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6,2018

의학 발전에 기여한 인간 ‘모르모트’

뚜껑 달린 위를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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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르모트’하면 신약품이나 독성물 등의 생체실험에 이용되는 생쥐 비슷한 동물을 지칭한다.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고, 남아메리카가 원산인 설치류의 동물 기니피그(Guinea pig)가 정확한 이름이다.

알프스 등지에 서식하는 다람쥐의 일종인 Marmotte(마모트)와 생김새가 비슷해서 이런 혼동이 생긴 듯한데, 아무튼 모르모트하면 본래의 동물인 기니피그 뿐 아니라 인체를 대신하여 실험 대상이 되는 것들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흔히 모르모트라고도 불리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설치류 기니피그. ⓒ Free photo

흔히 모르모트라고도 불리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설치류 기니피그. ⓒ Free photo

오늘날에는 갖가지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첨단의학에 발달에 따라 요구되는 실험들도 매우 많기 때문에, 인류를 대신해 희생되고 있는 동물들의 수도 엄청난 수준이다.

모르모트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생물학, 의학 관련 연구소에서는, 인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추모제를 지내거나 위령비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을 그대로 생체실험으로 쓴다는 것은 그다지 일반적이지는 않다.

백신투여 실험 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간혹 있는데, 암 등의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나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사람들이 새로 개발된 약의 임상실험을 자청하는 경우 등에만 허용될 뿐이다.

모르모트의 어원이 된 알프스의 다람쥐 마모트. ⓒ Free photo

모르모트의 어원이 된 알프스의 다람쥐 마모트. ⓒ Free photo

인간 모르모트라면 이른바 ‘마루타’로 지칭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 등의 잔혹한 생체실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19세기 초엽 미국에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별 고통을 주지 않고도 사람 위(胃) 기능을 실험을 통해 밝혀내 관련 분야의 연구를 진전시킨 아주 기이한 일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새 등의 동물을 통한 실험으로 위에서 위액이 나오며 소화 기능을 한다는 어렴풋한 지식밖에는 알지 못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화의 과정이 이루어지는가는 알 수가 없었다.

미국의 5대호인 미시간호와 휴런호의 수로가 연결되는 곳에 위치한 매키노(Mackinac)라는 작은 섬마을에는 아메리칸 모피회사의 거래소가 있었다.

1840년대 매키노섬의 모습 ⓒ Free photo

1840년대 매키노섬의 모습 ⓒ Free photo

1822년 6월, 회사의 점포 근처에는 사냥한 동물의 가죽 등을 파려는 포수들, 구경나온 여행객들, 근처 요새에 주둔한 수비대의 병사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붐볐는데, 그 중에는 생 마르탱(Alexis Saint-Martin)이라는 19세의 프랑스계 캐나다 청년도 끼어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산탄총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잘못 발사돼 바로 옆에 있던 생 마르탱 청년의 몸에 수십 발의 탄환이 박혀 버렸던 것이다.

그 청년은 옷도 산산조각 나면서 몸에 불이 붙어 쓰러졌고, 사람들은 근처 요새 수비대에 도움을 요청해서 수비대의 군의였던 보먼트(William Beaumont; 1785-1853) 박사가 급히 달려왔다.

사람의 위에 관해 많은 연구성과를 냈던 의사 윌리엄 보먼트. ⓒ Free photo

사람의 위에 관해 많은 연구성과를 냈던 의사 윌리엄 보먼트. ⓒ Free photo

그러나 그 청년의 몸에는 어른의 머리보다 더 큰 구멍이 생겼고 늑골의 일부가 날아가는 등 제대로 치료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보먼트는 일단 응급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생 마르탱이 하루, 이틀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 마르탱은 죽지 않고 기적같이 버텨 내었다고 한다. 보먼트는 1년 가까이 그를 치료했는데, 보먼트의 정성어린 치료와 간호 덕분에 마르탱은 거의 건강을 회복했으나, 찢어진 위는 아물지 않고 약 6cm정도 되는 구멍을 남겼다.

처음에는 위 속의 음식이 구멍으로 새어 나오곤 했으나,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자연적인 치유력 덕분인지 위 내면의 막이 자라서 구멍을 덮어 일종의 뚜껑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위의 뚜껑은 안의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했으나, 손으로 누르면 쉽게 안쪽으로 밀어 넣어서 위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전무후무한 ‘뚜껑 달린 위를 가진 사람’이 탄생한 것이다.

보먼트는 생 마르탱이 완전히 체력을 회복한 후, 그의 위의 내부를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관찰하고, 소화에 관한 실험과 연구를 하기로 했다.

관찰 결과, 위액은 음식물이 없을 때에는 분비되지 않으며 식사 전에 미리 만들어져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이 들어가야만 분비된다는 것, 위액은 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위 밖에서도 음식물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뚜껑 달린 위의 실험에 관한 보먼트의 논문 ⓒ Free photo

뚜껑 달린 위의 실험에 관한 보먼트의 논문 ⓒ Free photo

또한, 쇠고기, 돼지고기, 양배추, 빵조각 등을 각각 명주실에 묶어서 함께 위 안으로 넣은 후, 시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속도로 소화가 진행되는지 실험했다. 아울러 위액이 소화 작용을 하기 위한 온도와 기타 조건 등도 연구했다.

생 마르탱은 자기가 보먼트의 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갈수록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한때 도망치기도 했으나, 보먼트의 은혜를 생각해서인지 다시 돌아 왔다고 한다.

생 마르탱은 그 후로도 보먼트의 인간 모르모트 노릇을 했고,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83살까지 비교적 장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서운 총기오발 사고가 뜻밖에도 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 위의 기능과 위액의 작용, 소화의 메커니즘 등이 밝혀졌고, 관련 의학 및 생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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