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번개 칠 때 ‘핵반응’ 일어나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44

며칠 전 오후 서너 시 무렵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되더니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꽤 요란하게 쳤다. 장마철도 아니고 11월에 이런 날은 처음인 것 같다. 어른이 됐어도 컴컴한 밖에서 번개가 ‘번쩍’ 하면 좀 겁이 나기 마련이다. 실제로 매년 적지 않은 사람과 가축이 벼락, 즉 지표로 내려온 번개에 목숨을 잃는다. 오죽하면 큰 잘못을 한 사람을 두고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을까.

학술지 ‘네이처’ 11월 23일자에는 번개가 칠 때 핵반응이 일어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일본 쿄토대 연구자들은 번개가 칠 때 나오는 두 종류의 감마선을 분석해 핵반응이 일어난 결과임을 밝혔다. 아울러 대기에 존재하는 여러 방사성동위원소들도 일부는 번개에서 일어나는 핵반응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1925년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윌슨은 번개가 칠 때 핵반응이 일어난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최근 일본 연구자들은 번개가 칠 때 나오는 감마선을 검출해 윌슨의 가설을 입증했다. 다만 윌슨이 제안한 핵반응 메커니즘을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윌슨은 전자나 양성자 같은 하전입자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안개상자를 개발해 192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위키피디아

1925년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윌슨은 번개가 칠 때 핵반응이 일어난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최근 일본 연구자들은 번개가 칠 때 나오는 감마선을 검출해 윌슨의 가설을 입증했다. 다만 윌슨이 제안한 핵반응 메커니즘을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윌슨은 전자나 양성자 같은 하전입자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안개상자를 개발해 192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위키피디아

100년 만에 가설 확실히 입증 돼

흥미롭게도 번개가 칠 때 핵반응이 일어날 것이라는 추측은 거의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찰스 윌슨(Charles Wilson)은 번개가 칠 때 일부 전자가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돼 대기 중 분자의 원자핵과 충돌해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당시는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핵반응이 일어날 때 나오는 중성자를 검출하면 될 것 같지만,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한 게 1932년의 일이다.

그러나 중성자가 발견된 뒤에도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윌슨의 가설이 바로 입증되지는 못하다가 1985년에야 번개가 자주 일어나는(하루 평균 30여 회) 히말라야에서 중성자를 검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검출기술이 너무 발전하다보니 대기에서 늘 중성자가 검출되고(고에너지 우주선(cosmic ray)이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므로) 따라서 중성자가 번개에서 나온 거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는 나왔지만 물리학자들은 좀 더 확실한 증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물리학자들은 번개가 칠 때 나오는 고에너지 전자가 직접 원자핵을 때리는 게 아니라 고에너지 전자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감마선, 즉 광자(photon)가 원자핵을 때려 핵반응이 일어난다는 메커니즘을 제안했고, 1980년대 후반 번개가 칠 때 지상에서 고에너지 감마선을 검출하는데 성공했다.

감마선의 에너지가 10메가전자볼트(MeV. 에너지의 단위) 이상이면 대기 중의 질소14나 산소16(각각 가장 안정한, 즉 흔한 동위원소다)의 원자핵과 부딪쳐 중성자 하나를 떼어낼 수 있고 그 결과 불안정한 동위원소인 질소13이나 산소15가 만들어진다. 이들 원소는 수분 내에 베타플러스붕괴를 일으켜 안정한 동위원소인 탄소13이나 질소15로 바뀐다. 우리가 익숙한 베타붕괴는 원자핵의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베타입자), 반뉴트리노로 바뀌는 반응이다. 반면 베타플러스붕괴(β+ decay)란 원자핵의 양성자가 중성자와 양전자, 뉴트리노로 바뀌는 반응이다. 음전하인 전자(e-)의 반물질인 양전하인 양전자(e+), 즉 베타플러스입자가 나오므로 베타플러스붕괴다.

대기 중에는 물질인 전자가 곳곳에 떠다니므로 생성된 양전자는 몇 걸음 못가서(평균 89m) 전자와 충돌해 감마선 두 쌍으로 붕괴한다. 이때 나오는 감마선의 에너지는 전자와 양전자의 질량에너지인 0.511MeV다. 따라서 번개가 칠 때 두 종류의 감마선(10MeV 이상과 0.511MeV)을 차례대로 검출할 경우 핵반응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일본 연구진이 해낸 일이다.

번개가 칠 때 일어나는 핵반응의 하나를 도식화한 그림이다. 번개가 칠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전자에서 나온 고에너지 감마선이 주변 대기의 질소14의 원자핵에 부딪치면 중성자(하늘색 공)가 방출되면서 질소13이 생성된다. 불안정한 질소13은 바로 베타플러스붕괴를 일으켜 뉴트리노와 양전자(노란 공), 탄소13으로 바뀐다. 양전자는 주변의 전자(파란 공)와 부딪쳐 소멸하면서 특정 에너지의 감마선 한 쌍을 내놓는다. ⓒ 네이처

번개가 칠 때 일어나는 핵반응의 하나를 도식화한 그림이다. 번개가 칠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전자에서 나온 고에너지 감마선이 주변 대기의 질소14의 원자핵에 부딪치면 중성자(하늘색 공)가 방출되면서 질소13이 생성된다. 불안정한 질소13은 바로 베타플러스붕괴를 일으켜 뉴트리노와 양전자(노란 공), 탄소13으로 바뀐다. 양전자는 주변의 전자(파란 공)와 부딪쳐 소멸하면서 특정 에너지의 감마선 한 쌍을 내놓는다. ⓒ 네이처

대기 중 동위원소 생산 공장

연구자들은 2006년 동해와 접해있는 니가타현의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에 감마선 검출기 네 대를 설치해 벼락이 칠 때 나오는 감마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왔다. 지난 2월 6일 발전소 부근에서 강력한 번개가 쳤고 마침내 예상했던 감마선 데이터를 얻는데 성공했다. 즉 번개가 발생한 직후 수~수십MeV의 고에너지 감마선 스펙트럼이 갑자기 나타났고 40~60밀리초에 걸쳐 크기가 줄어들며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0.35~0.6MeV 범위의 감마선 스펙트럼이 나타났는데 0.51MeV 부근이 피크였다. 즉 제안된 핵반응 메커니즘이 예상하는 감마선 패턴이 얻어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벼락이 칠 때 일어나는 핵반응에서 나오는 동위원소의 종류와 비율을 추정했다. 이에 따르면 고에너지 감마선이 질소14의 원자핵을 때릴 때 나오는 중성자의 96%는 옆에 있는 질소14의 원자핵과 충돌해 합쳐지면서 대신 양성자 하나가 튀어나온다. 그 결과 탄소14가 만들어진다. 즉 우리가 고고학유물이나 고생물의 시기를 추정하기 위해 쓰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방사성탄소, 즉 탄소14의 출처 가운데 일부가 번개가 칠 때 생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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