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일본SF에서 원자폭탄이 갖는 의미

SF관광가이드/대재앙 이후 이야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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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원폭(原爆)의 의미는 새삼스러울 것 없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다름 아닌 자국 영토에 원자탄이 터지는 바람에 허겁지겁 굴욕스런 강화조약을 체결해야 했던 과거의 역사는 일본에서 과학소설은 물론이거니와 대중문화 전반이 오늘날까지 묵시록적인 대재앙이란 주제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악몽의 근원이다.

근대 이전에도 일본에 묵시록 스타일의 서사문학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서구에서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1) 일본사회에서 대재앙 이야기 형식이 단순히 외경(畏敬)의 대상이 되는데 그치지 않고 현실성을 띠게 된 계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탄과 패전 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미국 종속체제에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2)

▲ 핵폭탄이 투하된 다음날 히로시마의 그라운드 제로 지점에서 찍은 사진. 여전히 불길이 치솟고 있다. ⓒheiwaco.tripod.com


일본 역사상 과거와 현재의 뚜렷한 문화적/사상적 단절이 일어난 시기는 메이지 유신 이후 추진된 근대화에 이어 2차 대전 패망으로 인해 국가의 위상이 실추된 20세기 중반이 두 번째다. 근대화 시기의 단절이 부국강병을 위한 긍정적인 도약대였다면, 1945년 이후의 단절은 핵폭탄으로 뻥 뚫린 가슴을 부여잡고 미국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자기부정의 곤혹스런 과정이었다.

첫 번째 단절과 두 번째 단절 간의 이러한 차이는 과학소설 문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서구화가 곧 근대화로 치부되던 메이지 유신 시절, 해외에서 수입 번안된 과학소설들은 세상의 종말 혹은 위기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대개의 결말은 묵시록적인 파국이 알고 보니 꿈이었다는 식으로 우회할 여지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얘기고 있을 법한 공상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과학소설들은 종종 절대 절명의 위기처럼 보이는 상황이 실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의 반영이자 근대화의 상징임을 은연중에 시사했다.

반면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거센 후폭풍을 고스란히 감당한 뒤 씌어진 과학소설들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전처럼 흥미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아울러 이 시기의 작품들 또한 현실에 발을 디디고 독자에게 소구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나서도 묵시록적인 사건들을 꿈으로 축소하는 잔재주를 계속 피우기는 어려워졌다. 일본은 이제 핵폭탄 공격을 체험한 최초의 국가였다. 인간이 세상을 파괴할 힘을 지니게 되었고 그 가공할 힘이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일본에 행사되었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3)
                                                                                                             — 다나카 모토코


실제로 일본의 사회문화 전반에 원자탄 투하가 미친 영향과 파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한때 하늘 무서운 줄 몰랐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은 데다, 전후 급속한 경제재건에 성공해 겉으로는 경제대국의 입지를 다진 듯 보이지만 그래봤자 번번이 미국의 입김에 좌우되어온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제정치에서의 일본의 냉엄한 현실은 일본 국민이 자주적으로 미래전망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나카 모토코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러한 맥락을 논의하면서 그로 말미암아 일본이란 국가의 정체성과 전통이 파괴될 지경이었다고까지 평한다. 이러한 국가 정체성 훼손은 원자탄 피폭 이후 대재앙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이 나라에서 양산되는데 일조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일본에서 창작된 대재앙 소재 이야기들(문학과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이 일본인들의 무기력해진 타성을 합리화 하는 도피처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 미군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탄생한 고지라는 일본인들에 의해 상업영화화 되었지만 인기가 높자 미국에서 <고질라>라는 제목을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위 영화 포스터는 미국에서 재개봉된 <고지라>의 일본 오리지널판을 홍보하고 있다. ⓒToho Film


1960년대에만 해도 일본의 묵시록 문학은 오에 겐자부로와 아베 코보의 소설들에서 보듯 명쾌한 선형적 시간관에 입각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가치들의 상충되는 갈등을 그려냄으로서 현실에 발 디딜 수 있는 종착점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여전히 일본인들의 뇌리에서 떠날 수 없었던 원자폭탄에서 초래된 재앙과 그 이후 삶의 의미를 하나로 융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

같은 논리와 주제의식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 등에서 변주되었으니 이중 가장 히트작을 꼽으라면 <고지라 ゴジラ, 1954~2004>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무려 28편의 속편이 만들어질 정도로 장수한 이 시리즈의 주연 캐릭터 고지라는 원래 태평양 심해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공룡이다. 그러나 어느 날 미군의 수폭 실험 탓에 어마어마한 덩치의 거대 괴수로 돌연변이가 된다. 고지라는 바다 밖으로 나와 인간사회를 짓밟고 위기로 몰아넣는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인 거대 괴수의 느닷없는 출현은 더욱 강력한 핵폭탄 제조기술을 확보하려는 인류사회의 탐욕에서 초래되었기에, ‘고지라’라는 괴수 자체가 다름 아닌 인간의 원죄와 업보를 상징한다. 특히 <고지라> 첫 탄생 편에서 수폭실험의 장본인이 미군측이고 고지라는 엉뚱하게도 일본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설정하여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데에 대한 일본인들의 피해의식과 울분을 투영하였다.

▲ 핵폭발의 참상을 실제 피폭자인 만화가의 손으로 적나라하게 그려낸, 나카자와 케이지의 <맨발의 겐はだしのゲン; 1973년>은 <고지라>와는 달리 문제의 원인을 타자(他者; 괴수나 미국)에게 돌리는 대신 전쟁의 원흉으로서 천황을 지목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中沢啓治


반면 핵폭발의 참상을 실제 피폭자인 만화가의 손으로 적나라하게 그려낸, 나카자와 케이지(中沢啓治)의 <맨발의 겐はだしのゲン, 1973>4)은 <고지라>와는 달리 문제의 원인을 타자(他者; 괴수나 미국)에게 돌리는 대신 전쟁의 원흉으로서 천황을 지목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미군이 일본 영토에 들어와 일본인들에게 저지른 만행뿐 아니라 일본군이 중국에서 벌인 마찬가지의 만행을 생생하게 대비시킴으로서, 원폭 피해자로서의 주관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비통한 참상을 그리되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객관적으로 꼬집어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맨발의 겐>은 만화 형식을 통해 원자탄 피폭의 참상을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레이먼드 브릭스(Raymond Briggs)의 <바람이 불어 올 때 When the Wind Blows, 1986>에 비견할만하다.)

▲ 평화롭게 살던 시골의 노부부가 핵전쟁의 방사능의 영향으로 서서히 시들듯 죽어가면서도 배우자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잊지 않는 감동적인 만화, 레이먼드 브릭스의 <바람이 불어 올 때 When the Wind Blows; 1986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Raymond Briggs


이처럼 이해가 대립하는 양자의 입장을 함께 아우르는 시각은 1980년대에 발표된 미야자끼 하야오(宮崎 駿)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 1982~1994>에서 다시 맥이 이어진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소위 ‘불의 7일간’으로 일컬어지는 전면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생태계가 어느덧 오염된 환경에 적응해버리는 바람에, 만약 세월이 한참 지난 이제 와서 옛 지구처럼 생태환경을 되돌려 든다면 오히려 적응한 인류와 동식물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질곡을 상정함으로서, 애초에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상관없이 일단 선택한 인류의 운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가를 일깨워준다. 결국 주인공 나우시카는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희생의 요구로 비칠 미래의 허울 좋은 약속보다는 현재의 존속에 방점을 찍는다.

▲ 미야자끼 하야오의 장편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 1982~1994>는 전면핵전쟁으로 바뀐 환경으로 다시 예전으로 되돌린다는 것 또한 어느 한쪽의 편의주의적 발상임을 지적하며, 인간과 세상은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의 잣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준다. ⓒ宮崎 駿


이보다 10여년 늦게 발표된 오토모 가츠히로(大友克洋)의 만화 <아키라 アキラ, 1998>는 핵전쟁 이후의 세상을 무대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미래는 물론이거니와 현재에 대해서도 섣부른 희망을 품지 않는다. 핵전쟁으로까지 비화된 제3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수도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 만치 쑥대밭이 된 근미래의 일본, 헛된 야망에 들떴다가 욕볼 만큼 욕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은밀히 초능력 인간병기 개발에 전력투구함으로서 여전히 세계패권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한다.

다시 말해 오토모 가츠히로는 과거 군국주의 일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근미래의 일본을 보여줌으로서, 후자 역시 전자와 다를 바 없는 최후를 맞을 것임을 시사한다. 허구의 시공간에 구축된 이 포스트모던한 묵시록은 사이버펑크적 요소와 융합되며 대재앙 이후 세계의 현실적인 비전에서 다소 일탈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대신 <아키라>의 세계는 극사실주의 회화 스타일로 냉엄한 국내외 정치구도를 시의성 있게 묘사함으로서 허구 같지 않은 허구의 생생한 비전을 보여준다.

▲ 오토모 가츠히로의 만화 <아키라 アキラ, 1998>는 핵전쟁으로 도쿄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 만치 쑥대밭이 된 근미래에도 여전히 일본정부가 헛된 야망에 들떠 은밀히 초능력 인간병기 개발에 전력투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비극을 그린다. 이 디스토피아는 일본정부가 아직도 세계패권에 대해 예전과 같은 야욕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노골적으로 투영된 세계다. ⓒ大友克洋







1) 일본에서의 묵시록적 사고는 선형시간관이 아니라 일찍이 도입된 불교사상 덕에 순환론적 시간관에 입각해 있었다. 따라서 인생무상이라는 근본 이데올로기 위에 세워진 일본의 묵시록적 사상은 천국과 지옥, 선과 악, 영원과 덧없음 같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들이 양자택일의 대치국면으로 치닫을 만큼 극단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관점은 대재앙의 강도와 이를 묵시록적으로 받아들이는 강도 두 측면에서 2차대전 후 일본의 묵시록적 견해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2) 이하 내용은 다나카 모토코가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아시아 연구학 교수진에게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이다. 그녀는 2013년 현재 일본의 미야자키 산업경향대학 법과대학 조교수로 일본문학과 하위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자료원: Motoko Tanaka, “Apocalypticism in Postwar Japanese Fiction”, univ. of British Columbia(Vancouver), 2011, pp. 186~197)

3) 앞의 학위논문 187쪽

4) 국내에는 2000년대 초 아름드리미디어에서 첫 번역판을 펴냈고 2011년경 다시 재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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