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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또 다른 죽음을 계산한 천재

노벨상 오디세이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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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8월, 갓 스무 살이 된 한 인도 청년이 로이드 트리에스티노 호를 탄 채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 청년은 바로 1910년 당시 영국령 인도의 라호르(현 파키스탄의 도시)에서 고급 철도청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였다.

12세에 첸나이 지역으로 이사한 찬드라세카르는 거기서 힌두교 고등학교와 마드라스대학교 프레지던시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영국의 인도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대학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배 안에서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만한 놀라운 계산을 해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도구로 삼아 백색왜성의 운명과 블랙홀의 존재 가능성을 증명하는 계산이었다. 그가 이때 계산에 사용한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시카고대학의 교수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찬드라세카르 모습. ⓒ www-news.uchicago.edu

시카고대학의 교수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찬드라세카르 모습. ⓒ www-news.uchicago.edu

그로부터 5년 후인 1935년 런던 왕립천문학회 회의장에서 찬드라세카르는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블랙홀을 이해하는 주요 단서인 별의 극적인 붕괴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논문이었다.

하지만 논문 발표가 끝나자마자 그는 치욕감과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당시 영국 천문학계의 권위자이자 당대 천체물리학의 최고봉이었던 아서 에딩턴이 직접 나서서 ‘별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별 장난 같은 일이다’고 비꼬았기 때문이다. 별의 진화와 관련한 우주 과학이 40년 이상 답보 상태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1a형 초신성의 생성 원리 밝혀

에딩턴이 그의 연구를 그처럼 처참하게 무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블랙홀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적인 입장에 있던 에딩턴이 찬드라세카르에게 방어할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공개적으로 조롱한 것은 평생 그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그로 인해 찬드라세카르는 한때 다른 분야를 연구하기로 마음먹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이후 에딩턴을 제외한 많은 천체물리학자들은 그의 주장에 차츰 동조하기 시작했다.

찬드라세카르가 주장한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별의 죽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은 수소를 모두 소모하면 헬륨 대신 철처럼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낸다. 그 후 별은 자신의 중력이 이겨낼 압력이 존재하지 않아 결국 붕괴된다.

그런데 별이 붕괴 후 형성되는 것들은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질량이 태양과 거의 비슷한 가벼운 별들은 백색왜성이 되고, 그보다 무거운 별들은 폭발해 초신성이 된다. 이 초신성 폭발 뒤에 남는 알맹이가 중성자별이다.

그리고 중성자별이 되기에도 너무 큰 알맹이가 남는 경우가 있다. 이 별에서는 중력이 너무 강해 모든 불질이 빨려 들어가 물질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점과 같은 무한히 작은 부피로 압축된다. 바로 블랙홀이다.

우주의 별들은 대체로 동반성을 지닌 쌍성이다. 죽음 단계에서 한 별이 백색왜성이 됐는데, 그 옆의 동반성이 많은 물질을 방출하는 적색거성일 경우 그 백색왜성은 질량이 조금씩 커진다. 백색왜성의 중력에 적색거성의 물질들이 끌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색왜성이 그 물질들을 무한정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태양 질량의 1.44배까지 커지면 전자의 구조가 무너지면서 백색왜성은 폭발하게 되는 것. 이 한계 수치를 찬드라세카르가 계산했다고 해서 ‘찬드라세카르 한계’라고 한다. 이렇게 폭발하는 별이 바로 1a형 초신성인데, 폭발시점이 같은 뿐 아니라 폭발 시의 최대 밝기가 일정하므로 멀리 있는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는 ‘표준 촛불’로 활용된다.

제자들보다 26년 늦은 노벨상 수상

찬드라세카르는 에딩턴에게 면박을 당한 다음해인 1936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하버드천문대와 여키스천문대에서 근무했으며 1944년 시카고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바로 그 무렵 찬드라세카르는 시카고대학으로부터 겨울방학 동안 고급물리학에 대한 특강 의뢰를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며칠 후 대학 측은 강의를 취소해야겠다고 연락해왔다. 단 두 명의 학생만 수강 등록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찬드라세카르는 그래도 상관없으니 강의를 하겠다고 했으며, 자신이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임에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강의에 임했다.

그때 찬드라세카르에게 강의를 들은 단 두 명의 수강생이 바로 중국에서 온 양전닝과 리정다오였다. 이들은 그로부터 10년 후 소립자론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당시 그들은 ‘우리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의 학생만 앉혀 놓고도 열정적으로 강의했던 찬드라세카르 박사 때문이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들을 가르쳤던 찬드라세카르 역시 26년 후인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태양 질량의 1.44배가 넘는 별은 연료를 다 소모해도 백색왜성이 되지 않고 붕괴를 계속한다는, 별의 또 다른 죽음 방식을 알아낸 공로를 그때서야 인정받은 것이다.

그의 노벨상 수상이 이처럼 늦어지게 된 것은 그가 예측했던 중성자별, 블랙홀 등에 대한 관측이 워낙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성자별은 1968년에 처음 발견됐으며, 1964년에 처음 관측된 백조자리의 시그너스 X-1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블랙홀로 확인됐다.

미국의 월리엄 파울러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찬드라세카르는 백색왜성에 대한 초기 연구 성과의 공로만 인정받은 것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X-선 우주 망원경에 그의 이름을 붙여 찬드라엑스선망원경이라 명명하고 그가 죽은 지 4년 후인 1999년 9월에 지구 궤도로 발사했다. 찬드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달’ 또는 ‘빛을 낸다’는 의미다. 예상 수명이 5년에 불과했던 찬드라엑스선망원경은 지금까지도 멀쩡하게 블랙홀 등과 관련한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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