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의사가 환자에게 감정 느낀다면…

박지욱의 메디시네마(65) 굿닥터

의사들도 환자 보는 일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아야 출세도 하고 돈도 버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진료 외에 이런저런 연줄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요. 하지만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는 환자입니다.

의사들은 학생 때부터 환자-의사 관계에 대해 배웁니다. 이전에는 ‘과학적인’ 관계를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인간적인’ 관계도 중시하라고 가르칩니다. 의사들이 너무나도 매정하고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탓이겠지요.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의학 교육은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질병을 앓고 있는 고통 받는 주체로 이해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의사가 인간적이다 못해 환자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많은 환자들은 의사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사와 인간적으로 터놓고 지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럴까요?

환자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낀 의사의 파국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혹시 자신의 주치의와 친해져 친구가 되었다면, 주치의는 다른 사람으로 얼른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의사도 인간이다 보니 희로애락이라는 감정 속으로 휩쓸리다 보면(그렇지 않으면 친구라 할 수 없겠지요?)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되기 십상이지요. 영화 <굿 닥터>는 환자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낀 의사의 파국을 그리고 있습니다.

감염내과의 레지던트인 마틴, 평범해 보이는 의사입니다. 하지만 퇴근 후에도 만나는 사람도 없이 외톨이로 지내는 청년이네요. 어느 날 자신의 환자로 입원한 소녀 ‘다이앤’을 본 후로는 슬슬 그녀에게 눈길이 끌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환자는 경과가 좋아서 재빨리 퇴원해버리네요. 마틴이 많이 아쉬워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이앤의 부모가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환자의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마틴은 그녀가 너무 그리워 병원으로 불러들일 계략을 꾸밉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 같았는데 뜻하지 않은 일들이 터집니다.

The good doctor. ⓒ 포스터

The good doctor. ⓒ 포스터

이 영화는 사랑-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에 눈먼 의사의 사사로운 욕심에 희생된 불행한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의 관계에서 금칙선을 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요람을 흔드는 손(1992년)>, <사이드 이펙트(2013년)> 같은 영화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잘못된 만남’을 통해 자신의 목숨까지 잃은 의사의 영화 같은 실화도 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한번 알아볼까요?

바그너의 후원자, 루트비히 2세의 비극

비극의 주인공은 구덴(Johann Bernhard Aloys von Gudden ; 1824~1886)으로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인 1886년에 바바리아 왕국의 수도인 뮌헨에서 살던 의사입니다. 그는 뮌헨대학교의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저명한 신경해부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를 비극으로 이끌어갈 환자는 왕국의 통치자인 루트비히2세(Ludwig II)입니다.

독일권에서는 프로이센 다음으로 강성한 나라였던 바바리아왕국의 루트비히 2세는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이야기는 많이 남겼습니다. 일단 그는 아주 미남이었고, 18세에 왕이 되었고(1864년), 죽을 때까지 결혼도 안 해서 성적인 정체성이 의심스러웠지만, 멋진 궁전을 세우는 취미에 더해 음악가 바그너를 물심양면 지원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태평성대에 이런 일을 했다면 성군으로 이름을 드날렸겠지만 그가 살던 시대는 그리 녹녹한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와 재상 비스마르크는독일 통일을 위한 전쟁을 불사했고, 이에 반발한 바바리아를 포함하는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연합하여 북독일 연방의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입니다(1866년) . 집권 3년 차 때였지요. 물론 7주 만에 프로이센이 승리를 거둡니다.

4년 후에 벌어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71)이 터져 바바리아는 프로이센에 지원군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물리쳐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 제1제국 수립을 선포합니다(1871년). 하지만 루트비히2세는 이곳에 가지도 않습니다. 프로이센 측에서 좋을리 없겠지요?

이처럼 주변 정세가 격랑 속에 있었지만 왕은 멋진 궁전을 짓기만 하고 호사스러운 생활과 기행을 일삼으며 대내외적인 정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재정이 파탄이 나기 시작합니다.

정부 각료들이 왕에게 간언을 하기 시작하지만 왕은 귓등으로 흘리고 맙니다. 참다못한 각료들은 왕이 국정 수행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고 모종의 조치를 준비합니다.

바바리아의 헌법에 의하면 왕이 장기간 국정수행 능력이 없을 때에는 국정에서 배재할 수 있었기에 이를 이용하여 왕을 폐위시키기로 한 것이지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왕국 최고의 정신과의사인 구덴이 불려옵니다. 1886년 3월 경이었습니다.

구덴은 이미 국왕이 동생인 오토(Otto) 공을 15년 동안 치료해왔던 왕실의 주치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진료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각료들, 측근들, 시종들을 통해 국왕의 특이한 행동에 대한 자료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5월에 내리고 이를 각료들에게 보고합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리고 추가적으로 3명의 정신과의사들을 보고서 작성에 참여시켜 6월8일에 4명의 정신과의사들이 만장일치로 서명한  의학 보고서를 완성합니다.

보고서의 내용은 왕은 편집증을 보이는 정신병에 걸렸으며, 왕은 자신의 의지로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 병은 나을 수 없어 죽을 때까지 점점 나빠진다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더 이상 통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학적 선언입니다.           –

1886년 6월 11일 0시를 기해 국왕에 대한 체포 명령이 내려지고, 04시에는 왕이 머물고 있는 노이슈바인스타인 성에 정부 대표단과 구덴이 도착합니다. 한밤 중에 잠을 깬 왕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이미 자신의 동생인 오토가 즉위한 다음이었으니 권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아름다운 성에서 끌려나온 왕은 뮌헨 남쪽의 호숫가에 있는 베르그 성으로 호송되었고 이곳에 유폐됩니다.

루트비히2세가 체포된 노이슈반스타인 성.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성이다. ⓒ 위키백과

루트비히2세가 체포된 노이슈반스타인 성.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성이다. ⓒ 위키백과

6월 13일 구덴이 자신의 환자가 루트비히2세를 방문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 6시 경에 두 사람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숫가로 산책을 나섭니다. 30분 정도 길을 걷다가 왕은 의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고, 의사는 뒤따라오던 경호원들을 물립니다. 두 사람은 산책을 계속했고 경호원들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는 비가 내렸지만 늦은 시각이 되도록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폭우 속에 수색이 시작되었고, 호수에서 떠있는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왕은 부검을 받았고 사인은 익사라는 공식 발표가 납니다.

하지만 이 발표는 석연치 않습니다. 왕의 아주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호수의 수심이 익사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또 부검 소견서에는 익사체에 발견되는 구강 내 거품이나 폐의 수분 흔적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니까요. 다만 왕의 이상한 행동을 설명해줄 뇌 전두엽의 이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같이 죽은 의사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상합니다. 의사의 시신에는 강한 타격을 받은 흔적과 목 졸린 흔적이 분명이 있어 누가 보아도 피살체였지만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은 없었습니다. 도대체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루트비히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오토.  ⓒ 위키백과

루트비히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오토. ⓒ 위키백과

하여간 정신병으로 폐위된 왕과 그를 진단한 의사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새로 즉위한 국왕 역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습니다. 음모론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요? 결국 권력은 왕을 대신해 섭정을 펼친 왕의 작은 아버지인 루티폴트(Lutipold) 공의 손으로 넘어갔고, 26년이 지난 1912년에 이 왕국은 독일 제국에 편입되어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구덴의 마지막 행적은 지금도 의학 역사 연구가들에게 의문을 던져줍니다. 존경 받고 실력 있는 학자이며 많은 제자들을 키운 그가 왜 진찰하지도 않은 왕의 진단서를 썼을까요? 특히 정신질환에 관련되었고, 왕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진단서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동참한 다른 전문가들은 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을까요?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멋진 성을 짓고 그 속에 은둔해 살았던 실성한 왕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의 몰락을 도왔던 저명한 정신과의사의 죽음은 궁금증에 궁금증을 더할 뿐 진실은 수면 위로 떠오르질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의사는 진단서를 쓸 때 반드시 자신이 진료한 환자에 대해, 아는 것을 가감없이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의사는 언제나 환자와 일정한 거리(심리적이면서도 물리적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께서는 의사가 너무 정 없이 군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그들을 미워하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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