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소아마비의 또 다른 이름 ‘폴리오’

이름들의 오디세이(73)

2020.01.14 14:26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연초부터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폴리오 환자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으며 특히 백신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심상치 않은 소식이다.

관련 자료와 보도를 정리해보면 지난 해인 2019년에 모두 전세계적으로 366명의 폴리오 환자가 발생했다. 그 중 아프리카와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125명은 ‘야생형’ 폴리오바이러스(WPV; Wild poliovirus)가 원인이었고, 나머지 241명은 ‘백신형’ 폴리오바이러스(cVDPV; circulating vaccine derived poliovirus)가 병을 일으켰다.

폴리오 바이러스 ⓒ위키백과

폴리오 바이러스 ⓒ위키백과

폴리오 환자 발병은 2016년에 42명(야생형 37명/백신형 5명)으로 바닥을 찍은 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17년에는 환자가 전년 대비 3배에 조금 못 미치는 118명이었다. 하지만 그 해부터는 백신형 바이러스가 일으킨 폴리오가 96명으로 야생형 바이러스가 일으킨 22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후로 작년가지도 그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오히려 가팔라지고 있다.

‘야생형’ 바이러스는 원래부터 자연에 존재하는 길들여지지 않는 바이러스를 뜻하고, ‘백신형’ 바이러스는 예방 접종을 위해 우리 몸에 들인 순한 바이러스를 말한다.

야생바이러스야 아직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폴리오를 예방하기 위해 맞은 백신 때문에 폴리오에 걸린 사람이 241명이나 된다는 것이 접종 사업 전체에 암울한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다. 이것은 야생 늑대를 길들여 양치기 개로 키웠는데, 이 녀석들이 늑대의 야성을 회복해 양을 물어 뜯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쩌다가 폴리오 백신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걸까?

폴리오는 과거에 소아마비(小兒痲痺)라 불렀던 병이다. 영어의 ‘infantile(어린이) palsy(마비)’를 우리 말로 번역한 병명으로 썼다. 주로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 생기며 목숨을 잃거나 근육 마비 후유증을 남기는 무서운 감염병이다.

지금은 폴리오마이엘라이티스(poliomyelitis)의 줄임말인 폴리오(polio; 회색을 뜻하는 라틴어)로 부른다. 폴리오마이엘라이티스(poliomyelitis)는 뇌와 척수의 회백질(gray matter)에 생긴 염증이란 뜻으로, 바이러스가 회백질에 있는 운동세포를 공격하는 특성을 반영한 병명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폴리오를 앓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 아주 심각한 유행병으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여름에 아이들을 공격하고 겨울이면 사라졌다. 하지만 다음 해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을 집에 가두거나, 유행지역을 탈출하고, 주변을 철저히 소독하는 등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특히 1916년 여름에는 미국에서만 27,000명의 환자가 생겼고 그 4분의 1인 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5세가 안된 어린이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폴리오에 대한 실용적인 대책이 나온 것은 1952년이었다. 미국의 소크(Jonas Salk)는 포르말린으로 죽인(死) 폴리오바이러스를 ‘주사’해 우리 몸이 항체를 만들게 했다. 3번의 주사가 필요한 이 백신의 효능은 60~90% 수준이었고, 3년의 검증 기간을 거쳐 1955년부터 미국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접종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 백신은 소크의 사(死)백신 주사(IPV; inactivated polio vaccine)로 부른다.

1961년에는 두 번째 백신이 나온다. 역시 미국의 세이빈(Albert B. Sabin)이 만든 백신으로 독성을 없앤 살아있는(生) 바이러스를 ‘먹여’ 우리 몸이 항체를 만들게 했다. 세이빈의 생(生)백신 시럽(OPV; oral polio vaccine)이라 부른다.

먹는 백신이 나왔을 때는 이미 주사백신이 기선을 제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5년 동안의 집중적인 ‘주사’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접종을 못 받은 어린이가 미국에서만 9,000만 명이나 되었다. 더 이상 접종률도 오르지 않았고. 접종 시작과 함께 떨어지던 폴리오 발병도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먹는 백신이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굳이 힘들게 팔을 붙잡고 우는 아이 달래가며 주사를 놓는 것이 아니라 것이 아니라 시럽을 입안에 떨어뜨려만 주면 되니 무엇보다 접종이 간편하고 손쉬운 것이 큰 장점이었다.

더하여 몸 속으로 들어가 항체를 만들게 하는 ‘순한’ 바이러스가 한편으로는 장(腸)에서 증식한 후 변을 통해 빠져나와 주변을 오염시켰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이 바이러스를 집어먹고 자연스럽게 접종을 받는 효과를 일으켰다. 1회 복용으로 ‘접종의 전염’까지 일으키니, 3회 주사를 맞아야 하는 소크의 백신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폴리오 생백신(OPV)을 먹이는 장면. ⓒ여수 애양원 역사관

폴리오 생백신(OPV)을 먹이는 장면. ⓒ여수 애양원 역사관

1960년대가 되면 먹는 백신이 대세가 되고, 1970년대가 되면 국제적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소아과 의사들은 예방접종표에서 3회 주사를 지우고 빼고 1회 먹이는 시럽을 바꾸어 썼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왠만한 아이들이 모두 접종을 받게 되자 ‘야생형’ 바이러스 감염은 점점 드문 일이 된다. 그러자 백신으로 먹인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비까지 생기는 환자들이 일부 선진국에서 나타났다. 야생형 바이러스 감염으로 마비에 걸리는 확률은 1백만 감염 당 5,000명이고, 백신형 바이러스 감염으로 마비가 오는 경우는 1백만 접종 당 3명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접종 때문에 병에 걸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의사들은 20년 만인 1990년대에 생(生)백신을 포기하고 사(死) 백신으로 갈아탄다. 소아과 의사들은 다시 예방접종표에서 1회 시럽을 빼고 3회 주사를 넣어야 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현재는 4회 맞는 주사를 쓰고 있다.

필자가 배운 소아 접종표. 1984년 제정된 것이다. 폴리오백신을 5회 먹인다. ⓒ박지욱

필자가 배운 소아 접종표. 1984년 제정된 것이다. 폴리오백신을 5회 먹인다. ⓒ박지욱

2016년 접종표. 폴리오백신을 4회 주사한다. ⓒ박지욱

2016년 접종표. 폴리오백신을 4회 주사한다. ⓒ박지욱

하지만 생백신이 완전히 퇴출된 것은 아니다. 국제보건기구(WHO)가 1988년에 시작한 전세계적인 퇴치프로그램에는 생백신을 쓴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한 그 해의 환자 수가 35만 명이었는데, 30년 만인 2018년에 전세계에서 단 31명이 환자가 발생했으니 프로그램은 아주 큰 성과를 보았다. 사백신에 비해 가격은 1/3에 불과하고 접종이 쉽고, 접종 전염도 있는 생백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이 생백신 안에 든 살아있는 순한 폴리오바이러스, 장에서 면역 반응만 일으키고 변으로 배출되어 오래 살지 말고 죽어야 할 이 순한 바이러스가 오래 살면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독한 바이러스가 되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백신형 폴리오바이러스로 병에 걸린 196명은 모두 아프리카 12개국에서만 확인되었다. 관련 기관들은 이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전지구적으로 퍼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데 분주하다. 국내 관련 당국들도 주의를 기울여야할 사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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