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신호등 없애니 교통정체 풀린다?

역발상 과학 (23) 막히면 빼고, 혼잡하면 더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구성원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해야만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첨단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그런 첨단 기술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없게 된다.

첨단 교통과학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 Google

첨단 교통과학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 Google

지금 소개하는 ‘신호등을 없애 교통난을 해결한 도시’와 ‘정류장을 돌출시켜 교통 혼잡을 해소한 도시’ 사례는 첨단의 교통과학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역발상의 결과물들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불편은 조금씩 감수해야 과학기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사례인 것이다.

무단속과 선양보 시스템으로 교통 정체 해소

봄테(Bohmte)는 독일 니더작센 지방의 작은 도시다. 이 도시는 교통정체가 심하고, 안전에도 문제가 많은 곳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다 보니 도로에서는 트럭과 보행자, 그리고 자전거 이용자 등이 한 데 뒤섞이는 아찔한 장면이 자주 연출되곤 했다.

시 행정당국은 도로 확장 및 신호체계 개선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다소 위험한 역발상적 조치를 통해 교통 혼잡을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신호등과 인도를 없애고, 도로 바닥에 그려진 각종 교통관련 노상표지도 다 지워버린 것.

이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이유에 대해 시청 관계자는 “그동안 운전자들이 도로를 보행자보다는 운전자 위주로 조성되었다고 인식하여 속도제한이나 도로 표지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호등을 없애고 노상표지를 지워버린다면, 운전자들이 평소와 다른 환경에 불안함을 느껴서 오히려 과거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여겨졌다”라고 덧붙였다.

신호등과 노면표지가 사라진 봄테시 ⓒ publicspaceinfo.nl

신호등과 노면표지가 사라진 봄테시 ⓒ publicspaceinfo.nl

시청 당국은 교통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교통 신호와 관련된 인프라 증설보다는 운전자들이 배려와 안전을 우선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공간 나눠쓰기(Share Space)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역발상적 무단속·선양보 시스템은 이렇게 탄생했다.

프로그램 도입 이후 도로 한 중간만 아니면 운전자들은 아무 곳이나 주차할 수 있었고, 교통법규도 ‘속도제한’과 ‘무조건 양보’ 등 단 두 가지만 지키면 됐다. 프로그램이 처음 도입되고 신호등이 없어지자 차나 사람이나 모두 횡단보도를 무시하며 지나쳤다.

모두들 봄테시가 교통지옥으로 변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봄테시 경찰국 에 따르면 프로그램 시행 직전 해에 도심지의 사거리에서는 약 50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나, 시행 이후 사고 건수는 10건 아래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봄테시의 부시장은 “단속이 없다면 운전자들이 오히려 긴장해서 운전할 때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심스레 운전할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히며 “결과적으로 볼 때, 도로는 더욱 안전해 졌다”라고 강조했다.

돌출 정류장으로 만성적 주정차 문제 해소

역설적이게도 봄테시가 신호등이나 인도처럼 보행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시설들을 제거하여 더 안전한 교통 환경을 조성했다면, 우리나라의 안양시는 버스 정류장을 돌출시키는 역발상을 통해 교통 흐름을 크게 개선시키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버스 정류장은 대부분 차도에서 인도 쪽으로 움푹 들어간 버스베이(Bus-bay)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차량 통행을 우선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문제는 이런 형태의 버스정류장이 버스는 물론 버스이용자나 보행자에게 전혀 친화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바쁜 출퇴근 시간에는 버스가 버스베이로 진입하는 것을 꺼린다. 일단 버스베이로 들어간 버스는 많은 교통량으로 인해 본 도로로 재진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인 승용차들은 버스베이 공간에 들어가 불법 주·정차를 하는 경우가 증가했다.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돌출 정류장의 개념도 ⓒ 용인시청

돌출 정류장의 개념도 ⓒ 용인시청

이에 따라 안양시는 국내 최초로 지난해부터 인덕원과 흥안대로 등 3곳의 버스정류장을 버스베이가 아닌 차도 쪽으로 돌출된 확장형 버스정류장을 설치했다. 버스벌브(Bus-bulb)라는 이름의 이 버스정류장은 버스베이와 반대로 인도의 일부를 차도 쪽으로 넓힌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정류장은 교통량이 많은 관계로 승객을 태우려는 택시나 승용차가 버스정류장을 잠식하면서 교통 혼잡이 심각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안양시가 이들 정류장의 구조를 확장형으로 바꾼 후 8개월간의 시범 사업을 진행한 결과, 정류장 면적을 잠식했던 불법 주정차가 무려 80%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노선버스의 정류장 진입이 수월해지고, 승하차하는 승객들의 위험 요인이 사라지면서 대중교통 만족도가 크게 향상됐다고 안양시는 분석했다. 이 외에도 인도 폭이 넓어져 보행자와 주변 상가의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도 함께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안양시의 교통정책 담당자는 “기존에 버스베이로 운영될 때는 정류장이 주차장으로 변했지만, 현재는 이런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라고 말하며 “앞으로 돌출 형태의 버스벌브 정류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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