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9,2019

빈센트가 남긴 위대한 유산

박지욱의 메디시네마 (24)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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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름 하나 불러보라면 입술 끝에 제일 먼저 올라오는 이름은 누구입니까? 십중팔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니면 빈센트 반 고흐 아닐까요? 다빈치는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모나리자>를 남겼지만, 사실 그가 남긴 회화는 몇 점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는 1,000 점에 가까운 회화를 남겼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다빈치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고흐의 삶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지요.

하지만 고흐의 삶은 단편적으로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해보기 위해서는 서점에 나와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그렇다면 <반고흐; 위대한 유산>(2013년 개봉)이 좋은 대안일 지 모릅니다.

독신으로 후사 없이 죽은 빈센트 반고흐(이하 빈센트)의 유산은 모두 동생 테오가 물려받습니다. 하지만 테오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소유가 됩니다. 돈도 안 되는 그림들을 보관하지 말고 처분하라고 사람들은 충고했지만, 그녀는 그림을 보관하고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600여 통의 편지를 모두 정리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빈센트의 그림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녀였지만 어느새 빈센트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 변신한 거지요.  결국 이 귀중한 유산들은 아들인 빈센트 빌렘(이하 빌렘)이 물려 받았습니다.

아버지 테오는 형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여줄 정도로 형을 사랑했지만 조카인 빌렘에겐 어린 시절부터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림들이 부담 그 자체였습니다. 아울러 그 유산은 집안에 전해져 오는 광기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고모도, 삼촌도 모두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이 빈센트를 통해 세상에 여지없이 폭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빌렘은 자신의 삶을 옭아맨 그림들을 모두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는 동안 빈센트와 빌렘의 삶이 서로 엇갈려 가며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이 영화의 줄거리를 만들어 나갑니다.

현대 의학이 진단한 고흐의 정신병은 30가지

빈센트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이자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6세에 화랑에서 점원 일을 시작했지만 성서에 심취하여 23세에 뛰쳐나와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중도에서 포기했습니다. 27세가 되어서야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웠습니다(1880년). 하지만 여기도 곧 뛰쳐나왔고,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무명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파리에서 몇 년을 보낸 후 1888년에 아를로 떠났고, 이미 충분히 유명한 고갱을 초청합니다. 아를에서 새로운 빛에 눈뜬 빈센트는 생기를 얻어보지만 고갱이 자신을 미치광이로 그린 그림을 보고 분노합니다. 빈센트는 정말 고갱을 존경했고 그를 극진히 대접했는데도 말입니다.

고갱,, 1888년.

고갱,<해바라기를 그리는 화가>, 1888년. ⓒ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마침내 고갱과의 갈등이 폭발했고 자신을 버린 고갱에게 손수 자른 ‘귀’를 보내주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지요. 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아를 주민들은 빈센트를 위험 인물로 낙인 찍어 경찰서장에게 탄원을 넣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빈센트는 거의 반강제로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한 빈센트는 아를로 돌아가지 않고 오베르(Auvers sur Oise)로 갑니다. 오베르에는 아마츄어 화가이자 정신병에 일가견이 있는 의사 가셰(Dr. P Gachet)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빈센트는 그가 자신을 이해하고 치료해줄 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베르에서 빈센트는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가셰의 집과 가족들을 화폭에 담았고, 오베르의 집과 들판도 그렸습니다. 7월에는 주치의인 가셰의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인 들판에서 자신의 배에 총을 쏘았습니다. .

하지만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았고 집까지 혼자 걸어왔습니다. 가셰가 불려왔고 복부에 총알이 박힌 채 고통받는 빈센트를 진찰했습니다. 하지만 가셰는 총알을 빼내지 않았지요. 당시 의술로는 어려운 수술도 아니었음에도 말입니다. 결국 빈센트는 이틀이 지나서야 죽습니다. 1890년 7월 29일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빈센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간 관계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림만 그린다는 이유로 평생 동생 테오에게 생계를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 중 팔려나간 것은 거의 없습니다. 성격도 괴팍하고, 감정 기복도 심하고, 심지어는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그가 앓았던 병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현병, 약물 중독, 납중독, 메니에르병, 급성간헐성 포르피리아증, 메니에르병, 양극성장애(조울증)과 측두엽성 뇌전증(간질)… 다 합하면 30개 정도나 됩니다. 2005년에는 빈센트가 남긴 900여 점의 그림과 600여 통의 편지를 분석한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신경학자, 정신의학자, 심리학자들은 양극성장애와 측두엽성 뇌전증을 앓았다는 구체적인 논거까지 제시합니다 (J. Bogousslavsky 외 : Understanding Van Gogh’s Night: Bipolar Disorder; Neurological Disorders in Famous Artists.).

고흐, , 1890년.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그들은 거의 마지막 작품이 된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주목합니다. 이 그림은 두 가지의 극단적인 감정을 함께 드러낸답니다. 폭풍우가 몰려오는 검푸른 하늘은 극단적인 좌절감을, 휘몰아치는 바람을 보여주는 노란 밀밭은 생기를, 그 사이를 날아오르는 검은 까마귀 떼는 위태로운 화가 자신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그림의 암울한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아 빈센트는 그 밀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하지만 영화는 이 죽음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의 생명력과 아름다움

10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빈센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빈센트는 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했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연의 힘마저 그의 붓끝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온갖 살아있는 것들의 생기가 넘칩니다. 꽃, 들판, 건물, 나무, 공기, 구름, 심지어는 밤하늘의 별들도 살아 움직이며 합창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 힘없다고 무시하는 것들이 얼마나 생명력으로 넘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빈센트에게 감사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

고흐,, 1889년.

고흐,<별이 빛나는 밤>, 1889년. ⓒ 뉴욕 현대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조망해볼 수 있는 영화, 살아 숨쉬며 오욕칠정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라면 꼭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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