황족이 죽으면 밀장(密葬)하는 풍속이 있었다. 큰 나무를 잘라 속을 파낸 관에 넣은 시신을 땅 속에 묻은 다음 흙으로 덮고 땅을 다져서 평평하게 만든 후 그 위에 풀과 나무를 심어서 아무도 그 장소를 찾지 못하게 한 것. 몽골족 사료에는 칭기즈칸을 ‘들판에 묻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즉위했던 원나라 황제 16명의 무덤 역시 모두 아직까지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4년 8월 몽골 동부 수크바타르주 타반톨고이 지역에서 몽골 고고학 사상 가장 위대한 발굴이 이뤄졌다. 칭기즈칸 일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7체의 고인골과 유물이 발견된 것. 무덤 양식과 내부 구조, 부장품의 양과 질 등을 고려할 때 그중 5체(남성 3체, 여성 2체)는 몽골 황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이들 남녀 인골이 손가락에 착용하고 있던 황금반지가 결정적인 단서였다. 거기에 송골매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은 송골매를 국조(國鳥)로 삼고 아주 귀하게 여기는데, 거기엔 일화가 숨어 있다.

칭기즈칸이 어릴 때 사냥을 하다가 샘물을 마시려는데 송골매가 날아와서 세 번이나 방해한 것. 화가 난 그는 송골매를 활로 쏘아 죽인 후 다시 샘물을 먹으려다가 거기에 독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독이 들어간 샘물을 송골매가 일부러 먹지 못하게 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칭기즈칸은 송골매를 아주 귀하게 대했으며 이후 송골매는 칭기즈칸 일족의 상징이 되었다.

칭기즈칸 일족이 확실했지만, 당시 연구진은 세계 학계에 발표하기 위해선 좀 더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한 연구결과가 드디어 발표됐다. 중앙대 이광호 교수팀이 유전자 분석 등의 분자고고학적 연구를 한 결과, 타반톨고이에서 발견된 5체의 고인골이 칭기즈칸 생존 전후의 칭기즈칸 가계 일원일 가능성을 역사상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부계 기원이 유럽형으로 드러나

이들의 사망 당시 연령은 4명이 20대, 1명은 40-50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모계 기원을 알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남성 3명과 여성 1명은 극동아시아에 기원을 둔 동일한 모계 조상을 지녔으며 나머지 여성 1명만 모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상염색체 분석 결과에서는 이들이 모두 형제-자매간이거나 모자 관계인 한 가족의 일원으로 확인됐다.

놀라운 것은 부계 기원을 추적하는 Y염색체의 DNA 분석 결과다. 3명의 남성들은 모두 동일한 부계 기원을 보여 한 아버지의 자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 남성들의 부계 기원은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유형이 아니라 영국 등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분포하는 ‘R1b-M343’ 유형인 것으로 드러난 것. R1b-M343는 코카서스 기원의 서유라시아 유형이다.

즉, 이들의 모계 기원은 극동아시아형이지만 부계 기원은 유럽형으로서, 몽골로이드 인종과 코카서스 인종 간의 혼합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칭기즈칸을 비롯한 몽골 황족에 관한 세계적인 관심은 높지만, 그들의 무덤 및 가계 기원, 삶 등이 베일에 싸여 있어 현재까지 이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몽골 황족에 대한 세계 최초의 분자고고학적 연구로서 매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몽골 연구진이 타반톨고이의 고인골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한국 연구진에 맡긴 것은 기술력과 시설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고인골에 대한 분자고고학적 연구는 사실 들어가는 비용 및 인력, 시설 등에 비해 그 성과가 너무 미미하고 연구 효율이 떨어져 우리나라 연구 환경에서는 많은 이들이 꺼리는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동안 고인골 연구에 매달려 새로운 성과를 낸 이광호 교수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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