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8,2019

인류 식생활을 변혁시킨 인쇄공

냉장고 / 세상을 바꾼 발명품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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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매년 이맘때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벌빙(伐氷)’이 행해졌다. 창덕궁 안에 있던 내빙고와 사대문 밖의 외빙고였던 서빙고 및 동빙고에 보관했다가 더운 여름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즉, 얼음이 천연의 냉장고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런데 벌빙은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가로 70~80㎝, 세로 1m, 높이 60㎝ 정도의 크기로 채취한 얼음은 장정 4명이서 빙고까지 들고 가기에 매우 무거웠을 뿐더러 좁은 빙고 안에서 얼음덩어리를 차곡차곡 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 엄동설한에 한강에서 며칠이고 얼음을 채취하다 보면 동상을 입는 이들이 허다했고 심지어 얼어 죽는 이들도 생겼다.

따라서 겨울만 되면 한강변에 사는 장정들 중에는 벌빙 부역을 피해 도망가는 이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들의 부인들은 겨울만 되면 뜻하지 않게 생과부가 되어야 했다. ‘빙고청상(氷庫靑孀)’이란 말의 유래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인위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영국의 월리엄 컬런.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인위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영국의 월리엄 컬런.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호수에서도 겨울만 되면 한강의 벌빙과 같은 작업이 행해졌다. 수많은 인부들이 꽁꽁 언 호수의 얼음을 톱으로 잘라내 더운 나라인 인도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수출한 것. 이러한 무역은 얼음을 만드는 기계가 발명되기 시작한 18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오늘날처럼 인위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이는 1748년 영국 글래스고대학의 월리엄 컬런이었다. 그는 열의 이동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다,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빼앗는 기화열에 주목했다.

그러다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에테르를 반 진공상태에서 기화시켜 물을 냉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산업적으로 실용화시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저 물로써 얼음을 만드는 것에 만족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90여 년 후인 1834년, 영국의 발명가 제이콥 퍼킨스는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압축기를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에테르를 압축할 경우 냉각 효과를 내면서 증발했다가 다시 응축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의 발명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냉장고의 기본 원리와 거의 똑같다.

활자 세척하다가 냉장고 원리 알아내

하지만 정작 냉장고를 발명한 이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쇄공 제임스 해리슨이었다. 매일 활자에 낀 인쇄 잉크를 지워야 했던 그는 활자 세척에 사용하는 에테르가 증발하면서 손이 시리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학 지식이 별로 없던 그로서는 일단 열을 빼앗은 후 날아간 에테르 기체를 다시 액체로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하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체에 압력을 가할 경우 액체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내곤 냉동용 공기 압축기인 컴프레서를 개발해 1862년 최초의 냉장고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만든 냉장고는 때마침 열린 국제박람회에 전시되면서 육가공업체 및 맥주업체 등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로 인해 그는 지금까지 ‘냉장고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1871년에는 독일의 공학자 카를 폰 린데가 뮌헨의 양조공장에 냉매로 암모니아를 사용한 냉장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냉장고는 더욱 실용화되었다. 이 같은 산업용 냉장 시스템의 도입은 당시 등장한 증기선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인류의 식생활을 변혁시켰다.

즉, 아르헨티나의 소고기와 서인도제도의 바나나, 그리고 생선 등이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 채 유럽의 각 도시로 수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기류를 타고 등장한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인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이다.

피시앤칩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이 ‘좋은 친구’라고 부를 만큼 영국의 대중적인 음식이며, 오늘날에도 매년 최고의 피시앤칩스 가게를 선정해 발표하는 경연이 펼쳐질 정도다. 대구 등의 흰살생선튀김과 함께 길쭉한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 피시앤칩스는 증기선 및 냉장 시스템의 등장으로 신선한 생선을 대량으로 도시에 공급하면서 대중화될 수 있었다.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는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판되기 시작한 ‘캘비네이터’사의 제품이다. 하지만 이 냉장고는 높은 가격과 냉매 누출 등의 문제로 잘 팔리지 않았다.

신이 내린 세 가지 물건 중 하나

최초의 대량 양산형 냉장고인 GE의 모니터탑 모델. ⓒ Infrogmation, New Orleans(위키미디어)

최초의 대량 양산형 냉장고인 GE의 모니터탑 모델. ⓒ Infrogmation, New Orleans(위키미디어)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냉장고를 일반화시킨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는 1925년 제너럴 일렉트릭(GE) 사에서 내놓은 ‘모니터탑’이었다. 이 제품은 1931년에 100만대 생산을 돌파한 만큼 인기를 끌었다. 1939년에는 냉동실을 갖춘 이중 온도 체계의 냉동 냉장고가 선을 보였으며, 가정용 냉동 냉장고도 1955년에 출시되었다.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선사시대 이래 처음으로 음식의 보관에 대한 염려 없이 다양한 식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자체적인 식품 조달이 불가능한 도시인들에게는 냉장고가 필수품이다. 때문에 196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냉장고를 흑백TV 및 세탁기와 함께 ‘신이 내린 세 가지 물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초기에는 냉장고의 냉매로 암모니아 등이 사용되었으나 유독가스 및 악취가 문제시되었다. 1930년 듀퐁사가 화학적으로 안정된 프레온 가스를 냉매로 채택해 널리 쓰였으나,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알려진 이후 천연가스를 냉매로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예 냉매가 필요 없는 전자냉장고까지 등장했다. 냉매가 필요 없는 까닭은 ‘펠티어 효과’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펠티어 효과란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두 종류의 도체를 결합하고 전류를 흐르도록 하면 한쪽의 접점은 발열해 온도가 상승하고 다른 쪽의 접점에서는 흡열하여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이 같은 펠티어 소자를 이용한 제품으로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김치냉장고이다. 전자냉장고는 압축기가 없으므로 소음도 적으며 소형화시킬 수 있고 고장이 적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펠티어 소자의 가격이 비싸고 열효율이 낮다는 단점도 지닌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펠티어 효과를 이용한 각종 특허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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