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인류 미래에 투자한 ‘죽음의 상인’

[세상을 바꾼 발명품] 세상을 바꾼 발명품 (50-끝) 다이너마이트

아주 작은 크기의 나노 세계에서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알프레드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도 사실은 자연 속의 나노 물질을 응용한 대표적 사례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기 전에 화약으로 많이 쓰이던 물질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이라는 무색투명한 기름 상태의 액체였다. 1847년 이탈리아의 소브레로에 의해 처음 합성된 이 물질은 폭발할 경우 순식간에 원래 부피보다 1200배 이상 늘어난 기체로 바뀌고 5000℃ 이상의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나이트로글리세린에는 단점이 하나 있었다. 약간의 충격에도 폭발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 바로 그것. 때문에 수시로 폭발사고가 발생했는데, 노벨의 막내동생도 그 같은 폭발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모은 돈으로 노벨상을 제정했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모은 돈으로 노벨상을 제정했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동생의 사고 후 부친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노벨은 호수에 배를 띄우고 실험을 하는 등 좀 더 안전한 폭약의 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대 위의 시약이 숯가루에 쏟아진 후 모두 스며드는 현상을 보곤 액체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을 고체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같은 과정을 거쳐 노벨이 찾아낸 것이 바로 백악기시대에 번성했던 바다돌말의 퇴적물인 규조토였다. 그가 공장 뒷산에서 흔히 구할 수 있었던 규조토는 수백 나노미터의 작은 공기방울로 이뤄진 다공체 구조를 지니고 있어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규조토는 숯가루보다 나이트로글리세린을 2배 이상 빨아들였으며, 여기에 흡수된 나이트로글리세린은 망치로 두드려도 폭발하지 않을 만큼 안전한 물질로 변신했다. 규조토에 흡수된 나이트로글리세린을 폭발시킬 수 있는 뇌관까지 개발한 노벨은 1867년부터 ‘다이너마이트’라는 상표명으로 그 새로운 화약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다이너마이트는 힘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나미스(dinamis)’에서 비롯된 신조어인데, 이 새로운 화약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그 무렵 수에즈운하가 건설되고 알프스산맥에 터널이 개통되는 등의 호재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노벨은 단숨에 돈방석에 올랐다.

평생 355개에 달하는 특허 취득해

다이너마이트는 운반 및 보관 뿐만 아니라 발파 작업시 폭약을 설치하는 작업도 쉽고 안전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는 뇌관을 사용해야만 폭발하므로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벨은 1887년 무연화약을 발명했으며, 이 화약은 폭탄과 기뢰 등에 사용되었다.

노벨은 형제들과 함께 석유산업에 진출해 유럽 최대의 부호로 떠올랐으나, 의외로 그의 생활은 매우 단순했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사람을 만나거나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싫어한 그는 은퇴 후에도 연구와 실험에 매달릴 만큼 발명에 열정적이었다.

“1년에 1000개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중 오직 하나만이 쓸모 있는 것으로 밝혀져도 나는 만족한다”는 말에서 그의 성실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평생 355개의 특허를 취득했으며, 화약 외에도 로켓, 비행기, 축음기, 축전지 등에 대해 연구했다.

그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노벨상을 제정한 이유에 대해 항상 따라다니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진다. 1888년 프랑스의 한 신문에 갑자기 노벨의 죽음을 알리는 오보 기사가 게재된 것. 멀쩡히 살아 있었던 노벨은 그 기사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부고 기사의 제목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 그의 친형인 루드비그 노벨의 사망 사실을 그의 죽음으로 착각한 신문기자의 오보에서 비롯된 이 해프닝으로 인해 노벨이 재산을 모두 기부해 노벨상을 제정하게 되었다고 전해지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운반 및 보관뿐만 아니라 발파 작업시 폭약을 설치하는 작업도 쉽고 안전하게 만들어주었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운반 및 보관뿐만 아니라 발파 작업시 폭약을 설치하는 작업도 쉽고 안전하게 만들어주었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노벨은 말년에 협심증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들이 권한 약은 바로 다이너마이트의 재료였던 나이트로글리세린이었다. 나이트로글리세린은 맛이 달아 다이너마이트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이 수시로 먹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를 먹으면 협심증 환자들에게서 발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것.

하지만 노벨은 의사들의 말을 납득하지 않았고, 결국 1896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00년 후 미국의 약리학자 루이스 이그나로 박사가 나이트로글리세린의 협심증 치료 효과에 대해 연구해 나이트로글리세린이 분해됐을 때 발생하는 산화질소가 혈관을 이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이 사망한 지 며칠 후 유언장이 공개되었고, 그 유언에 따라 노벨재단이 설립되어 1901년 12월 11일 노벨상의 첫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노벨상을 제정했던 그의 바람대로 사망 후 신문에 보도된 노벨의 부고 기사 내용은 친형의 사망 후 일어났던 오보 기사 해프닝 때와는 전혀 달랐다. 거기에는 “노벨은 자신만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고 헌신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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