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최초의 텔레비전은 원판 돌리기 방식?

[과학기술 넘나들기] 과학기술 넘나들기(2)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대표적인 가전제품인 텔레비전은 오늘날에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존 고화질 텔레비전(HDTV)을 능가하는 UHD(Ultra High Definition) 지상파 시험 방송이 국내에서 시작됐고, 동전 두께 정도로 얇은 텔레비전 수상기도 등장할 정도로 초박형 대화면의 텔레비전이 급속히 대중화되고 있다.그렇다면 최초의 텔레비전은 어떻게 생겼을까? 평판 디스플레이(FPD) 방식의 텔레비전에 밀려 이제는 급속히 퇴조하고 있는 CRT(Cathod Ray Tube) 방식, 즉 브라운관을 채용한 텔레비전이 처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이마저도 최초가 아니다.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은 빛의 변화를 전기의 변화로 바꿀 수 있는 셀렌 광전지와 회전 원판을 이용한 이른바 ‘기계식 텔레비전’이었다.

기계식 텔레비전. ⓒ Free Photo

기계식 텔레비전. ⓒ Free Photo

1884년에 독일의 과학자 닙코프(Paul Nipkow; 1860-1940)가 발명한 ‘닙코프 원판’은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바꿀 수 있는 초보적인 장치였다. 이것은 회전하는 원판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물체를 주사(走査)하고, 이 구멍을 통과한 빛이 셀렌 광전지에 전기를 일으켜서 영상을 복원하는 장치인데, 이 닙코프 원판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움직이는 영상을 구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텔레비전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사람으로는 영국의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 1888-1946)가 꼽힌다. 그는 텔레비전에 관련된 독자적인 이론이나 특허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장인적 기질을 발휘하여 못 쓰는 가구에 24개의 구멍이 뚫린 닙코프 원판을 조립하여 움직이는 영상을 구현해 내었다. 이른바 ‘기계식 텔레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베어드의 텔레비전은, 닙코프 원판을 1분에 600번 회전시켜서 동화상을 복원했다.

브라운관이나 LCD 화면 등을 채용한 오늘날의 전자식 텔레비전과는 원리가 전혀 다르고 화질도 매우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1925년 무렵에 선보인 베어드의 텔레비전은 과학자들의 공개 시험 과정을 거쳐서 상용화되었다. 주사선 30개 정도의 기계식 텔레비전은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 1935년까지 시험방송 되었고, 그때까지 영국 전역에 약 4천대 정도 보급되었다고 한다. 베어드와 비슷한 시기인 1920년대에 미국의 젠킨스(C. Francis Jenkins) 역시 닙코프 원판을 활용한 방식으로 텔레비전 장치를 개발한 바 있다.

베어드의 기계식 텔레비전. ⓒ Free Photo

베어드의 기계식 텔레비전. ⓒ Free Photo

그러나 화질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기계식 텔레비전은, 성능이 월등한 전자식 텔레비전이 새롭게 개발되어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곧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전자식 텔레비전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인 즈보리킨(Vladimir Kosma Zworykin; 1889-1982) 등에 의해 개발되었다.  전자식 텔레비전에 널리 채용되어 온 음극선관(CRT), 즉 브라운관은 독일의 물리학자 브라운(Karl Ferdinad Braun; 1850-1918)에 의해 이미 1897년에 발명된 바 있는데, 이것은 원래 텔레비전에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자총에서 발생되는 음극선, 즉 전자다발을 전자기력으로 편향시켜서 형광물질의 스크린에 부딪히며 발광하게 만드는 브라운관 장치를 닙코프 원판 대신 텔레비전에 응용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즈보리킨의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시절 담당 교수였던 보리스 로싱(Boris Rosing)이었다. 스승의 영향을 크게 받은 즈보리킨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재직 중이던 1923년 전자식 텔레비전 촬영용 진공관인 아이코노스코프(Iconoscope)를 발명하여 전자식 텔레비전의 길을 열었다. 또한 미국 유타주 출신의 젊은 발명가 판즈워스(Philo T. Farnsworth; 1906-1971))는 1927년에 자신이 발명한 영상해부관(Image-dissector tube)이라는 장치를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인 전자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선보였고, 즈보리킨과 오랫동안 특허 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전자식 텔레비전을 발명한 즈보리킨. ⓒ Free Photo

전자식 텔레비전을 발명한 즈보리킨. ⓒ Free Photo

1939년에 가정용 전자식 텔레비전들이 선보이고 이후 컬러텔레비전의 실험도 시작되었으나, 그 즈음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민생용 텔레비전의 연구개발과 상용화는 중단되고 정규 텔레비전 방송 역시 전쟁 이후로 미뤄졌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하여 뜻밖에도 커다란 부산물도 얻을 수 있었다. 즉 초단파를 쓰는 텔레비전 방송의 연구는 전쟁 중 군용통신의 연구에도 그대로 이용되었고, 전후 활발히 재개된 텔레비전의 발전과정 중에서 난제의 하나였던 안테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전쟁 시 쓰이던 레이더용 안테나가 바로 텔레비전의 안테나로 이용되었고, 전직 레이더 기술자들은 텔레비전 관련 기술자로 변신하면서 텔레비전의 대중화에 더욱 기여했다.

오늘날에는 지상파,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텔레비전의 방송방식도 여러 가지이며 방송 환경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서, 우리나라 역시 종래의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은 2012년 말에 이미 종료된 바 있다. 텔레비전 수상기 역시 큰 폭의 교체가 이루어져 종래의 브라운관 방식은 자취를 감춰가고, 고화질, 경박형 대화면, 저소비전력 등을 무기로 한 첨단의 평판 디스플레이(FPD)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래에는 어떠한 신개념의 텔레비전들이 나와서 인류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지 기대된다.

전자식텔레비전 촬상용 진공관인 아이코노스코프. ⓒ Free Photo

전자식텔레비전 촬상용 진공관인 아이코노스코프. ⓒ Free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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