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우울증에 찍힌 사회적 낙인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2020년 세계 질병 부담 2위 질환 전망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아이돌 스타 고(故) 샤이니 종현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18일 세상을 등진 그는 유서의 내용처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영국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 중 8~12%가 1년에 한 번 정도는 우울증의 시기를 겪는다. 이처럼 흔한 질병이지만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의 낙인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울증을 그저 정신력이 약한 이들이 앓는 일종의 나약함 정도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이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이 특히 자신의 우울증을 주변에 알리기를 꺼려한다. 진정한 남자라면 자신의 약한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게 오래된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때로 평생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울증은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 Public Domain

우울증은 때로 평생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울증은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 Public Domain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울증은 여성들이 훨씬 많이 앓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연구결과들도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두 배 정도 높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최근 이에 반박하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에 발표된 미시간 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다.

이 연구를 진행한 리사 마틴 교수는 슬픔과 눈물 등의 고전적인 우울 증상에 대해 남성들이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남성의 우울증은 짜증이나 화, 공격성, 약물, 알코올 중독, 위험한 행동 등의 형태로 표현될 가능성이 여성에 비해 높다.

우울증에 대한 편견들 

이에 따라 마틴 교수는 남성 특유의 우울증 증상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기준을 만들어 남녀 5600여 명을 대상으로 우울증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우울증 유병률은 남성 30.6%, 여성 33.3%로서, 남성과 여성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적인 면에서 유의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에 관한 또 다른 편견 중의 하나는 ‘선진국병’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먹고살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자들이 걸리는 질병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우울증은 가난한 국가에서보다 부유한 국가에서 발병률이 훨씬 높게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울증은 비단 선진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우울증의 발병은 지역적인 편중 없이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우울증은 2020년에 세계 질병 부담 2위 질환이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편견들 외에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기분 전환을 좀 해보라거나 마음을 좀 편안하게 가져볼 것을 권한다.

그런데 이 같은 충고는 우울증이 결국 자기 잘못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즉, 본인이 스스로 더 노력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시선이다. 이미 마음이 약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충고가 더 큰 좌절감을 안겨줄 뿐이다. 故 샤이니 종현 역시 유서에서 자신의 고통을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우울증을 마음의 문제만으로 보는 것은 사실 잘못된 시각이다. 기본적으로는 뇌 속의 화학적 불균형이 원인이지만, 특정할 수 없는 여러 요인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상 후에 찾아오는 우울증처럼 뇌의 근본적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으며, 마취약 같은 약물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으로 인해 식욕 부진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우울증은 더 이상 마음의 문제가 아닌 몸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우울증은 결코 불치병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의 질병과는 달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어디에 기생하다가 언제 불현듯 나타날지는 진짜 아무도 알 수 없다. 정신 건강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므로 모든 우울증에 잘 듣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좋은 해답 중 하나 ‘우울한 케이크 상점’

우울증은 때로 평생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울증은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 스스로 우울증을 안고도 살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는 사례 하나가 바로 ‘우울한 케이크 상점(Depressed Cake Shop)’이다. 2013년 영국 런던에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매장이 처음 문을 연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우울한 케이크 상점이 등장하고 있다.

이 상점에서 파는 케이크는 모두 사람들의 정신질환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네 개 중 하나는 회색’이라는 제목이 붙은 케이크의 경우 여러 사람 중 한 명이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아도 외관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나와 대화해 달라’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도 팔린다.

우울한 케이크 상점의 수익금은 지역 정신보건 사업에 기부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케이크를 도구 삼아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대화하게 하고, 서로 도와줄 수 있도록 격려한다는 사실이다.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의 경우 단순히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담론의 시도 그 자체가 이 상점의 가장 큰 특징인 셈이다.

우울한 케이크 상점 같은 커뮤니티 형성은 우울증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덜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우울한 케이크 상점이 개장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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