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치매에 걸린 살인마 이야기

[메디시네마 : 의사와 극장에 간다면] 박지욱의 메디시네마(100) 살인자의 기억법

시골에서 수의사로 일하며 동물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병수, 하지만 사람이 목숨은 가볍게 여기는지 젊어서부터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범입니다. 하지만 그냥 죽인 것은 아니고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버러지 같은 존재들을 몸소 죽였다고 항변합니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라스콜리코프처럼 말입니다.그 살인의 시작은 무자비한 가정폭력범인 아버지를 죽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 하나를 죽이니 가정의 평화가 온다는 것을 체험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사회악을 일소하는 비밀스러운 일을 해왔다고 나름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가 치매 진단을 받고 기억력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한 일 같기도 하고 남이 한 일 같기도 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생각인지 기억인지 헷갈립니다. 급기야 길에서 마주친 수상한 젊은이를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그의 뒤를 쫓습니다. 하지만 기억력과 판단력의 장애로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과연 이 늙고 병든 살인자의 판단력과 기억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이 영화의 한 장면은 주인공이 병원에서 치매를 진단받는 장면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주인공이 ‘혈관성 치매(뇌혈관이 막혀 뇌세포에 피가 공급되지 못해 생기는 치매)’와 ‘알츠하이머병(특징적인 병리소견과 뇌 위축이 생기는 병)’을 함께 앓고 있으며, 과거에 뇌를 다친 것도 치매 발병에 한몫 한다고 말합니다. 매우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치매의 원인 중 1~2위가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입니다. 둘을 합하면 전체 환자의 80~90퍼센트를 차지하고, 한 사람에게 둘 다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말만 되뇌입니다. 그만큼 알츠하이머병은 이제 치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짐작하듯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이름은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의사의 이름을 붙여 지었습니다. 오늘은 알츠하이머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병을 발견한 이야기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1년 전인 1906년 11월 4일, 독일 튀빙겐에서 열린 정신의학회에서 독일 신경학자인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1864~1915)는 오늘날 우리가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될 그 병을 처음으로 보고합니다. 하지만 좌중의 반응은 미지근했다고 전합니다. 발표자도 참석자들도 100년이 지나서 이 병이 의학계는 물론이고 현대 사회에 미칠 크나큰 영향에 대해 짐작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알츠하이머가 병을 발견하기 전에는 이 병은 없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꽤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기원전 6세기에 활동했던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솔론(Solon)은 ‘나이가 들어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을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유언장은 무효화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린 것으로 보아 이 시대에도 치매는 사회적인 문제였나 봅니다. 2세기 후에 활동한 플라톤(Plato)은 ‘극단적인 노화’ 때문에 신성 모독이나 반역을 범한 경우에는 선처를 베풀자는 주장을 할 정도입니다.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Marcus T Cicero) 역시 ‘경솔한 노인’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유감스럽다고 한 것을 보면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정신의 극단적인 노화’는 없지 않았네요. 당시의 평균 수명이 고작 30세인 점을 고려하면 장수하여 ‘경솔한 노인’이 되기도 무척 어려웠겠지요?

이후로도 역사는 제 스스로의 동력으로 점점 발전을 해갔다고 쳐도 인간 수명은 그리 크게 늘지는 못합니다. 20세기가 되기 전까지 50대를 넘겨 60대가 되는 노인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오죽하면 만 60세가 되면 환갑 잔치를 해주었을까요?

노인이 없는 사회에는 치매도 무척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간혹 노인들이 경솔한 행동을 할 때면 의사들조차 ‘나이가 들어 생긴 일’로 치부하며 병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보여주는 언행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법률과 정치는 물론이고 문학에서도 그 현상을 기록으로 남겼으니까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년)>를 아시지요? 유명한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 외에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말(馬)의 나라 휴이넘’도 나옵니다. 그 중 라퓨타에는 ‘죽지 않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이 노인들은 스트럴드블러그(Struldbrug)’로 불립니다. 죽지 않아서 좋을까요? 늙지도 않고 죽지 않는다면 아주 좋겠지만, 늙은 채 죽지 않는다면, 더구나 치매에 걸려 죽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불행일 겁니다. 말년에 치매 환자가 될 가혹한 운명의 스위프트가 남긴 스트럴드블러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치매 환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 데다 탐욕스럽고 까다로우며 허영심은 물론 말도 많다…청장년 시절에 터득하고 관찰했던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며, 설사 기억한다 해도 불완전하기 그지 없었다…그들은 대화할 때 일반 사물, 사람들, 가장 가까운 친지들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이 노인이 아닌 젊은이들에게도 보이자 의사들은 그제서야 난감해지기 시작합니다. 1801년에 프랑스 의사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은 앞뒤가 맞지 않은 생각과 주변과의 의사소통에 곤란을 겪는 상태를 ‘디망스(démence)’ 라 부릅니다. 이제 이 증상은 단순히 나이 탓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한 것이지요.

피넬 ⓒ 위키백과

피넬 ⓒ 위키백과

피넬의 수제자인 에스키롤(Jean-Étienne-Dominique Esquirol; 1772~1840)은 1838년에 이런 환자들의 증상들을 낱낱이 소개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치매 환자의 증상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모로시스(morosis; 그리스어), 오블리비오(oblivion; 라틴어), 데멘티아(dementia; 라틴어), 도티지(dotage; 중세영어), 데망스(démence; 프랑스어), 퍼추어티(fatuity; 18세기 영어)라고 부르던 병을 모두 통합하여 ‘노인성 치매(senile dementia)’라고 부르도록 못박았습니다.

또한 에스퀴롤은 환자의 이 병으로 죽은 환자의 뇌를 부검해보니 대뇌 피질이 쭈그러져 있고 여기저기 상한 것이 많이 보였습니다. 특히 이마에 해당하는 전두부에 이런 이상 소견이 많았습니다. 1892년에는 프라하의 신경학자 픽(Anold Pick; 1851~1924)은 대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만 제한적으로 뇌가 위축되는 병을 확인했고, 이것은 나중에 ‘픽 병(pick’s disease)’로 불립니다(알츠하이머병에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현미경 조직 소견은 없습니다). 픽의 발견으로부터 약 10년 후인 1901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정신병원에서 37세의 신경과의사 알츠하이머는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환자 한 명을 만납니다.

알츠하이머 연구했던 여인의 신원은 아우구스테 테터(Auguste Deter)로 밝혀졌다.  ⓒ 위키백과

알츠하이머 연구했던 여인의 신원은 아우구스테 테터(Auguste Deter)로 밝혀졌다. ⓒ 위키백과

환자는 치매 증상을 보이는 51세 여인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해력과 기억력이 상당히 많이 떨어지고, 말을 잘 하지 못하며, 시간 감각도 사라지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편집적인 생각과 환청을 떨쳐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더 이상 집에서 돌볼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병원으로 데려옵니다.

알츠하이머는 증상의 원인이 될 만한 병들의 증거를 찾아봅니다. 당시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흔했던 신경 매독, 조현병, 간질, 파킨슨 병, 헌팅턴 무도병, 코르사코프 증후군… 하지만 그 중에는 병의 원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치매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합니다.

알츠하이머는 자신을 신경병리학자로 여겼습니다. 환자를 보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지만 주된 관심은 신경세포를 수집하여 염색한 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연구하는 것이었지요. 알츠하이머는 환자의 증상을 잘 기록합니다. 당시로서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환자를 안전하게 청결하게 보호해주는 것 외에 달리 할 것도 없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그녀의 뇌가 어떤 상태일지 무척 궁금했겠지요. 하지만 뇌는 환자가 죽은 후에나 볼 수 있었으니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1903년에 그가 뮌헨의 정신병원 부설 해부학연구소장으로 옮겨갈 때까지도 그녀는 살아있었습니다.

뮌헨으로 옮긴 알츠하이머는 본격적으로 뇌의 병리 조직 연구에 매진합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난 1906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녀의 사망 소식이 전해옵니다. 알츠하이머는 환자의 의무기록은 물론이고 뇌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환자의 몸에서 떼어낸 뇌는 포르말린에 푹 적신 채 기차로 실려옵니다. 알츠하이머는 환자의 뇌를 면밀히 조사해 정리합니다.

알츠하이머 ⓒ 위키백과

알츠하이머 ⓒ 위키백과

환자는 말년에 욕창으로 고생하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치매 환자들의 대부분은 욕창이나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지요. 뇌를 살펴보니 대뇌피질 대부분이 쭈그러들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뇌의 조직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들여다봅니다. 이상한 ‘매듭’과 알부민 ‘침착물(플라크)’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다른 의사들도 이미 언급한 사실이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는 이런 치매의 증상과 병리적 소견이 발병 당시에 51세 밖에 안되는 비교적 ‘젊은’ 환자에게서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에스퀴롤이 정리한 것은 ‘노인성 치매(senile dementia)’로 불렸지만, 알츠하이머는 젊은 나이에 발병한 노인성 치매 즉, ‘초로기 치매(pre-senile dementia)’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후로도 수 십 년 동안 이 질환은 ‘알츠하이머의 초로기(조발성) 치매(Alzheimer’s presenile dementia)‘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까지 불려왔습니다. 하지만 거듭되는 연구 결과, 노인성 치매와 알츠하이머의 초로기 치매는 결국 같은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1980년대 이후로는 ‘발병 나이’에 무관하게 모두 ‘알츠하이머병’으로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치매란 병명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치매(癡呆)는 ‘어리석고(癡)+ 어리석다(呆)’는 뜻입니다. 병을 앓는 것도 힘든 일인데, 병명조차 모멸감을 감추지 않습니다. 질병의 이름 중에서 이처럼 노골적으로 환자를 욕되게 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요?

그래서 필자는 조금 순화된 이름 ‘뇌약증(腦弱症)’을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환자들의 뇌가 서서히 약해져서 전반적인 인지기능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어리석음’을 뜻하는 치매보다 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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