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0,2020

침팬지가 강한 걸까, 사람이 약한 걸까?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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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류는 뇌가 커지면서 두 가지 대가를 지불했다. 첫째, 식량을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둘째 근육이 퇴화했다. (중략) 침팬지는 호모 사피엔스와 논쟁을 벌여 이길 수는 없지만 인간을 헝겊 인형처럼 찢어버릴 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기대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었는데(물론 필자 개인 의견이다), SF임에도 과학적인 요소는 거의 없고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주제에 너무 매몰된 것 같았다. 아무튼 이번 3편으로 시리즈가 끝난다니 시원섭섭하다.

‘혹성탈출’은 획기적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를 투여 받은 동물실험용 침팬지들이 똑똑해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이 과정을 담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이 정말 재밌었다!). 유발 하라리가 저서 ‘사피엔스’에서 언급한 것처럼 몸통만 봤을 때 사람과 비슷한(다리가 짧기 때문에 키는 작다) 침팬지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일이 난다. 예전에 한 책에서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하다가 사고를 당해(주로 침팬지에 물려 살이 뜯겨 나가거나 손가락이 잘린 경우) 실험실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침팬지는 세 살만 되도 어른 한 사람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힘이 장사인데다 약물로 머리까지 좋아진다면 영화에서처럼 침팬지가 사람을 정복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라리가 언급에 따르면 인류는 ‘뇌가 커지는 대가로 근육이 퇴화했다’, 즉 침팬지의 완력이 센 게 아니라 사람이 약골이라는 말이다.

이런 통찰은 1920년대 이미 실험적으로 입증됐다. 즉 침팬지와 사람의 근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비교한 결과 침팬지가 두 배는 세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엄밀한 측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최근 개봉된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침팬지가 너무 인간화돼 사람을 압도하는 침팬지 특유의 ‘물리적인 힘’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연구결과 침팬지의 근력은 사람의 1.35배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최근 개봉된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침팬지가 너무 인간화돼 사람을 압도하는 침팬지 특유의 ‘물리적인 힘’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연구결과 침팬지의 근력은 사람의 1.35배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대사산물, 뇌보다도 근육에서 차이 커

지난 2014년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는 인류의 진화에서 ‘뇌 팽창과 근육 퇴화’가 실제 서로 맞물려 일어난 현상임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중국과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사람과 침팬지, 마카크원숭이, 생쥐를 대상으로 신체조직 다섯 곳에서 대사산물 패턴을 조사했다. 대사산물은 조직에서 일어나는 생체반응의 결과이므로 그 패턴이 다를수록 해당 조직의 성격(기능)도 다를 가능성이 높다.

연구자들이 선정한 네 종은 사람을 기준으로 진화상으로 거리(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시기)가 각각 다르다. 즉 침팬지(사람과)는 약 700만 년 전, 마카크(영장목)는 약 4500만 년 전, 생쥐(포유강)는 약 1억 3000만 년 전 갈라졌다. 따라서 사람의 대사산물 패턴은 침팬지, 마카크, 생쥐로 갈수록 점점 더 차이가 날 것이다.

연구자들은 뇌의 세 조직(전전두피질, 일차시각피질, 소뇌피질), 신장피질, 근육(허벅지골격근)에서 대사산물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일차시각피질이나 신장피질은 종 사이의 차이가 분류학적 거리에 비례했다. 그러나 소뇌피질의 경우 사람에서 편차가 좀 있었고 특히 전전두피질과 근육의 경우는 뚜렷하게 달랐다. 즉 침팬지를 기준으로 했을 때 1억 3000만 년 전 갈라진 생쥐와의 차이보다 불과 700만 년 전 갈라진 사람과의 차이가 더 컸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뇌(특히 전전두피질)와 근육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한 것이다. 한편 뇌에서도 일차시각피질처럼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곳은 침팬지나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사실 사람의 뇌에서 보이는 변화는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지만 근육의 변화는 연구자들도 깜짝 놀랄 결과다. 근육에서 변이의 정도가 뇌(전전두피질)에서 변이보다 두 배나 더 컸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영장류 세 종의 근력을 비교하는 ‘밧줄 당기기’ 실험을 했는데 체중을 보정할 경우 침팬지와 마카크가 사람보다 두 배 정도 당기는 힘이 강했다. 참고로 침팬지와 마카크의 경우 우리 밖 먹이가 담긴 통(측정기기)에 연결된 밧줄을 당기게 설정해 최대 힘을 측정했다.

이들 동물은 다들 갇혀 있는 상태로 야생일 때 보다 운동량이 훨씬 적다. 반면 사람의 경우 42명 가운데 16명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답했는데, 그 가운데 5명은 농구선수였고 4명은 프로 등반가였다. 즉 인지능력처럼 근력도 사람과 다른 영장류 사이에 운동으로 극복할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이 경우는 사람이 열등)가 있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뇌가 커지면서 에너지 요구량도 늘어났다”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근력이 극적으로 쇠퇴했지만 대신 오래 달기기 같은 지구력은 나아졌다”고 해석했다. 즉 순간적인 힘은 약해졌지만 오랜 시간 식량을 찾아다니는 데는 오히려 적합하게 됐다는 말이다.

실제 근육 힘은 1.35배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7월 11자에는 침팬지의 근육 세기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침팬지의 근육 자체는 사람에 비해 두 배가 아니라 ‘불과’ 1.35배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리조나대 의대 등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침팬지 골격근의 단일 근섬유(즉 근세포 하나)의 수축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근섬유의 유형별로 세기를 측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근섬유는 미오신단백질의 유형에 따라 나뉘는데 침팬지의 경우 주로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즉 Ⅰ형과 Ⅱa형, Ⅱd형이다. 이 가운데 Ⅰ형은 순간적인 힘은 약하지만 지속성이 있는 지근이고 Ⅱa형과 Ⅱd형는 순간적인 힘은 강하지만 지속력이 약한 속근이다.

연구자들은 먼저 근섬유의 최대등장력(maximum isometric force)을 측정했다. 최대등장력이란 근육이 늘어나지 않고 하중을 버틸 수 있는 힘이다. 측정 결과 침팬지 근섬유의 유형별 최대등장력은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편 하중이 없을 때 근육이 수축하는 속도인 최대단축속도(maximum shortening velocity)도 측정했는데 역시 근섬유의 유형별로 사람과 비슷했다. 즉 개별 근섬유(근세포)의 수축력은 미오신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형이 같을 경우 침팬지나 사람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사람에서 근력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침팬지의 골격근 35군데의 시료에서 미오신 유형의 분포 패턴을 조사했다. 그 결과 세 가지 유형이 전체 근육에서 골고루 분포하고 있고 지근인 Ⅰ형의 비율은 평균 32%였다. 반면 사람의 경우 Ⅰ형의 비율이 훨씬 높아 한 연구에서는 평균 69%였고 다른 연구에서는 평균 53%였다. 즉 침팬지는 속근의 비율이 높아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지근의 비율이 낮아 지구력은 약하다는 말이다. 한편 마카크 등 다른 영장류의 경우도 속근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사람이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근섬유의 길이를 측정한 결과 침팬지가 사람보다 상대적인 측면이나 절대적인 측면 모두 긴 것으로 밝혀졌다. 상대적인 측면이란 근육과 인대를 포함한 길이(100)에서 근섬유가 차지하는 길이의 비율로, 침팬지가 평균 59인 반면 사람은 44에 불과했다. 근육에서 탄성(인대)보다 수축(근섬유)을 담당하는 비율이 클수록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측정한 수치를 넣어 시뮬레이션한 결과 침팬지 근육이 사람의 근육보다 1.35배 더 힘을 낼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근육의 유형 차이와 근섬유 길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가 맞다면 침팬지의 근력이 사람의 두 배라는 얘기는 다소 과장인 셈이다.

다만 연구자들은 우리가 ‘침팬지의 힘’이나 ‘사람의 힘’이라고 느끼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힘을 근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힘을 쓸 때 동원되는 수많은 골격과 관절의 상대적인 크기와 형태, 배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침팬지는 사람에 비해 팔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팔의 힘은 정말 사람의 두 배일 수 있다. 침팬지가 나무를 능숙하게 탈 수 있는 것도 팔의 힘이 워낙 세기 때문이다.

아무튼 침팬지 근육 세기 측정 결과가 기존의 속설대로 사람의 두 배로 나왔으면 더 흥미로웠을 거라는(이왕이면 근섬유 자체도 좀 다르고) 생각이 문득 든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도 기대보다 재미가 없었는데 근육 생리학 연구결과도 그런 것 같다는 말이다. 필자 역시 좀 더 화끈한(극단적인) 결과를 선호하는 속물근성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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