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1,2019

‘진셍(ginseng)’보다 ‘인삼(insam)’

어이없는 인삼 종주국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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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 라운지 일본 도쿄은행의 화폐박물관에 가면 ‘인삼대왕고은’이라는 특별한 은화가 소장되어 있다. 당시 일본 국내에서 통용되던 은화는 순도가 30% 정도였던 데 비해 ‘인삼대왕고은’은 순도가 80%나 되었다.

일본인들이 그처럼 특별한 은화를 제조한 까닭은 조선의 인삼을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어떤 병이든 인삼을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나이 어린 소녀들이 조선 인삼을 사서 제 아버지의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유곽에서 몸을 팔았다는 민담이 전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한양에서 70냥이면 살 수 있는 인삼이 일본 에도에서는 300냥에 팔렸다.

우리나라 인삼을 일본보다 더 좋아한 국가는 중국이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신라의 문무왕은 당나라에 인삼 200근을 보내 나·당 연합군을 이끌어냈다. 또 명나라를 치기 위해 출병했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정권 초기에 매년 인삼을 바쳐 명나라를 달랬다.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라는 약학자가 30년에 걸쳐 집대성한 ‘본초강목’에는 ‘고려인삼이 가장 좋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지난 2007년 9월 16일 충청남도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한 ‘고려인삼의 역사·문화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중국 중산대 웨이즈장 교수가 고려인삼의 원산지가 중국 랴오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

웨이즈장 교수는 논문에서 “중국은 오래 전부터 인삼을 요삼(遼蔘)이라고 불러 왔는데 그것은 인삼의 산지가 원래 랴오둥(遼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고구려가 중국 랴오둥 일대에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면서 요삼이 고려인삼으로 불리게 되었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이 랴오둥에서 자라던 인삼을 한반도 남쪽으로 가져가서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신라 문무왕 때를 비롯해 백제도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 이미 인삼을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주장은 근거가 없다.

동북공정에 이은 인삼공정

중국은 그 이전에도 “인삼이 중국 동북 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발해의 주요 산물이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하면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 등은 고대 중국의 동북 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이니, 인삼의 종주국은 바로 중국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중국이 이처럼 동북공정에 이어 인삼공정에까지 뛰어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중국 지린성 정부는 백두산(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 함) 일대에서 생산되는 ‘장백산 인삼’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키우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장백산 인삼’이라는 상표를 통일시키고, 인삼 재배 및 생산의 규격화와 표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장백산 인삼은 고산 청정지대에서만 재배돼 한국의 고려인삼에 비해 농약 함유량이 60~7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선전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서 인삼 게놈 프로젝트를 가동해 약리적 효과가 보다 뛰어난 인삼 품종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중국의 옛 문헌에 의하면 중국 산서성 태행산맥의 상당 지방이 송대로부터 최고 품질의 삼이 자생한 지역이었는데, 그 후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상당 지방은 기후와 지질학상 인삼의 자생지로 적합하지 않다. 또 중국 학자들의 고증에 의해서도 자생 산삼의 실재 여부가 검증되지 않아, 상당삼으로 불렸던 것은 도라지나 더덕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 인삼의 국제적 명칭이 ‘진셍(ginseng)’으로 되어 있는 것도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다. 흔히 진셍이 일본어 발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삼을 ‘고라이 닌징’이라고 불렀다.

고라이는 고려는 뜻하며, 닌징은 당근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셍의 유래는 1843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카를 안톤 본 메이어가 세계식물학회에 고려인삼의 학명을 ‘Panax ginseng C. A Meyer’로 등록한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파낙스는 그리스어로 모든 것을 뜻하는 ‘Pan’과 의약을 뜻하는 ‘Axos’가 합쳐진 말로서 만병통치약을 의미한다. 그러나 메이어에 앞서 많은 학자들이 인삼을 파낙스라고 불렀다. 그럼 진셍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인삼의 베이징식 중국어 발음은 ‘런션’이지만, 인삼의 중국식 옛 이름인 상삼(祥蔘)의 발음이 점차 변해 진셍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메이어가 중국식 발음을 사용한 것은 인삼이 중국을 통해 서양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국제표준으로 인정된 인삼 농약 기준

지난 12일 식품의약안전청은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농약잔류분과위원회에서 한국이 제의한 인삼의 잔류농약기준이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인삼을 재배할 때 사용하는 농약인 디페노코나졸에 대한 국제 기준이 없었다. 따라서 별도 기준이 없는 국가에서는 디페노코나졸이 극미량만 검출되어도 인삼 수입을 금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의 기준 설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인삼 수출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또 하나 이번의 국제표준 인정이 갖는 큰 의미는 우리나라가 인삼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세웠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공연히 인삼공정을 추진해온 중국은 안방에서 개최된 이번 회의에서 우리가 제안한 표준안이 결정될 때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은 인삼뿐만 아니라 김치의 종주국도 자기들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즉, 한국의 김치는 쓰촨성의 전통발효음식인 파오차이를 흉내 냈다는 것. 이에 따라 쓰촨성 청두 지역의 파오차이 업체들은 협회를 발족하고 단일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 김치와 경쟁하겠다는 태세이다.

일본과 김치 종주국 논쟁을 벌인 바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기무치가 아니라 김치의 영문 표기인 ‘kimchi’를 니스 국제상품 분류목록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의 Codex 표준안을 계기로 고려인삼도 진셍(ginseng)이 아니라 인삼(insam)이라는 국제적인 명칭으로 통용될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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