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잃어도 좋을 감각 1위가 후각?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냄새 둔해지면 사회성도 떨어져

오감은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 장치이다. 그중에서 가장 잃어서는 안 될 것 하나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시각이나 청각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럼 잃어도 좋을 감각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예전에 미국 펜실베이이나대학의 연구진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후각이었다.

영어에서 냄새를 표현하는 단어는 ‘구린(stinky)’, ‘향기로운(fragrant)’, ‘곰팡내나는(musty)’의 단 세 가지뿐이다. 냄새를 묘사하는 나머지 모든 단어는 사실 그 냄새를 풍기는 대상의 이름이다. 이를테면 계피나 후추, 장미 같은 단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은 시각이 인간의 주된 감각으로 자리 잡으면서 후각이 보조적인 감각으로 밀려난 증거로 보기도 한다.

잃어도 좋을 감각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로 꼽힌 것은 후각이었다. ⓒ morgueFile free photo

잃어도 좋을 감각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로 꼽힌 것은 후각이었다. ⓒ morgueFile free photo

사실 후각은 어느 감각보다 주관적이다. 냄새에 대한 개개인의 느낌이 천양지차라는 의미다. 물론 후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의 예지만 어떤 이는 양말 썩는 냄새를 과일 향처럼 느끼기도 한다. 이 역시 후각에 대한 언어 표현이 다양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일 게다.

그럼 설문조사대로 만약 후각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우선 우리는 맛난 음식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 혀를 통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일 뿐이다. 이에 비해 후각을 통해서 인간은 약 1만 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맛을 결정짓는 것은 후각

즉, 맛을 결정짓는 것은 미각이 아니라 후각인 셈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음식의 맛 중 70~80%는 후각에 의존한다. 후각을 잃으면 우리는 사과와 감자 맛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후각을 잃으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관계를 갖는 횟수도 줄어들게 된다. 미국 플로리다대학 연구진은 배란기 여성이 수일 동안 입은 티셔츠와 그렇지 않은 여성이 입은 티셔츠, 그리고 아무도 입은 적이 없는 티셔츠를 남성들에게 나눠준 후 냄새를 맡아 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남성이 선호한 티셔츠는 배란기 여성이 입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배란기 여성이 입었던 티셔츠 냄새를 맡을 경우 실험대상 남성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테스토스테론은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이다. 이 연구결과는 사람들이 이성의 냄새에 끌린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후각이 사라지면 우리가 남을 도와주는 행동이 줄어들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결과가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배런이 미국의 한 쇼핑몰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그는 우연히 펜을 떨어뜨리거나 지폐를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시킨 뒤 쇼핑객들의 반응을 기록했다. 그 결과 남을 도와주는 행동은 냄새가 전혀 없는 곳보다 좋은 냄새가 나는 지역에서 현저히 많이 일어났다.

후각이 둔한 사람일수록 비사회적이며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독일 드레스덴대학 연구진은 32명의 성인들에게 후각 장애 여부,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 좋아하는 음식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후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닫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후각 장애와 우울증이 같은 뇌신경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자폐증에 걸린 아동은 대부분 촉감이나 소리, 시각, 맛과 같은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냄새에 대해서만은 정상인보다 예민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연구팀은 이 같은 점을 이용한 후각 테스트를 통해 정상아와 자폐아를 80%의 정확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연구결과는 자폐아들의 사회성 결핍이 후각장애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후각 이용해 알츠하이머병 전단계 진단기술 개발

후각은 기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라는 과자를 베무는 순간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후각을 통해 과거 기억을 재생해내는 현상인 ‘프루스트 효과’는 이 소설에서 유래한 용어다.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첫 증상은 기억력 저하와 냄새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뇌신경계와 거의 붙어 있는 후각신경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병원 신경과 주건 교수팀은 이에 착안해 알츠하이머병의 전단계에서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예측․평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기억력이 떨어져가는 알츠하이머병 전단계를 확실히 감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콧속에 있는 후각신경말단부 상피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얼마나 발현되는지 측정하는 방법으로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예측하는 새 진단기술을 개발한 것. 이 진단기술을 이용할 경우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알츠하이머병 때문인지 아니면 우울증이나 만성스트레스 때문인지를 구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잃어도 좋은 감각 1순위로 후각을 꼽을 사람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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