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6,2018

삶의 웰빙에 영향 주는 ‘느낌의 지도’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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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너무 단순해도 난 싫어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인 1987년 발표된 이지연의 ‘나는 아직 사랑을 몰라’라는 노래의 앞부분 가사다.

2004년 문근영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 ‘어린 신부’의 ost로도 사랑받았는데 영화의 내용과도 잘 맞는다.

열여섯 살 여고생 보은(문근영)의 할아버지(김인문)는 병이 깊어지자 손녀를 친구 손자인 스물네 살 대학생 상민(김래원)과 서둘러 결혼시킨다.

영화는 서로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두 사람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점차 ‘느낌’이 생겨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위의 노래 가사나 영화 줄거리에서 말하는 ‘느낌’이 뭔지는 ‘감(感)’이 오지만 사실 ‘느낌’을 정의해보라고 하면 막연하다.

느낌은 국어사전에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느끼는 기운이나 감정’이라고 정의돼 있다. 영어에서는 feeling이 느낌에 해당하는 단어일 텐데, 영영사전을 보면 국어사전의 느낌과 비슷하게 정의돼 있다.

사전의 정의를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2차원 지도로 표시한 느낌공간이다. 가로축은 정서적인 정도(유쾌-불쾌)이고 세로축은 마음의 비중(낮음-높음)이다. 연구자들은 100가지 핵심 느낌 대다수를 다섯 가지 범주(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 인지적 과정, 아픈 상태, 항상성)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2차원 지도로 표시한 느낌공간이다. 가로축은 정서적인 정도(유쾌-불쾌)이고 세로축은 마음의 비중(낮음-높음)이다. 연구자들은 100가지 핵심 느낌 대다수를 다섯 가지 범주(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 인지적 과정, 아픈 상태, 항상성)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눠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9월 11일자에는 이처럼 애매한 실체인 느낌에 대해 지도를 만들었다는 핀란드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연구자들은 느낌(feeling)을 ‘현재 주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개인의 현상적 상태’로 정의했다.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매 순간 변하는 주관적 느낌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각종 느낌 가운데 핵심적인 100가지를 선정한 뒤 인터넷을 통해 참가한 1026명에게 각각에 대해 정서적인 정도(유쾌-불쾌)와 마음의 비중(낮음-높음)을 평가하게 했다.

이 데이터를 처리해 가로축이 정서적인 정도, 세로축이 마음의 비중인 2차원 공간에 위치시켰다. 즉 느낌의 지도를 만든 것이다.

그 결과 100가지 핵심 느낌을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었다.

즉 기쁨, 감사, 친밀감 등의 느낌은 ‘긍정적인 감정’으로(글 앞에 인용한 노래 가사에 나오는 ‘느낌’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상실감, 슬픔, 절망 등의 느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자기조절, 놀람, 기억 등의 느낌은 ‘인지적 과정’으로, 두통, 가려움, 어지러움 등의 느낌은 ‘아픈 상태’로, 갈증, 배뇨, 포만감 등은 ‘항상성’ 범주에 들어갔다.

100가지 핵심 느낌의 신체느낌지도. 색이 밝을수록 해당 느낌과 관련이 큰 신체부위라는 뜻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100가지 핵심 느낌의 신체느낌지도. 색이 밝을수록 해당 느낌과 관련이 큰 신체부위라는 뜻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감정의 영향 커

각 범주가 2차원 지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그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긍정적인 감정’은 정서적으로는 유쾌하면서 마음의 비중이 높다(즉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반면 ‘아픈 상태’는 정서적으로는 불쾌하면서 마음의 비중이 낮다(즉 몸의 문제라는 말이다).

느낌 지도를 보면 100가지 핵심 느낌의 분포에서 알파벳 ‘X’가 연상된다. 즉 정서적인 정도나 마음의 비중에서 ‘보통’에 해당하는 게 오히려 적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익숙한, 중간이 많고 양극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종형 분포와 다른 패턴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느낌은 감정적인 것, 즉 유쾌함이나 불쾌함으로 경험된다”며 “주로 생리적이나 인지적인 몇 가지만이 정서적으로 중립”이라고 설명했다.

즉 감정 상태가 삶의 웰빙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또 감정적으로 극단(가로축의 양 끝)인 느낌일수록 마음의 비중도 극단(세로축의 양 끝)인 경우가 많았다. 즉 마음의 감각이 강하거나 몸의 감각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불쾌한 느낌 중에는 몸에 관련돼 있다고 평가된 경우가 많아(지도 왼쪽 아래 많은 느낌이 몰려 있다) 사람들이 불쾌함을 조절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성적으로 몸이 아픈 사람이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다.

연구자들은 100가지 핵심 느낌에 대한 ‘신체느낌지도’도 만들었다. 이는 지난 2014년 역시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은 논문에서 소개한 ‘신체감각지도’의 확장판이다. (신체감각지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에세이 68 ‘감정의 신체감각지도 그려보니…’ 참조.)

당시 분석한 14가지 감정 가운데 11가지가 100가지 핵심 느낌에 포함돼 있는데, 대부분 느낌공간의 왼쪽 위(부정적인 감정)와 오른쪽 위(긍정적인 감정)에 분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명쾌하게 규정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느낌을 2차원 공간과 몸 위에 지도로 표시한 시도가 느낌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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