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이름이 얼굴에 영향 준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09

연예인들의 이름을 보면 얼굴이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경우 본명이 아니라 연예계에 데뷔할 때 지은 예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딱 맞아 당연히 예명이라고 생각는데 알고 보면 본명인 경우도 있다. 배우 임수정 씨와 수애 씨가 이런 경우다(적어도 필자에게는). 참고로 임수정은 본명 그대로를 쓴 거고 수애는 박수애에서 성을 뺀 반(半)예명이다.

그런데 두 이름이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좀 다른 것 같다. 임수정 씨의 경우 맑다고까지 할 수 있는 청순한 외모에서 이름과 음이 같은 보석 수정(水晶)이 연상되므로 잘 어울린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수애 씨의 경우 우아하면서도 감수성 있는 분위기를 이름이 잘 살리고 있지만 딱히 왜 그런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름에서 구체적인 뭔가가 떠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발음이나 글자 형태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필자 개인의 인상일 뿐인데 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한 걸까.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는 소리와 형태가 임의적이지 않다는 현상을 관찰했다. 훗날 ‘보우바-키키 효과(bouba-kiki effect)’로 불리게 되는데 독자들도 이 자리에서 한 번 시도해보라. 아래 그림을 보면 도형 두 개가 있다. 지구 오지의 한 부족은 이 가운데 하나를 보우바, 하나를 키키라고 부른다. 어느 게 보우바이고 어느 게 키키일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응답자의 95~98%가 왼쪽 곡선 도형을 ‘보우바’로 오른쪽 삐쭉삐쭉한 도형을 ‘키키’라고 답했다.

키키 효과는 청각과 시각이 연결돼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어느 쪽이 보우바와 잘 어울리고 어느 쪽이 키키와 잘 어울릴까.  ⓒ PNAS

키키 효과는 청각과 시각이 연결돼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어느 쪽이 보우바와 잘 어울리고 어느 쪽이 키키와 잘 어울릴까. ⓒ PNAS

그 뒤 우리가 일상의 사물에 붙여준 많은 이름들이 단순히 임의적인 게 아니라 이런 청각과 시각의 어울림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예인으로 데뷔할 때 당사자 또는 기획사에서 외모나 분위기, 컨셉트에 잘 어울리는 예명을 짓는 게 주관적인 판단인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외모의 영향력은 이름에만 미치는 게 아니다.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들은 하지만 막상 겉모습만 보고 순식간에 그 사람의 성격과 지성, 능력 등 모든 걸 판단하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 한 출연자가 배우 유해진 씨와 같이 일하다보니 “뜻밖에도 섬세한 성격이라 놀랐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 아닐까.

얼굴-이름 어울림 효과

학술지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 2월 27일자에는 이름도 얼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밖의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얼굴이야 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생물적 변수, 즉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유전자나 호르몬의 작품이지(물론 영양상태에 따른 볼살의 양이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어떤 이름을 갖게 되느냐에 따라 생김새가 영향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얼굴이 유전뿐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데 주목했다. 예를 들어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실제 연구결과 그런 걸로 나타났고 이런 효과는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야 나타났다. 즉 두 사람이 오랫동안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얼굴까지 비슷해졌다는 말이다. 또 성격이 조급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에 비해 얼굴의 특정 근육이 긴장되는 경향이 커 결국에는 턱 모양에도 영향을 준다는 결과도 있다. 연구자들은 얼굴에 영향을 주는 환경요인 가운데 하나로 그 사람의 이름(본명)이 포함되는지 알아봤다.

실험방법은 간단하다. 모르는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 뒤 제시한 이름 네 개 가운데 본명일 것 같은 걸 하나 고르게 하는 것이다. 실제 하나가 본명이고 나머지는 임의로 뽑은 이름들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제대로 자리가 잡히지도 않은 얼굴을 보고 어울리는 이름을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결과는 임의로 선택했을 때의 확률인 25% 근처일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 121명을 대상으로 이스라엘 사람의 얼굴 사진과 이름으로 테스트한 결과 맞춘 확률이 평균 30%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프랑스 사람 116명을 대상으로 프랑스 사람의 얼굴 사진과 이름으로 똑 같은 테스트를 했고 맞춘 확률이 평균 40%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판단을 바탕으로 이름이 얼굴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얻은 연구자들은 이를 좀 더 일반화해보기로 했다. 즉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도 얼굴에서 이름을 유추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인물 데이터베이스에서 여성 이름 15개와 그 이름인 여성 3만6000여 명의 얼굴사진과 남성 이름 13개와 그 이름인 남성 5만8000여 명의 얼굴사진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어떤 연관성을 추출하도록 했다. 그 뒤 9만4000장의 얼굴사진에 대해 각각 이름 두 개를 제시하고 본명을 고르게 했다. 그 결과 정답을 맞춘 확률이 평균 59%로 임의의 값인 50%보다 꽤 높았다. 즉 이름이 정말 얼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얼굴-이름 어울림 효과(face-name matching effect)’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진 속 인물의 본명은 무엇일까. 이름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여러 사진으로 테스트할 경우 정답을 맞춘 평균값이 임의로 택한 경우인 25%에 가까워지겠지만 이스라엘에서 테스트한 결과는 30%, 프랑스에서 테스트한 결과는 40%에 이르렀다. 사진 속 인물의 본명은 Dan으로 38%가 정답을 맞췄다고 한다. ⓒ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

사진 속 인물의 본명은 무엇일까. 이름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여러 사진으로 테스트할 경우 정답을 맞춘 평균값이 임의로 택한 경우인 25%에 가까워지겠지만 이스라엘에서 테스트한 결과는 30%, 프랑스에서 테스트한 결과는 40%에 이르렀다. 사진 속 인물의 본명은 Dan으로 38%가 정답을 맞췄다고 한다. ⓒ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어울리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알게 모르게 이름과 맞는 헤어스타일을 선택한다. 헤어스타일은 얼굴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또 이름이 태도나 성향에도 영향을 미쳐 이름에 어울리는 표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변을 보면 좀 이상한 이름을 갖게 될 경우 그게 평생 스트레스였다가 성인이 돼 개명하고 나서 얼굴이 활짝 피고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설사 그 영향이 작을지언정 이름이 얼굴에 반영될 수 있다는 건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에서 사회적 표식(이름)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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