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이 탄생했다?

디지털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신개념 의류 등장

2020.01.14 14:29 김준래 객원기자

현대판 ‘벌거벗은 임금님’이 나타났다. 실제로는 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입은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안데르센의 동화와 비슷한 사례가 첨단 디지털 기술에 의해 탄생한 것.

패션 전문 매체인 보그비즈니스(Vogue Business)는 최근 북유럽을 중심으로 신개념의 패션 의류가 등장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 의류는 현실이 아닌 디지털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옷이라고 밝혔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하는 옷이 선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 Carlings

북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하는 옷이 선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 Carlings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하는 의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하는 의류의 이름은 ‘디지털컬렉션(Digital Collection)’이다. ‘디지털 패션의 선구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칼링스(Carlings)’라는 패션업체가 해당 의류를 개발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의류는 말 그대로 디지털 세상, 즉 온라인이나 모바일 상에서만 존재하는 옷이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입어볼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는 가상의 옷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사진에서 입었던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디지털 의류를 입히면 된다. 물론 기존의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옷의 형태나 색상을 바꿀 수 있지만, 이렇게 바꿀 경우 뭔가가 부자연스럽다.

반면에 디지털 의류로 기존 옷을 대체하면 자연스럽게 입혀져서 진짜로 옷을 바꿔 입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끔 만든다. 특히 현실에서는 너무 비싸서 입기 어렵거나, 디자인이 너무 요란해서 입고 다니기 힘든 옷이라도 디지털 상에서는 너끈히 입힐 수 있다.

‘그런 옷이 왜 필요할까. 과연 팔리기나 할까’라고 의문을 가졌다면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컬렉션은 출시된 지 한달만에 모두 품절되면서 기염을 토했다. 가상의 옷 치고는 만만치 않은 가격인 11달러로 판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매진된 것이다.

디지털 의류는 현실에서 입기에 비싸거나 부담스러운 옷을 가상의 공간에서 입기 위해 개발되었다 ⓒ Carlings

디지털 의류는 현실에서 입기에 비싸거나 부담스러운 옷을 가상의 공간에서 입기 위해 개발되었다 ⓒ Carlings

이처럼 혁신적 개념의 옷인 디지털의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만들어졌다. 원래 칼링스의 디지털 컬렉션은 실제로 입는 옷의 판매를 위해 제작되었다. 다만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을 도입한다는 차원에서 실제와 비슷한 디지털 의류를 함께 개발했는데, 소비자들은 실제 옷보다 디지털 의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칼링스의 관계자는 “당초에는 이 같은 예상치 못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언급하며 “하지만 과거의 소비자들과는 달리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요즘의 신세대들에게는 ‘실제로 만질 수는 없어도 옷은 옷’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같은 개념을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깨달은 후 두 번째 시리즈는 아예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하는 옷을 만들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 결과 디지털컬렉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칼링스는 현재까지 디지털컬렉션을 비롯하여 250여 개의 디지털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특성 상 무한대로 복제하여 판매할 수 있지만, 제조사 측은 이를 단호히 금지한 채 한정된 물량만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초의 디지털 의류라 할 수 있는 디지털컬렉션 시리즈는 품절된 이후 더 이상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의아해 하는 소비자들이 있지만, 디지털 의류도 현실 상의 옷처럼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판매량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칼링스 측의 설명이다.

디지털 의류는 환경 보호에도 기여

흥미로운 점은 칼링스와 비슷한 시기에 디지털 의류를 선보인 업체가 또 하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하는 패션기업인 ‘더패브리칸트(The Fabricant)’다.

이 회사 역시 칼링스처럼 실물이 아닌 디지털 상에서만 존재하는 옷을 만들고 있다. 원단이나 실이 아니라 모션 캡처와 3D 프린팅 같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의류를 만드는 것이 특색이다.

이 회사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지난 해에 미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보안 회사인 퀀트스탬프(Quantstamp)의 대표가 아내를 위해 구입한 디지털 의류에 무려 1만 달러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고 나서부터다.

당시 ‘리차드 마(Richard Mah)’ 퀀트스탬프 대표가 구입한 드레스의 가격은 9500달러로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디지털 의류였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의류의 가격으로는 현재까지 최고 비싼 가격으로 기록되어 있다.

디지털 의류를 아내에게 선물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마 대표는 “디지털 드레스라는 생소한 선물이 아내에게 오랫동안 감동을 줄 것이라 생각하여 구입하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아내의 체형과 분위기를 살려 맞춘 드레스인 만큼, 실제로 옷을 맞추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라고 언급했다.

10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린 디지털 드레스  ⓒ The Fabricant

10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린 디지털 드레스 ⓒ The Fabricant

한편 칼링스나 더패브리칸트가 선보인 디지털 의류는 새로운 영역인 디지털 패션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 외에도 환경 보호에도 막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 들어 유행에 맞춘 의류가 빠르면서도 대량으로 생산되다보니, 합성 섬유인 폴리에스터(polyester)가 대량으로 사용되며 바다가 빠르게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greenpeace)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바다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미세섬유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세섬유는 폴리에스터를 세탁할 때마다 대량으로 발생되고, 이를 제조하는 과정에도 온실가스가 상당량 배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칼링스의 관계자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해양 오염의 원인인 미세섬유 배출 감소에 디지털 의류가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라고 전하며 “디지털 패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개척 외에도 해양 환경 보호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의류 분야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라고 다짐했다.

(2611)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