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6,2019

바퀴벌레를 박멸하기 어려운 이유

살충제 종류 상관없이 내성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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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방콕에서 홋카이도로 가기 위해 타이항공에 탑승한 한 승객은 기내식을 먹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바로 앞 좌석에서 기어 다녔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 승객은 기내가 청결하지 않다며 타이항공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그러자 항공사 측은 정기적으로 방역을 하는데 바퀴벌레가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새로운 살충제를 주문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살충제로 방역을 해도 그 같은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퍼듀대학의 곤충학자 마이클 샤프 박사팀이 독일바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바퀴벌레가 한 유형의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 다른 제형의 살충제에도 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한 유형의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 다른 제형의 살충제에도 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바퀴벌레가 한 유형의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 다른 제형의 살충제에도 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즉, 한 종류의 살충제로 박멸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살충제 종류를 바꾸어도 바퀴벌레를 완전히 박멸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게재됐다.

바퀴벌레는 끔찍한 외형만큼이나 우리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큰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집바퀴로 불리는 독일바퀴는 인간의 환경에만 서식하는 세계적인 해충이다. 독일바퀴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작은 조각들로 만들어진 바퀴벌레 먼지는 알레르겐으로 천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샤프 박사팀의 논문에 의하면, 미국 도심지 주택의 85%가 바퀴벌레 알레르겐 양성반응을 보이며, 천식을 앓는 도시 어린이들의 60~93%가 바퀴벌레에 민감하다. 또한 바퀴벌레는 살모넬라나 대장균 같은 병원균을 인체에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950년대 초부터 모든 살충제에 내성 생겨

바퀴벌레는 엄청나게 발달한 운동신경과 뛰어난 생존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감각기관으로 정보를 인식해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0.001초에 불과하며, 최고 시속 150㎞에 달하는 순간 이동속도를 지니고 있다. 머리뿐만 아니라 꼬리에도 220개의 부드러운 털로 된 더듬이를 지니고 있어서 미세한 기압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잽싸게 도망칠 수 있다.

사실 바퀴벌레의 살충제 내성 문제가 부각된 지는 꽤 오래됐다. 1950년대 초부터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도입된 모든 살충제에 대해 내성이 생겼다. 이에 따라 살충제 내성은 1950년대 이후 바퀴벌레의 박멸에 있어 하나의 큰 장벽으로 인식되어 왔다.

샤프 박사팀은 전 세계의 저소득 도시 인구에서 천식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위험요인 중 하나인 바퀴벌레를 효율적으로 방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세 가지 방식으로 방역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살충제를 사용해 방역한 다음 곧이어 다른 종류의 살충제를 돌아가며 하나씩 사용하는 방식이었으며, 두 번째는 여러 종류의 살충제를 모두 혼합해 방역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방식은 해당 지역의 바퀴벌레 군이 어떤 살충제에 내성이 가장 약한지 미리 조사한 다음 그 살충제로 방역했다.

일리노이주 및 인디애나주의 건물과 아파트에 서식하는 바퀴벌레들을 대상으로 6개월간 실시된 이 실험의 결과를 보고 연구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인 효과를 거둔 방식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원리로 바퀴벌레가 살충제 내성을 높이는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실험 이후 4개월 이내에 하나 이상의 살충제 성분에 대해 내성이 생겼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면역성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바퀴벌레 군에서 2대에 걸쳐 교차저항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

교차저항이란 스트레스 상태에 있는 동물이 그 스트레스를 일으킨 스트레스원과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6개월간 방역을 했음에도 바퀴벌레의 개체 수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증가한 상태였다.

바퀴벌레를 일시에 박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중에서 유일한 예외는 연구진이 바퀴벌레의 최대 약점을 사전에 파악해 방역했던 세 번째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 가정에서 그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바퀴벌레는 생존능력이 뛰어난 만큼 번식력도 대단하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1년 동안 불릴 수 있는 새끼의 수는 약 10만 마리이며, 암컷은 한 번의 교미만으로도 일생 동안 알을 생성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연구진의 연구에 의하면 암컷 15마리가 수컷 없이 3년간 무리를 유지했다고 한다.

또한 알을 밴 암컷이 죽는 경우에도 알집만 떨어져 나와 새끼들이 태어날 수 있다. 이러한 알집 주머니의 표면에는 코팅 처리가 돼 있어 웬만한 살충제 성분에도 끄떡없다.

그럼 과연 바퀴벌레를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번 연구를 진행한 샤프 박사팀은 의외의 방법을 제안했다. 일정 기간 동안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바퀴벌레의 수명은 약 100일에 불과하다. 바퀴벌레들의 자손이 번성하는 몇 세대에 걸쳐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 그 무리는 다시 살충제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갖는 데도 바퀴벌레 나름대로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바퀴벌레는 수명이 짧아지거나 다른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수 세대에 걸쳐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연선택적으로 내성을 가진 바퀴벌레들이 사라지게 되고, 그때 살충제를 사용하게 되면 다시 강력한 효력을 발휘해 바퀴벌레 군을 퇴치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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