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8

장내미생물 세계의 ‘이이제이 이론’

황색포도상구균 잡는 '고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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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장내미생물의 중요성을 밝힌 논문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장내 유익균의 조합인 프로바이오틱스의 인기도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장이 건강한 사람들은 프로바이오틱스를 먹는 게 돈 낭비라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심지어 사람에 따라 해로울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까지 발표되면서 프로바이오틱스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프로바이오틱스를 둘러싼 혼란은 여러 측면에서 몸에 유익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분자 메커니즘이 밝혀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이 장(腸)이라는 제한된 거주공간을 놓고 병원균과 경쟁하기 때문에 장 건강이 좋아진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이론도 마찬가지다.

태국 농어촌 지역(a. 지도에서 빨간색) 주민 200명의 분변과 코 분비물을 채취해 미생물군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분변에서 고초균이 발견된 101명 전원의 분변과 코 분비물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되지 않았다(b 왼쪽 및 c 왼쪽). 반면 분변에서 고초균이 발견되지 않은 99명 가운데 25명은 분변에서 26명은 코 분비물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b 오른쪽 및 c 오른쪽). 고초균이 황색포도상구균의 천적이라는 말이다. ⓒ 네이처

태국 농어촌 지역(a. 지도에서 빨간색) 주민 200명의 분변과 코 분비물을 채취해 미생물군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분변에서 고초균이 발견된 101명 전원의 분변과 코 분비물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되지 않았다(b 왼쪽 및 c 왼쪽). 반면 분변에서 고초균이 발견되지 않은 99명 가운데 25명은 분변에서 26명은 코 분비물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b 오른쪽 및 c 오른쪽). 고초균이 황색포도상구균의 천적이라는 말이다. ⓒ 네이처

고초균 있는 사람 전원이 황색포도상구균 없어

그런데 모처럼 학술지 ‘네이처’ 10월 25일자에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이이제이 이론을 분자 메커니즘을 통해 입증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 국립알레르기・감염질환연구소를 비롯한 미국과 태국의 공동연구자들은 고초균(학명 Bacillus subtilis)이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의 신호체계를 교란해 인체에서 번성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초균은 원래 토양 박테리아이지만 채소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묻어 있는 포자가 인체에 들어올 경우 장내 환경에서도 살 수 있다.

따라서 식성에 따라 인체에 거주하는 고초균의 숫자는 큰 차이가 난다. 참고로 청국장을 띄울 때 큰 역할을 하는 낫토균도 고초균의 한 균주다.

한편 황색포도상구균은 기회주의적인 박테리아로 설사 인체에 존재하더라도 몸의 면역력이 높을 때는 숨죽이고 있다가 숙주가 취약해지면 증식해 종기나 여드름 같은 성가신 질병에서 폐렴, 패혈증 같은 치명적인 질환까지 일으킨다.

특히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은 대다수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로 매년 수십만 명이 감염돼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연구자들은 항생제로 황색포도상구균을 제어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이이제이 전략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태국의 농촌 지역 주민 200명의 분변과 코 분비물을 수집해 미생물군을 분석했다.

만일 서식 밀도가 황색포도상구균과 반비례 관계인 박테리아가 있다면 천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분변과 코 분비물을 검사한 이유는 황색포도상구균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의 경우 비강에서는 100명에 40명, 장에서는 100명에 20명꼴로 황색포도상구균이 발견된다.

그 결과 놀랍게도 분변에서 고초균이 검출된 101명 전원의 분변에는 황색포도상구균이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분변에서 고초균이 검출되지 않은 99명 가운데 25명의 분변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분변에서 고초균이 검출된 101명 전원의 코 분비물에서도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분변에서 고초균이 검출되지 않은 99명 가운데 26명의 코 분비물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 한편 고초균은 코 분비물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고초균이 분비하는 펜기신의 구조(왼쪽)과 황색포도상구균이 분비하는 균체밀도 감지 신호분자 AIP의 구조(오른쪽)로 꽤 비슷하다. 펜기신은 AIP 수용체에 달라붙어 AIP의 신호를 차단한다. 그 결과 황색포도상구균은 균체밀도가 낮다고 판단해 증식하지 않는다.  ⓒ 네이처

고초균이 분비하는 펜기신의 구조(왼쪽)과 황색포도상구균이 분비하는 균체밀도 감지 신호분자 AIP의 구조(오른쪽)로 꽤 비슷하다. 펜기신은 AIP 수용체에 달라붙어 AIP의 신호를 차단한다. 그 결과 황색포도상구균은 균체밀도가 낮다고 판단해 증식하지 않는다. ⓒ 네이처

균체밀도 감지 신호분자와 비슷한 분자 분비

연구자들은 고초균이 황색포도상구균을 죽이는 물질을 분비할 것으로 추측했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둘을 가까이 뒀는데 뜻밖에도 황색포도상구균이 죽지 않았다.

따라서 황색포도상구균의 균체밀도 감지 체계를 교란해 증식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균체밀도 감지(quorum sensing)란 박테리아가 주변에 같은 종의 박테리아가 얼마나 있는지를 감지해 성격을 바꿀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즉 주변에 동료가 얼마 없다면 숨죽이고 지내는 쪽을 선택하지만 어느 밀도 이상이라고 판단되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다.

많은 기회성 병원균들이 균체밀도 감지 경로를 통해 병을 일으킨다. 주변에 동지에 얼마 없는데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인체 면역계의 눈에 띄어 철퇴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색포도상구균도 AIP라는 신호분자를 분비해 균체밀도를 감지한다.

즉 주변에 황색포도상구균이 많아져 AIP의 농도가 어느 선을 넘으면 ‘이제 해 볼 만 하다’고 판단해 인체를 공격하는 독소를 만들어 분비하고 활발히 증식한다.

연구자들은 분석장비로 고초균이 분비하는 물질을 조사했고 그 결과 펜기신(fengycin)이라는 물질이 AIP의 신호를 차단해 황색포도상구균이 균체밀도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펜기신은 AIP와 구조가 아주 비슷해 AIP의 수용체 분자에 달라 붙는 것으로 밝혀졌다. 카페인이 구조가 비슷한 아데노신 대신 수용체에 달라붙어 이완 작용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그렇다면 이미 장내에 황색포도상구균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고초균을 복용할 경우 황색포도상구균을 없앨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고 MASA를 포함한 다양한 황색포도상구균을 퇴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건초균 프로바이오틱스가 골치 아픈 황색포도상구균 감염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프로바이오틱스는 대부분 장에 유익한 유산균과 비피더스균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는데, 고초균까지 들어있는 제품은 몇 가지 안 된다. 이번 연구로 고초균을 포함한 제품이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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