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9,2019

잠수함 속 이산화탄소를 없애라

영화 '쿠르스크' 속 공기정화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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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 12일 침몰한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

2001년 8월 12일 침몰한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 ⓒ 위키미디어 CC BY-SA 4.0

지난 2000년 8월 12일, 훈련 중이던 러시아 해군 북방 함대 소속 원자력 잠수함 ‘쿠르스크’ 함이 싣고 있던 어뢰에 폭발을 일으켜 침몰했다. 총원 118명에 달하던 승조원 대부분은 폭발과 함께 즉사했으나, 후방 구역에 23명의 승조원이 폭발 이후에도 격실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에 남은 공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쿠르스크' 함 승조원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영화 '쿠르스크'로 극화되었다.

‘쿠르스크’ 함 승조원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영화 ‘쿠르스크’로 극화되었다. ⓒ 위키미디어 CC BY-SA 4.0

2019년 1월 국내 개봉된 영화 ‘쿠르스크’는 바로 이 생존자들의 분투는 물론,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진행된 국제사회의 노력을 그리고 있다.

이 23명의 생존자는 잠수함 침몰 이후 최소 6시간~최대 3일은 생존해 있던 걸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구조대가 잠수함 잔해에 도착했을 때는 이들은 모두 사망한 후였다. 이들의 생존 기간이나 사인에 대해서도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영화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공기 정화장치가 함 내로 새어들어온 물에 실수로 떨어졌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해 승조원들이 몰살당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연 이 공기 정화장치는 뭐길래 물에 닿으면 화재가 발생했던 걸까?

일단 잠수함이라는 환경의 특징부터 알아봐야 한다. 잠수함은 폐쇄 공간이다. 외부에서 물이 새어들어가서는 안 된다. 바꿔 말하면 공기도 새어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잠항하는 잠수함은 외부로부터 추가 공기를 보급 받지 못하고, 싣고 있던 공기만 가지고 부상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잠수함 승조원들이 호흡할 때마다 공기 속의 산소 농도는 낮아지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올라간다.

그리고 인체에는 산소 부족보다 이산화탄소 중독이 더 치명적이다. 일반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0.035%이다. 그러나 이 농도가 3%만 돼도 호흡장애가 일어난다. 4%가 넘으면 두통, 이명, 혈압상승, 심박수감소, 실신, 구토가 일어난다. 6%가 넘으면 호흡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8∼10%가 넘으면 의식불명, 청색증이 온다. 20%가 넘으면 중추신경장애가 오고 30%가 넘으면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잠수함 내의 이산화탄소는 안전 여유를 고려해 대기와 비슷한 0.4%를 유지하고 있으며 1%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자력 잠수함 내에는 통상적으로 3가지 장비가 사용되고 있다. 전기분해식 산소 발생기, 이산화탄소 제거기, 일산화탄소-수소 연소기가 그것이다. 원자력 잠수함은 원자로를 이용해 작동하므로, 이들 장비의 작동을 위한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침몰한 ‘쿠르스크’ 함의 경우 침몰하면서 부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원자로에 제어봉을 삽입, 작동을 멈췄으므로 통상시의 공기 질 유지 장치는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비상용으로 사용된 것이 영화에도 나온 이산화탄소 제거 장치다. 제거 장치의 주성분은 초과산화칼륨(KO2)이다. 초과산화칼륨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2), 습기(H2O)와 만나면 화학반응을 거쳐 탄산수소칼륨(KHCO3)과 산소(O2)가 된다. 때문에 초과산화칼륨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분해하면서 산소는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론상 1kg의 초과산화 칼륨은 310g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338g의 산소를 생성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공기정화장치는 잠수함뿐 아니라 우주선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보듯이 물에 빠뜨렸을 경우 그 위험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과산화칼륨은 강력한 산화제다. 따라서 물속에 떨어뜨리면 폭발적인 화학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생성되는 것은 수산화칼륨, 과산화수소, 산소다. 과산화수소와 산소 역시 산화제이므로 폭발과 화재라는 산화 작용을 더욱 촉진시킨다. 물뿐 아니라 산, 기름, 분말 흑연 등에 접촉해도 이런 반응이 일어난다.

쿠르스크 함을 침몰시킨 어뢰실 화재와 폭발도 과산화수소 때문에 일어났다. 러시아 해군의 어뢰는 케로신 연료와 과산화수소 산화제를 사용하는데, 조립 불량, 노후와 취급 부주의 등의 문제로 과산화수소 탱크에서 과산화수소가 누출되었다.

과산화수소는 구리 등 특정 금속과 만나면 남아도는 산소 원자를 떼어내며 격렬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이 화학 반응에서 고열이 발생하고, 그 열이 어뢰의 케로신 연료를 점화시켜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서구 국가의 해군에서는 과산화수소를 잠수함에서 퇴출시킨 지 오래다. 우리나라 해군 잠수함에서도 과산화수소 대신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는 공기정화장치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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