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전파과학사와 “현대과학신서”

김동광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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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사회적 규정력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과학서(popular science book)’의 중요성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대중과학서는 “대상이나 목적이 특화되지 않으며,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일반인(layman)이 읽을 수 있는 폭넓은 교양을 지향하는 과학서”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대중과학서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대중과학서는 날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과학기술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둘째 다양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과학기술과 연관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과학기술적 소양과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이며, 셋째 과학자 사회와 일반인들 사이를 소통시키는 통로 구실을 한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본격적인 대중과학서라 할 수 있는 전파과학사의 현대과학신서를 과학문화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전파과학사와 “현대과학신서”

우리나라의 대중과학 출판은 전파과학사(電波科學社)의 “현대과학신서”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파과학사는 한국전쟁 직후 피폐할 대로 피폐한 상황에서 창업자 손영수(孫永壽)씨가 내린 개인적 결단의 산물이었다. 일제시대에 조선무선통신학교에서 처음 과학을 접했던 손영수씨가 가산을 털어서 전파과학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전쟁이 끝난 후 생존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시대에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그가 처음 낸 책은 <기초무선공학>이었고, 이후 1959년 5월에 “전파과학”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전파과학사가 실용적인 기술서에서 기초과학 도서의 출판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1971년이었다. 그는 “단순한 분해조립 수준의 기술서”에서 “기초순수과학 출판”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했다. 손씨는 당시 서울대 강사였던 과학사가 송상용(宋相庸)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현대과학신서”라는 교양과학서를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송상용 교수는 “현대과학신서”가 태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송 교수는 이병훈 교수를 비롯해서 여러 분야의 교수들로 이루어진 기획위원회를 구성했고, 이후 당대의 과학저술가들을 거의 총망라한 필자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실질적으로 현대과학신서의 산파역을 맡았다. 현대과학신서의 편집기획위원은 朴澤奎(건국대 문리대, 화학), 李炳勛(전북대 사범대, 생물학), 朴承載(서울대 사범대, 물리학), 宋相庸(성균대 교양부, 과학사 과학철학)등이다. (괄호안은 1978년 당시 직위이다)














“현대과학신서”는 1973년 1월 <宇宙, 物質, 生命(權寧大外)>를 첫권으로 발간했다. 손씨는 이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과학을 당신의 포키트에!”, “설렁탕 한그릇 값으로 과학을 대중에게 보급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이 시리즈의 간행사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손영수씨의 확고한 의지는 첫 권을 발간한 이후 30년이 넘도록 꺾이지 않고 실천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교양과학대학”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과학신서의 특성

현대과학신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대중과학출판이며,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기획을 포함한 대규모 시리즈이다. 현대과학신서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순수한 과학교양을 위한 기획이다. 간행사에서도 밝혔듯이 현대과학신서는 “동서고금의 과학고전을 천착해서” 일반인들이 “교양의 터전을 굳히고 ……새 과학기술의 내용을 소화하여 현대과학기술의 인간적 및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는 동시에 복잡다기한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예지와 적응력을 얻게 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삼았다. 또한 이 시리즈에는 물리, 화학, 생물학, 천문학, 컴퓨터 등의 주제 이외에도 과학사, 과학과 사회, 과학교육 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야기하는 변화를 성찰할 수 있는 많은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1991년까지 139권이 발간된 현대과학신서 중에서 과학사를 다룬 책들은 앳클리프의 “과학사의 뒷얘기(1-4권)”을 포함해서 10여권이고, 벌링게임의 <미국문명과 기계>, 까즈뇌브의 <라디오· 텔레비젼의 사회학>, <과학교육과 인간성>, <의학과 철학의 대화>와 같은 간학문적 접근을 꾀하는 과학서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송상용 교수를 비롯한 기획위원들의 폭넓은 기획 방향의 결실일 것이다.

둘째, 현대과학신서는 번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 필자들의 저서를 대폭 포함시켰다. 이 시리즈의 첫 권으로 발간된 <우주, 물질, 생명>이 번역서가 아닌 국내 중견과학자들의 저서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1976년까지 발간된 66권 중에서 무려 20권이 국내 과학자들의 저서이다. 이중에는 조경철, 김용운, 전상운, 현원복 등 당대의 저명한 과학자 저술가들이 모두 저자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밖에도 물리학자 김정흠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역자로 참여함으로써 현대과학신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과학저술가와 번역자들을 망라하는 풀(pool)을 형성했으며, 전파과학사는 이 시리즈를 거쳐 많은 과학자들이 본격적인 과학저술가로 나서는 산실(産室)이 되었다.

셋째, 일반인들이 쉽게 구입해서 읽을 수 있도록 값싼 문고판을 선택했다. 현대과학신서는 “설렁탕 한 그릇 값으로 과학을 대중에 보급하자”라는 주장을 실천에 옮겼다. 1973년 발간 당시 설렁탕 한그릇의 값은 대략 250원이었고, 처음 간행된 현대과학신서의 평균가격이 2백원에서 250원대였다.

필자와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 중에서 “현대과학신서”를 한 두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대과학신서의 발간은 대중과학출판이 과학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입증해주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 저작권자 2004.01.20 ⓒ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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