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5,2019

‘아보가드로의 수’가 재정의된 까닭

노벨상 오디세이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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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주장한 이는 1803년 영국의 돌턴이다. 그러나 돌턴은 물이나 암모니아 등의 원자량을 잘못 계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때만 해도 원자와 분자의 정의가 정확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물의 화학식을 수소 1개가 모자란 ‘HO’로, 암모니아의 화학식은 수소 2개가 모자란 ‘NH’로 생각하고 계산했다. 원자는 원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입자이지만, 두 개 이상의 원자가 강한 힘으로 서로 결합해 하나의 독립된 입자로 행동하는 원자 집단인 분자에 대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를 바로잡은 과학자가 아보가드로다. 그는 181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체 분자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기본 입자(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같은 온도 및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존재하는 기체 입자(분자)의 수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같다고 했다.

분자가 실재하는 것을 증명하고 아보가드로의 수를 구한 공로로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장 바티스트 페랭. ⓒ Public Domain

분자가 실재하는 것을 증명하고 아보가드로의 수를 구한 공로로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장 바티스트 페랭. ⓒ Public Domain

화학의 역사를 바꿔놓은 혁신적인 아보가드로의 주장은 당시엔 ‘법칙’이 아니라 ‘가설’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원자와 분자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학, 전자기학, 역학 등의 고전물리학에서는 원자 및 분자의 존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후 분자의 존재는 약간 엉뚱한 분야에서 그 정체를 드러냈다. 1827년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이 현미경으로 물속의 꽃가루 입자를 관찰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 것. 물은 움직임 없이 정지해 있음에도 그 속의 꽃가루들은 매우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분자량 무게에 해당하는 분자 개수 구해

브라운 운동의 원인이 생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것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현상은 물리학자의 연구 대상이 됐다. 브라운 운동은 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였지만, 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꽃가루가 다양한 방향으로 복잡하게 운동하는 까닭은 꽃가루 입자가 수액 표면 위에 떠있는 액체의 분자와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이는 바로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이론적인 계산뿐만 아니라 브라운 운동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곧이어 발표됐다. 1908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장 바티스트 페랭은 식물의 수액에서 얻은 자황으로 혼탁액을 만든 다음 원하는 크기의 동일한 입자들을 아주 정교하게 얻어냈다.

그것을 이용해 페랭은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입자의 이동 거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한 것. 또한 페랭은 2g의 수소에 몇 개의 분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는 측정을 시도했다. 즉, 분자량의 무게에 해당하는 분자의 개수를 구한 것이다.

최종 연구결과는 1913년에 발표됐으며, 그는 그렇게 구한 값에 ‘아보가드로의 수’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보가드로를 기리기 위한 이 수치는 가장 중요한 물리상수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마침내 아보가드로가 분자의 존재를 처음 제안한 지 102년 만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아보가드로의 가설(법칙)에 의해서 수소뿐만 아니라 탄소, 산소, 질소, 암모니아 등 다양한 물질에 포함된 원자 및 분자의 수를 일정한 수로 묶어서 일컫는 말로 ‘몰(mole)’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탄소-12(핵자가 12개인 탄소의 동위원소)의 12g에 있는 원자의 개수와 같은 수의 구성요소를 포함한 물질의 양으로 정의된 몰은 1971년에 개최된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국제단위계의 기본단위로 제정됐다.

그런데 지난해 말 몰의 정의가 바뀌었다. 질량의 기본단위인 킬로그램(㎏)의 정의가 변함에 따라 특정 질량 안에 포함된 원자의 수를 세어야 하는 몰 역시 재정의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자의 정체를 먼저 밝혀낼 뻔했던 페랭

새롭게 정의된 몰은 탄소가 아니라 실리콘 구체에 들어있는 실리콘 원자의 수를 기준으로 하여 올해 5월 20일부터 공식 사용되고 있다.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아보가드로 프로젝트가 최근에서야 불변량인 상수를 기반으로 최종 확정된 셈이다.

장 바티스트 페랭은 1870년 9월 30일 프랑스의 릴에서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897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그 이듬해부터 파리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1910년에 물리화학 교수로 임명됐다.

그가 초기에 관심을 가진 연구 분야는 음극선의 성질에 관한 것이었다. 음극선관에서 음전하를 띤 선(ray)이 흘러나오며, 그것이 자장의 영향을 받아 구부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영국 캐번디시연구소의 조지프 존 톰슨은 페랭이 발견한 그 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원자 안에 있는 새로운 입자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 당시만 해도 원자는 분리될 수 없는 최소 단위라고 생각했기에 이 발견은 충격적이었다.

톰슨이 발견한 것은 원자의 구성 물질인 ‘전자’였다. 당시의 세계관을 바꾼 이 혁명적 연구 성과로 톰슨은 19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만약 페렝이 자신이 발견한 정체불명의 선이 음전하를 띠는 원인을 꾸준히 연구해 밝혀냈다면 20년 먼저 노벨상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물물리학연구소장 및 국제물리화학회장으로도 활동한 페랭은 1936년 제1차 인민전선 내각에서 졸리오 퀴리의 뒤를 이어 과학부 장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 1940년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1942년 4월 17일 머나먼 이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 후 1948년에 그의 유해는 조국으로 이송되어 파리에 있는 국립묘지 팡테옹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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