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첫날밤 효과’는 좌뇌가 만든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67

필자는 여행이나 출장으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잘 안 온다. 좀 예민한 성격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가보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첫날밤 효과 (first-night effect)’라는 용어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현상은 정말 첫날밤만 두드러졌던 것 같다. 같은 곳에 묵을 경우 그 다음 날은 집에 있을 때 보다 더 잘 잔 것 같다. 전날 잠을 설쳐서 그런 걸까.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5월 9일자(4월 21일 온라인으로 미리 공개)에는 첫날밤 효과가 일어나는 이유를 밝힌 논문이 실렸다. 놀랍게도 뇌의 반쪽, 구체적으로 좌반구가 진정이 되지 않아 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마사코 타마키 교수팀은 건강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잠자리가 바뀔 때 잠이 드는 과정에서 뇌활동을 조사했다.

그 결과 좌뇌의 디폴드 모드 네트워크(default-mode network, 이하 디폴트 네트워크)가 좀처럼 활동을 가라앉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디폴트란 컴퓨터에서도 쓰는 용어로 ‘초기’, ‘기본’이라는 뜻이다. 즉 어떤 시스템이 켜졌을 때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다. 뇌에서 디폴트 네트워크를 이루는 부분은 안쪽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안쪽과 바깥쪽 두정엽이다. 대뇌피질의 상당부분이 빈둥거릴 때도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말이다.

디폴트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일(생각)할 게 없다고 뇌의 전원을 끄면 갑작스럽게 할 일이 생길 경우 빠르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즉 뇌는 깨어있는 동안 예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뇌의 여러 부분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기억과 상상, 즉 잡생각을 하면서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면 뇌의 네트워크들이 느슨해지면서 수면에 돌입하는 것이다.

잠이 들면서 서파(진동수가 1~4헤르츠로 느린 뇌파)가 늘어나는데 측정 결과 낯선 곳에서 첫날밤 좌뇌의 디폴드 네트워크에서 이런 변화가 억제됐다. 또 개별 피험자의 잠이 드는데 걸리는 시간과 좌뇌의 서파 발생량이 반비례 관계였다. 즉 낯선 잠자리에서 좌뇌의 디폴트 네트워크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아 서파가 미미한 사람일수록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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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경계의 필요성 느껴

그렇다면 잠자리가 바뀔 때 왜 디폴트 네트워크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진화의 관점에서 첫날밤 효과를 설명했다. 즉 낯선 환경에서는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최대한 깨어있어야 하고 설사 잠이 들더라도 얕게 자는 게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즉 피험자가 잠이 든 뒤 한쪽 귀에 낯선 소리를 들려줬을 때 뇌의 반응정도와 깨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잠자리가 바뀐 첫날밤 오른쪽 귀(좌뇌가 담당)에 소리를 들려줄 때 왼쪽 귀(우뇌가 담당)에 비해 뇌가 강하게 반응했고 깨어나데 걸리는 시간도 훨씬 짧았다. 반면 그 다음날 밤에는 이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한쪽 뇌만 첫날밤 효과를 보이는 걸까.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아직 명쾌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동물의 세계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일부 조류와 해양 포유류의 경우 뇌의 절반씩만 잠을 자는 행동을 진화시켰다. 이런 행동 역시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다 한 가운데서 돌고래가 사람처럼 푹 잔다면 익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뇌의 절반을 깨어있어야 한다. 따라서 뇌 활동성의 좌우비대칭은 그렇게 특이한 일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사람에서 좌뇌가 깨어있는 역할을 맡게 된 건 왜일까. 연구자들은 평소 깨어있을 때 좌뇌의 디폴트 네트워크가 우뇌보다 더 강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잠자리가 바뀌었을 때 둘 가운데 하나가 보초를 서야 한다면 좌뇌가 적임자라는 말이다(사회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이 일복이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연이어 잠자리가 바뀐다면 우뇌가 교대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실험은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앞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와 낯선 곳에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 잠이 잘 안 오더라도 이번 연구를 떠올린다면 ‘이게 진화구나…’라며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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