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생쥐보다 사람이 만만한 지카바이러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70

오월 들어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더니 19일에는 서울의 낮 온도가 32도에 이르렀다. 정말 한여름 더위다. 이러다보니 모기의 등장도 빨라졌다. 한 세대전만 해도 5월에나 나오던 일본뇌염 주의보가 지난 4월 3일 벌써 발표됐다.

모기가 많아도 예전에는 성가신 정도였지만 이제는 좀 두렵기도 하다. 중남미를 휩쓸며 리우올림픽까지 위협하는 지카바이러스가 모기를 매개로 전염된다는 게 알려지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일본뇌염바이러스까지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뎅기바이러스 같은 모기 매개 병원체도 더워진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세계 각국은 ‘혜성처럼 등장한’ 지카바이러스의 실체를 밝히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찾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흔한 실험동물인 생쥐가 별 소용이 없다. 지카바이러스가 생쥐를 감염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람 같은 중형 포유류는 공격하면서 왜 달걀보다도 작고 가벼운 생쥐에게는 꼼짝하지 못하는 걸까.

세포에 감연한 지카바이러스(파란색)의 전자현미경 사진. 크기가 40나노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2000분의 1이다. 최근 지카바이러스가 인체의 선천면역계를 무력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세포에 감연한 지카바이러스(파란색)의 전자현미경 사진. 크기가 40나노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2000분의 1이다. 최근 지카바이러스가 인체의 선천면역계를 무력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선천면역계 신호 차단

5월 19일 학술지 ‘셀 숙주&미생물’ 사이트에는 이 질문에 답하는 논문이 실렸다.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 아이칸 의대 연구자들은 지카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의 선천면역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반면 생쥐 세포의 선천면역계는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지카바이러스의 NS5라는 단백질이 사람 세포에서 이런 작용을 한다.

원래 연구자들은 새로 주목받고 있는 플라비바이러스속(flavivirus)에 속하는 바이러스 네 종의 NS5 단백질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플라비바이러스속에는 황열바이러스, 뎅기바이러스, 웨스트나일바이러스, 일본뇌염바이러스 등 모기가 옮겨 사람에게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들이 속해있다. 지카바이러스 역시 플라비바이러스의 한 종류다.

인류에게 극심한 피해를 안겨준 황열바이러스, 뎅기바이러스, 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이 어떻게 사람을 감염시키는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NS5라는 단백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십여 년 전에 밝혀졌다. 즉 숙주인 사람 세포의 선천면역반응을 차단해 바이러스의 침입에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천면역이란 항원항체반응으로 알려진 적응면역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몸을 방어하는 체계다. 즉 우리 몸에 침투한 병원체에 대한 항체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려면 1주일 이상이 걸리므로 그 전까지는 선천면역계가 싸움을 해야 한다. 즉 외부 병원체와 접촉한 선천면역계 세포는 인터페론이라는 신호분자를 분비해 주변 세포들이 포식작용이나 염증반응 등 적절한 대응을 하게 유도한다. 그 결과 많은 병원체가 적응면역이 가동되기도 전에 패퇴한다.

연구자들은 지카바이러스 역시 NS5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정했고 실험 결과 정말 그렇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들은 세포 표면에 도달한 인터페론이 대응을 하라는 신호를 보내도 이를 세포핵 안에 있는 게놈까지 전달하지 못한다. 그 결과 항바이러스 유전자들을 발현시키지 못해 바이러스의 침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즉 세포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보다 자율성이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한 파국을 눈앞에 두고도 초연하다.

지카바이러스의 선천면역계 신호차단메커니즘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STAT2라는 전사인자를 파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사인자란 특정 유전자의 주변에 달라붙어 유전자 발현을 증폭시키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인터페론의 신호로 활성화된 STAT2는 세포핵으로 들어가 항바이러스 유전자들의 발현을 촉진한다.

흥미롭게도 뎅기바이러스 역시 NS5가 STAT2를 파괴해 신호가 전달되지 못하게 한다. 다만 뎅기바이러스는 UBR4라는 사람 세포의 단백질분해인자를 이용해 STAT2를 파괴하는 반면 지카바이러스는 UBR4와 무관하게 작동했다. 그러나 아직 파트너의 실체를 밝히지는 못한 상태다.

생쥐에도 STAT2가 있지만 사람의 STAT2와는 구조가 달라서인지 지카바이러스의 NS5가 힘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생쥐 세포에 들어간 지카바이러스는 항바이러스 유전자들의 발현으로 패퇴한다. 다행히 실험용 생쥐 가운데는 선천면역계에 문제가 있는 변이체가 있고 이들은 예상대로 지카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 변이 생쥐로 다양한 동물실험을 할 수 있다.

한편 연구자들이 원래 조사하려던 플라비바이러스속 네 종류는 요코세(Yokose)바이러스, 이구아페(Iguape)바이러스, 스폰드웨니(Spondweni)바이러스, 우수투(Usutu)바이러스다. 이 가운데 스폰드웨니바이러스는 지카바이러스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감염됐을 때 지카열과 비슷한 증상인 ‘스폰드웨니열’을 앓는다. 우수투바이러스는 일본뇌염바이러스와 비슷하게 뇌염을 유발한다. 둘 다 아직은 큰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지만 지카바이러스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 전면에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지구촌 시대를 맞아 잦은 이동과 지구온난화로 모기의 확산을 막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따라서 이런 바이러스들이 턱밑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모기장을 치고 자는 게 일상적인 모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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