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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육류가 발암물질이라고?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44

필자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다. 집에서도 미역국이나 김치찌개에 고기가 들어있으면 피해서 먹는다. 기회가 될 때마다 고기를 넣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생일 때를 빼면 반영이 거의 안 된다. 점심약속에 메뉴 선택권이 있으면 파스타집을 즐겨 간다.

아무튼 필자가 먼저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한 기억이 없다. 복날도 있고 해서 집에서 종종 닭백숙을 하므로 닭고기는 어느 정도 먹지만(달걀은 좋아해서 하루 한두 개 먹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1년에 먹는 양을 다 합쳐도 열 근(6kg)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다소 장황하게 식성을 밝힌 건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에서 한 발 물러난 제3자의 입장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난 26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발암물질로 분류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술이나 담배도 아니고 남녀노소가 늘 먹는 식재료를 두고 발암물질이라니, 그것도 WHO 같은 권위있는 기관의 발표다보니 국내외적으로 여파가 대단하다.

‘고기 많이 먹으면 암 위험성 높아진다’와 ‘고기가 발암물질’은 전혀 다른 얘기

붉은 고기는 포유류의 근육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소고기와 돼지고기다(다른 포유류 고기는 거의 안 먹으므로). 가공육은 소시지, 햄 같은 식품이다.

사실 붉은 고기와 가공육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동안 이런 육류와 암의 연관성을 밝혔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한 뉴스가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가 충격적인 건,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와 고기가 발암물질이라는 얘기의 뉘앙스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암연구소의 보고서는 아직 인터넷에 올라와있지 않은 것 같고 대신 이번 발표와 관련한 Q&A 형식의 문서가 보인다. 또 학술지 ‘랜싯 종양학’ 사이트에는 이번 발표의 의미를 다룬 글이 실렸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IARC의 발표가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난 26일 국제암연구소는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발암물질(또는 그럴 가능성이 큰 물질)로 분류했다고 발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요리와 가공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긴다고 추측했지만 날고기의 경우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없어 답을 할 수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 강석기

지난 26일 국제암연구소는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발암물질(또는 그럴 가능성이 큰 물질)로 분류했다고 발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요리와 가공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긴다고 추측했지만 날고기의 경우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없어 답을 할 수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 강석기

 

먼저 이번 발표는 IARC가 수행한 실험 또는 역학조사의 결과가 아니다. 육류소비와 암의 연관성을 다룬 800여 건의 연구결과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즉 메타연구다. 붉은 고기에 대한 연구가 700여 건, 가공육에 대한 연구가 400여 건이다. 즉 이 가운데 300건은 둘 다 조사한 연구라는 말이다.

지구촌 사람들의 육류소비량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붉은 고기의 경우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5% 미만에서 100%에 이르는 곳도 있고, 가공육 역시 2% 미만에서 65%에 이르는 곳이 있다. 세계 평균을 보면 붉은 고기의 경우 하루 섭취량이 50~100그램이라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소고기, 돼지고기 섭취량은 각각 10.3kg, 20.9kg(2013년)으로 합치면 31.2kg, 즉 하루 섭취량 85g에 해당한다.

안전한 섭취량은 제시하지 않아

먼저 붉은 고기와 암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를 보면 대장암(직장암 포함)과 연관성을 알아본 대규모 역학조사 14건 가운데 절반에서 육류 섭취량과 암 위험성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가공육의 경우는 18건 가운데 12건에서 관계가 있었다.

이런 연구결과들의 데이터를 합쳐 다시 분석한 결과 붉은 고기의 경우 하루 100g을 먹을 때마다 대장암에 걸릴 위험성이 17% 증가하고 가공육의 경우 50g을 먹을 때마다 18% 증가한다는 ‘통계적’ 결과를 얻었다. 한편 15가지가 넘는 다른 유형의 암에 대해서도 조사했는데 붉은 고기의 경우 췌장암, 전립선암과 관계가 있고 가공육은 위암과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무튼 이런 분석을 토대로 IARC의 실무단(미국인 8명을 포함해 10개국 22명의 전문가들)은 가공육에 대해서는 ‘섭취할 때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충분해’ 1급 물질(사람에게 암을 유발하는 물질)로 분류했고 붉은 고기에 대해서는 ‘섭취할 때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제한적이어서’ 2A급 물질(사람에게 아마도 암을 유발할 물질)로 분류했다.

IARC에서 배포한 Q&A 문서에는 이번 발표와 관련된 다양한 가상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있는데 읽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이 꽤 된다. 먼저 발암 위험성의 증가폭으로 붉은 육류는 하루 100g당 17%, 가공육은 50g당 18%로 그렇게 뚜렷한 수치로 보이지 않는다. 70%(1.7배), 80%(1.8배)라면 모를까 매일 50g, 100g이라는 상당량을 먹을 때 위험도가 이 정도 늘어난다고 발암물질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IARC는 암 위험성이 소폭의 증가를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기 때문에 충분히 발암물질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험성을 연간 암환자 사망자수로 환산했는데, 1급 물질인 가공육 섭취로 암에 걸려 죽은 사람이 세계에서 34,000명, 2A급 물질인 붉은 육류로 죽은 사람이 5만 명(발암물질로 확증될 경우) 수준이다.

참고로 담배(흡연)로 인한 암(주로 폐암)으로 매년 100만 명이 죽고 술(음주)로 인한 암(주로 간암)으로 매년 60만 명이 죽는다고 한다.

한편 가공육이 담배와 석면이 속해있는 1급 물질에 속한 게 발암성이 그만큼 큰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며 “분류는 암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의 확실성에 따른 것이지 위험성의 크기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굳이 발암물질로 분류해 혼란을 유발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데 발암물질 규정 얘기를 듣고 보통 사람들이 궁금해 할 내용에 대해서는 대답이 좀 맥빠진다. 즉 “그렇다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냐?”는 질문에 “육류섭취는 건강에 좋은 면도 있다. 다만 각 나라는 붉은 고기와 가공육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고하는데, 심장병과 당뇨병 등으로 인한 사망 위험성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먹어야 안전한가?”라는 질문에는 “위험성은 섭취량이 많을수록 커지지만 안전한 수준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고 답했다. 즉 육류를 먹되 조금 먹는 게 좋다(필자처럼?)는 말이다.

한편 붉은 고기와 가공육이 암을 일으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요리와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자들(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헤테로고리방향족아민(HAA)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답하면서도 아직까지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육회 같은 날고기를 먹으면 괜찮을까? 이에 대해서는 “관련 데이터가 없어 답을 줄 수 없다”며 “하지만 날고기를 먹을 때는 감염 위험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결과에 대해 각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IARC는 발암성에 대한 증거를 평가할 뿐 보건정책에 대한 권고는 하지 않는다”며 “각국 정부는 이번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육류의 다른 장단점을 고려해 육류섭취에 대한 권고사항을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Q&A를 읽다보니 이 정도 상황에서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굳이 발암물질(또는 가능성이 큰 물질)로 분류해 사람들의 혼란을 유발할(뻔히 예상되는)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오늘날 과도한 육류 섭취는 큰 문제다. 인류의 건강에도 위협이 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지구촌 환경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각 10억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키우느라 들어가는 곡물과 물, 이 동물들이 내놓는 똥오줌, 메탄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인구가 많은 개도국에서 육류 섭취량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80년 소고기 돼지고기 연간 소비량은 8.9kg이었지만 불과 한 세대가 지난 2013년에는 세 배가 넘는 31.3kg에 이르렀다(다행히 최근에는 성장세가 둔화됐다).

이번 발표와 그에 따른 반응을 보면서 자기 건강(이익)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삶의 터전인 지구의 건강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다른 많은 경우처럼 이번 사태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면서 일시적으로 주춤한 육류소비도 회복될 것이다.

내 건강은 둘째로 치고라도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도 지나친 육류섭취는 자제해야 하는 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의 의무라는 말로 글을 마친다면 너무 도식적인 구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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