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8,2019

유전자는 ‘암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원숭이와 RNA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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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miR) 이야기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통계물리학은 획기적인 도약을 거듭했다. 바라바시 교수의 <링크>라는 책으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척도 없는 네트워크’가 시스템 생물학과 융합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유전학자들과 분자생물학자들의 환원주의적 연구는 자연을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싶어하는 전일론적 관점을 지닌 과학자들에게 넓은 기회를 열어주었다. 환원론과 전일론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다. 과학과 과학사에 무지한 이들일 수록 두 관점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루드비히 폰 버틀란피, 때이른 시스템생물학

충분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버틀란피(Ludwig von Bertalanffy)는 <일반체계이론>1으로 성급하게 생물학에 전일론을 도입하려 했다. 그는 시스템을 “상호작용하고 있는 요소들의 복합체(complexes of elements standing in interaction)”라고 정의했고, 물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등 성질의 여하를 불문하고 시스템 일반에 적합한 원리를 찾으려 했다.

일반체계이론을 소개하는 마지막 장에서, 버틀란피는 ‘과학의 통합’을 언급한다2. 카르납에 의해 제시된 ‘과학의 통합’은 과학의 모든 진술들이 결국 물리학적 언어로 표현되는 단계를 뜻한다3. 예를 들어 종, 유기체, 수정과 같은 생물학적 용어들은 카르납에 의하면 완성된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버틀란피는 카르납의 물리학적 환원주의에 반대한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버틀란피에 의하면 각각의 수준, 예를 들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의 수준에는 서로 다른 법칙이 통용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버틀란피는 각 수준에서 보이는 구조적 일치성을 통해 과학을 통합하려 했다. 아마 버틀란피처럼 심각하게 과학의 존재론적, 방법론적 환원주의에 맞서면서도, 과학자로서의 미덕, 즉 일반성을 추구하려 했던 과학자는 드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보이는 모순은 아름다울지 모른다.

버틀란피가 이처럼 원대한 야망을 꿈꾼 것은 1930년대였고,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모두 환원주의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단백질의 구조가 밝혀지고, 생명이 화학물질로 쪼개지는 승리의 순간에 열역학 법칙과 수학으로 무장한 버틀란피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이라는 분야가 탄생했다. 하지만 버틀란피가 시스템생물학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버틀란피의 일반체계이론은 사회과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4.


효모이종교잡법: 한국인 여성 과학자

생물학에 네트워크 이론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효모라는 단세포 진핵생물 때문이었다. 단백질간의 결합을 밝히는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한 논문이 한국인 여성 과학자에 의해 쓰였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효모이종교잡법(yeast-two hybrid)’이라는 기술은 한국인 여성 과학자 송옥규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5.

이 기술의 핵심은 효모의 전사인자 단백질을 둘로 쪼개는 데서 시작된다. 전사인자 단백질은 기능에 따라 두 개의 도메인(damain)으로 나눌 수 있는데, DNA에 결합하는 부위와, 전사를 활성화시키는 부위가 그것이다. 하나였던 단백질을 둘로 쪼개 놓으면 두 단백질이 결합하기 전까지는 전사인자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송옥규 박사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둘로 쪼갠 전사인자 각각에 결합여부를 알고 싶은 단백질들을 융합(fusion)하는 것이다. 잡종단백질을 만드는 셈인데, 단백질은 기능에 따라 도메인으로 구획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조작이 가능하다. 두 단백질이 결합하게 되면, 둘로 쪼개 놓은 전사인자의 DNA 결합 부위와 전사활성 부위가 가까워지게 되고 전사인자로서의 기능을 되찾는다.

이제 할 일은 전사인자가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확인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확인하는 유전자를 리포터(reporter)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종류의 리포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송옥규 박사는 베타-갈락토시데이즈(beta-galactosidase)를 사용했다. 베타-갈락토시데이즈는 어떤 화합물과 반응하면 효모를 파랗게 변색시킨다.

송옥규 박사의 스승인 스탠리 필즈(Stanley Fields)교수가 시스템생물학 교과서의 서문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6. 유전체의 정보가 해독되면서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이 컴퓨터과학과 융합하기 시작했지만, 시스템생물학이 생물정보학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생물정보학이 산적한 염기서열 데이터들로부터 상관관계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반면, 시스템생물학은 실험과 이론을 조합해서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하기 때문이다7.

시스템생물학에는 분자생물학 그리고 생리학의 전통이 강하게 배어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시드니 브레너가 시스템생물학은 예전부터 생리학이라고 부르던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8. 시스템생물학은 분자들의 상호작용, 유전자 발현 등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상호작용을 대규모로 이해하는 데 있어 실험적으로는 효모이종교잡법이, 유전자 발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마이크로어레이가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대규모 데이터들은 네트워크 이론과 함께 융합된다.


네트워크 스터디

인간과 침팬지의 두뇌에서 발현되는 양상이 다른 유전자들은 많다. 마이크로어레이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의 두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들 중 에너지 대사 혹은 단백질 접힘과 관련된 것들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가 있다. 이러한 유전자들의 염기서열을 비교해보면 다른 유전자들에 비해 빠르게 진화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각각의 유전자들이 인간의 두뇌가 진화하는 데 있어 어떤 기능을 담당했던 것인지, 혹은 그 유전자는 두뇌의 활동에서 어떤 기능을 가진 것인지에 대한 근거는 빈약하다9. 유전자를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 기준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유전자의 기능을 임의로 분류하는 데에 따른 위험도 있다.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암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의 기능분류는 모든 생물학적 과정을 고려할 수 없다.

인간과 침팬지에게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의 차이를, 유전자 각각의 기능에 따라 자리매김하는데 네트워크 이론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단백질 결합 네트워크도, 유전자 발현 네트워크도 ‘척도 없는 네트워크’임이 밝혀져 있다10. 함께 발현되는 유전자들은 클러스터를 이루고, 이러한 클러스터에 속하는 유전자군은 기능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11.

네트워크의 주변부에 속하는 유전자들일 수록 적응 선택을 겪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12. 따라서 한 유전자의 발현이 네트워크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관찰하고, 이를 인간과 침팬지를 대상으로 비교하면 발현 양상으로 해당 유전자가 적응 진화를 한 것인지, 중립 진화를 한 것인지 판단할 개연성이 높아진다13.

네트워크 이론은 인간과 침팬지에서 다르게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유전자 발현 네트워크 속에서 기능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네트워크 이론과 유전자 발현을 이용해서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밝히는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대뇌 피질에서 함께 발현되는 유전자들의 모듈보다 피질하 영역에서 함게 발현되는 유전자들의 모듈이 더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기존 진화론의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경가소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대뇌 피질의 유전자 발현 네트워크가, 진화 과정에서 적응 선택을 겪었다는 것은 진화학이 오래 전부터 예측해왔던 사실이다.

이제 그 예측이 유전자 발현의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스템생물학은 진화론과 융합 중이다.

발암 유전자는 암을 발병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트워크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방법론에는 제약이 있다. 특히 네트워크 이론의 도움으로 진화과정에서 중요한 유전자를 찾더라도, 진화과정 속에서 해당 유전자의 생물학적 기능을 자리매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학에서 유전자에 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칸트와 같은 철학자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목적론적 발상이다. 생물학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것이 기관이든 조직이든 세포든 유전자든 상관 없이 생물학은 생물학적 요소들의 기능을 추적하는데 성공해왔다. 이미 그 곳에서 칸트는 패배했다. 하지만 기능을 협소한 의미로 사용하게 되면 생물학자들은 칸트에게 다시금 패배할지도 모른다.

이미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가 노화에 대한 이론을 제기하며 이야기했듯이, 유전자의 기능은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다. 윌리암스의 다면발현(pleiotropy)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관여할 수 있음을 뜻한다.

윌리암스는 젊었을 때는 미모를 유지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늙어서는 노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는 뜻에서 다면발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형질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유전자의 기능은 하나가 아니다. 유전자의 기능을 ‘암 억제’, ‘발암’, ‘에너지 대사’처럼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이 넘어야 하는 한계 중 하나다.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것처럼 어떤 과학자가 “암 억제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암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발견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해당 유전자가 암세포의 증식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뿐이다.

유전자는 ‘암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코가 안경을 걸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1. 루드비히 폰 버틀란피, <일반체계이론>(대우학술총서번역 32), 민음사, 1990

2. Ludwig von Bertalanffy, An Outline of General System Theory,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1, No. 2. (Aug., 1950), pp. 134-165

3. Rudolf Carnap, The Unity of Science, 1934

4.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논문이 주로 국내에서 버틀란피가 인용되는 예라고 하겠다: 민병원, 복잡계이론과 국제정치학, 한국정치학회보, 2006; 권정임, 생태적 통합과학에 대한 전체론적 전망의 창출을 위해, 사회와 철학, 2009

5. Fields S, Song O., A novel genetic system to detect protein-protein interactions, Nature 340 (6230): 245–6, 1989

6. Fields, S. (2002) Forward to Discovering Genomics, Proteomics and Bioinformatics, A.M. Campbell and L.J. Heyer (San Francisco: Benjamin Cummings), p. ix.

7. 조광현, 시스템생물학-생명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21세기 융합연구,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8

8. Soraya de Chadarevian, Interview with sydney brenner,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Part C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Biological and Biomedical Sciences, 01/04/2009; 40(1):65-71. 다음 구절을 참고할 것. “The main issue raised by Brenner regards the relation of molecular biology to the new field of systems biology. Brenner defends the original programme of molecular biology-the molecular explanation of living processes-that in his view has yet to be completed. The programme of systems biology in contrast he views as either trivial or as not achievable since it purports to deal with inverse problems that are impossible to solve in complex living systems.”

9. Preuss, T. M., Caceres, M., Oldham, M. C. & Geschwind, D. H. Human brain evolution: insights from microarrays. Nature Rev. Genet. 5, 850–860 (2004)

10. Barabasi, A. L. & Oltvai, Z. N. Network biology: understanding the cell’s functional organization. Nature Rev. Genet. 5, 101–113 (2004).

11. Zhang, B. & Horvath, S. A general framework for weighted gene co-expression network analysis. Stat. Appl. Genet. Mol. Biol. 4, Article 17 (2005).

12. Kim, P. M., Korbel, J. O. & Gerstein, M. B. Positive selection at the protein network periphery: evaluation in terms of structural constraints and cellular context. Proc. Natl Acad. Sci. USA 104, 20274–20279 (2007)

13. Oldham, M. C., Horvath, S. & Geschwind, D. H. Conservation and evolution of gene coexpression networks in human and chimpanzee brains. Proc. Natl Acad. Sci. USA 103, 17973–1797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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