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춘곤증, 뇌도 봄 탄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62

떠나기가 뭐 그리 아쉬웠는지 지난 주중까지도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길목을 막고 있더니 이번 주 들어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내일모레(20일)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다. 예전에 음양론(陰陽論) 관련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낮이 밤보다 길면 양, 짧으면 음이지만 동지가 지나면, 즉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미 양의 기운이 들어선다고 한다. 즉 동지에서 춘분 사이는 ‘음 속의 양’인 셈이다. 이에 따르면 춘분에서 추분까지 낮이 더 긴 반년은 양이지만 역시 하지가 지나면서 낮이 짧아지기 때문에 하지에서 추분까지는 ‘양 속의 음’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춘분에서 하지 사이가 진정 양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봄은 만물이 깨어나고 활력을 되찾는 약동적인 계절이라고 한다. 칙칙한 회갈색 숲도 연두빛 싹이 올라오면서 생기를 되찾고 개나리 진달래를 시작으로 각종 꽃들이 피어난다. 사람들 역시 잔뜩 껴입은 채 움츠려 있다가 옷차림도 가볍게 바뀌고 걸음걸이도 활기를 되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봄바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봄에는 ‘춘곤증’이라는 현상이 있다. 봄기운을 받아 정신이 초롱초롱해지지는 못할망정 더 멍해지고 시도때도 없이 낮잠이 몰려온다.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3월 15일자에는 이런 현상과 관련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기분뿐 아니라 인지능력도 계절을 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는 지속적인 주의력이 필요한 인지력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왼쪽 칼라 부분)와 계절에 따른 상대적인 활성도(오른쪽. 알파펫은 각 달의 영문 이니셜이다)를 보여준다. 아래는 작동기억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계절에 따른 상대적 활성도를 보여준다. 지속적 주의력은 겨울에 최저인 반면 작동기억은 봄철에 최저다. ⓒ PNAS

기분뿐 아니라 인지능력도 계절을 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는 지속적인 주의력이 필요한 인지력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왼쪽 칼라 부분)와 계절에 따른 상대적인 활성도(오른쪽. 알파펫은 각 달의 영문 이니셜이다)를 보여준다. 아래는 작동기억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계절에 따른 상대적 활성도를 보여준다. 지속적 주의력은 겨울에 최저인 반면 작동기억은 봄철에 최저다. ⓒ PNAS

지속적 주의력은 겨울에, 단기기억은 봄에 최저

벨기에 리에주대 질 반데발레 교수팀은 계절이 뇌의 인지능력에 미치는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기분이 계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로부터(겨울철에 우울증을 겪는 현상을 ‘계절성정서장애’라고 부른다) 계절이 정서뿐 아니라 인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경우 역시 겨울철에 인지능력이 가장 떨어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연구자들은 북위 50에 위치한 벨기에 리에주에 거주하는 평균 나이가 21세인 28명(남녀 각각 14명)을 대상으로 2010년 5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계절과 인지능력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피험자들은 실험을 하기 3주 전부터 규칙적으로 자고 깨는 생활패턴을 유지하다 저녁에 ‘입소’한다. 그 뒤 3일차부터 42시간 동안 약한 조명 아래 깨어있어야 한다. 즉 하루 밤을 꼴딱 샌다는 말이다. 그리고 12시간을 조명을 끈 채 푹 잔 뒤 깨어나 한 시간 뒤 기능성자기공명(fMRI) 장치 속에서 인지과제를 수행한다.

인지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건 계절에 따른 내재적 생체리듬이 존재하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 외부 신호(낮밤의 길이나 온도, 습도)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서다. 인지과제는 두 가지로 지속적인 주의력을 보는 과제와 작업기억, 즉 고차원의 실행기능을 보는 과제다.

먼저 지속적인 주의력을 보는 심동각성과제(psychomotor vigilance task)는 스크린에서 스톱워치가 임의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마다 최대한 빨리 버튼을 눌러야 한다. 머리를 쓸 일은 없지만 집중하기 않으면 시계 작동 시간과 버튼을 누르는 시간의 간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 과제를 수행할 때 fMRI로 뇌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 주의력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상과 편도체, 실행 조절과 관련이 있는 전두엽과 해마의 활성도가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그 밖에도 담창구, 해마곁이랑, 방추체형이랑 등도 활성화되는 정도가 계절에 따라 달랐다. 이를 가로축이 날, 세로축이 활성도인 그래프로 표시하자 사인곡선과 비슷한 패턴이 나왔다. 활성이 가장 높은 때는 평균 6월 20일로 하지에 가까웠고 가장 낮은 때는 동지에 가까운 시기였다. 겨울철에 인지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가정과 일치하는 결과다.

그런데 고차원의 실행기능을 보는 n-백(n-back) 과제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n-백 과제는 임의로 자음 또는 모음을 들려주면서 어떤 자음이 그 전의 n번째(이번 실험에서는 세 번째)에 나온 건지 아닌지 판단하는 과제다. 작업기억, 즉 단기기억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과제를 수행할 때 찍은 fMRI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시상과 전전두엽, 전두극 등의 활성도가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또 실행과정과 주의집중, 정서조절에 관여하는 뇌섬엽의 활동도 계절을 타 역시 사인곡선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흥미롭게도 고차원 실행기능의 경우 활성이 가장 높은 때는 하지가 아니라 추분에 가까운 평균 9월 22일이었고 가장 낮은 때는 춘분을 전후한 시기였다. 즉 고차원 인지능력은 겨울철에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어긋났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현재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비슷한 맥락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즉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 역시 계절을 타는데, 세로토닌의 경우 여름철에 수치가 가장 높고 도파민과 뇌유래신경성장인자(BDNF)의 경우 가을철에 수치가 가장 높다.

위도가 높을수록 계절에 따른 낮밤 길이의 차이가 커지므로 위도가 50도인 벨기에 리에주에 거주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결과가 위도가 37도인 우리나라 서울에 사는 사람에서도 재현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춘곤증이라는 현상이 왠지 춘분을 전후한 고차원 인지력의 저하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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