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9,2019

실험실 ‘미니 뇌’로 희귀질환 잡는다

스탠포드대에서 배양하는 3D 인간 피질 타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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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영상, 기록, 자극 등에 의한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상적 기능을 하는 뇌 조직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 기존 뇌 연구의 한계로 지목돼 왔다.

그런데 수년째 실험실에서 연구 목적으로 배양되고 있는 인간의 뇌가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세르쥬 파스카 박사팀이 성인 피부세포를 추출해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로 전환시킨 다음 3차원 세포 클러스터로 성장시킨 인간 피질 타원체(human cortical spheroids, hCS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완두콩 크기만한 이 타원체 안에는 뉴런이 대뇌 피질의 뉴런처럼 층을 이루고 있으며, 각각 전기 펄스로 통신한다. 타원체는 인간 뇌의 엽(葉) 및 하부구조와 매우 흡사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스탠포드대학의 파스카 박사팀이 배양한 티모시 증후군을 가진 인간 피질 타원체(human cortical spheroids, hCSs). ⓒ www.stanford.edu/PASCA LAB

스탠포드대학의 파스카 박사팀이 배양한 티모시 증후군을 가진 인간 피질 타원체(human cortical spheroids, hCSs). ⓒ www.stanford.edu/PASCA LAB

뇌 연구에서 또 하나의 애로사항은 발달의 다른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hCSs는 매우 오랜 기간(약 800일) 유지될 수 있고, 그동안 뇌의 발달을 단계별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또한 hCSs는 깊은 대뇌 피질층 및 표면적 대뇌 피질층으로부터의 신경세포 모두를 포함하며, 생체 내 태아 발달에 따른 전사적 분석과 매핑이 가능하다.

희귀질환의 경우 소수 사람들만이 해당되므로 임상시험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hCSs는 환자 자신의 피부세포로 만들어 약물 또는 약물의 조합을 시험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즉, 다양한 질병 과정에 맞춰 다양한 종류의 hCSs를 맞춤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형 의학의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는 셈이다.

맞춤형 의학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

파스카 박사팀이 지난해 배양한 티모시 증후군을 가진 hCSs가 좋은 사례다. 기형 및 신경학적 결함, 부정맥,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심한 장애를 일으키는 티모시 증후군은 종종 아동기의 조기 사망으로 이어져 연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희귀질환이다.

그런데 파스카 박사팀은 티모시 증후군 등을 앓던 환자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했다.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하자 줄기세포는 뇌세포로 성장했으며 피질 타원체로 알려진 두 개의 작은 타원체가 되었다. 하나는 뇌의 심층부를, 다른 하나는 피질을 모방한 것이다.

연구진은 두 타원체를 융합한 후 신경세포의 거동을 관찰한 결과, 건강한 뇌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건강한 뇌의 경우 심층부의 뉴런이 피질의 뉴런으로 이전되어 언어 및 사고 등을 담당하는 회로를 구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티모시 증후군의 hCSs 뉴런에서는 정상 뉴런보다 더 많이 이동하고 건너뛰는 것이 관측됐다.

최근에 파스카 박사팀은 거의 2년간 배양된 hCSs에서 성상교세포를 발견해 신경생물학 분야 권위지 ‘뉴런(Neuron)’ 지에 발표했다. 성상교세포는 사방으로 축삭과 수상돌기가 뻗어 있어 마치 별모양처럼 보이는 신경세포로서, 주변 뉴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으로 예상될 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세포다.

연구진이 hCSs에서 발견한 성상교세포는 실제 두뇌의 것과 유사하게 형태학적 및 기능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포의 성숙과 관련된 과정을 연구하면 자폐증 및 조현병과 같은 신경 발달 장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파스카 박사는 “이런 3차원 배양체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성상교세포에서 흥미로운 전이를 포착할 수 있었다”며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의 뇌 발달 양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파스카 박사는 “이 피질 타원체가 지금까지 보고된 것 중 가장 긴 인간세포 배양물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관련 과학자들은 이번 발견이 성상교세포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유전질환에서 무엇이 잘못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생각 및 감정은 전혀 생성되지 않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지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파스카 박사팀의 hCSs는 희소돌기 아교세포(Oligodendrocytes)라고 불리는 뇌의 주요 세포 유형 및 그 기능 장애와 관련된 희귀질환의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희소돌기 아교세포가 생성되지 못하면 수초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아 신경세포 간의 의사소통이 손상받는다. 또한 이 세포는 뉴런이 다른 뉴런과 통신하기 위해 사용하는 돌출부인 미엘린(myelin)을 형성한다. 미엘린은 축삭의 겉을 여러 겹으로 싸고 있는 인지질 성분의 막으로서, 미엘린수초라고도 한다.

연구진은 자신들이 만든 hCSs가 희소돌기 아교세포의 발달과 수초화(myelination ; 신경교세포가 뉴런의 축색을 감싸서 수초를 형성하는 발달과정)를 손상시키는 장애의 연구에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파스카 박사팀은 최근에 펠리제우스-메르츠바하 병에서 볼 수 있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지닌 새로운 hCSs를 만들어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및 가족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병은 중추신경계 백질의 수초 형성 부전으로 인해 여러 신경학적 증상을 나타내는 매우 희귀한 신경계통의 질환이다.

한편, hCSs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뇌 오가노이드 분야의 일부로 윤리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연구진은 자신들이 만든 hCSs가 ‘미니 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hCSs는 육체적인 부분과 연결되지 않아 생각과 감정을 전혀 생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hCSs는 쥐의 뇌보다 훨씬 작은, 지름 4㎜에 불과하다. 실제 뇌는 엄청난 양의 영양소를 필요로 하지만, hCSs는 더 깊은 부분에 영양소를 전달하는 혈관 네트워크가 없다. 또한 hCSs에 작동하는 순환계를 부착할 수 없으므로 현재의 기술로는 더 크고 더 발달된 인간 피질 타원체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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