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민족을 위해 일한 화학계의 큰 스승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김순경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48)

1971년 12월 11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유학생 출신의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 69명이 모여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를 창설했다. 미국의 과학, 공학 분야에서 일하는 동포들이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을 주고 상호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그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 등의 설립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처음엔 회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각종 학술대회, 한·미 공동연구 프로젝트, 차세대 과학기술자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KSEA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미과학협력센터가 매년 공동으로 개최하는 학술회의인 UKC(US-Korea Conference)에는 최근 수백여 명의 한미 과학기술자들이 참석해 최신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해가 갈수록 참석자 수뿐만 아니라 논문의 질도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 과학기술자들을 국내에 유치하여 모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 부흥에 기여하게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KSEA의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에 추대된 이는 바로 김순경 박사이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결같이 KSEA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우리나라 화학 교육과 연구의 기초를 다진 김순경 박사(오른쪽). 그 옆은 부인 한정희 여사.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우리나라 화학 교육과 연구의 기초를 다진 김순경 박사(오른쪽). 그 옆은 부인 한정희 여사.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김순경 박사는 이론물리 및 화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뤘으며 후진 양성에 노력한 학자이다. 특히 해방 및 6.25전쟁 이후의 혼란기에 우리나라 화학 교육과 연구의 기초를 다졌으며, ‘군론’에 관한 저서 등 이론물리 및 화학 분야에서 세계가 인정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20년 2월 28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함흥농업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화학에 관심을 갖게 돼 경성공업전문학교로 진학하여 응용화학을 공부했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44년 오사카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으며, 교토대학교 화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화학과 강사(1946~1947), 중앙연구소 연구원(1947~1949)으로 재직했다.

우리나라 화학계의 큰 스승

1951년부터는 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부임해 1965년까지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을 위해 전념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54년 9월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예일대학교 대학원 화학과의 석사 및 박사 과정을 1년 9개월 만에 마치고 1956년 5월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는 라르스 온사거(Lars Onsager) 박사로서 196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석학이었다.

박사 학위를 딴 후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귀국했다. 한국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발전시키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서울대 교수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학에서도 많은 시간의 강의를 맡아야 할 만큼 사정이 열악했다.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하던 그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좀 더 연구에 열중하기 위해 1961년 미국 브라운대학교 화학과 방문교수로 부임했다. 그러다가 1966년 미국 루이빌대학교 화학과의 정교수로 초빙되었으며, 1969년부터는 템플대학교 화학과 교수가 되어 1990년 만 70세의 나이로 정년퇴임 시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2003년까지 템플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동 대학 물리학과 협동교수를 역임했다.

화학이란 학문은 보통 물리화학, 유기화학, 무기 및 분석화학, 생화학, 고분자화학 등으로 분류되는데, 그중 모든 화학의 기본적인 지식을 체계화하여 설명해주는 분야가 물리화학이다. 또한 이론과 실험처럼 형태별로 나누지는 않으나 보통 이론만을 따로 떼어서 통계역학, 양자역학으로 나누고, 둘 다 겸하거나 분야별 응용에 치우친 이론적 접근법을 포괄하여 이론물리화학이라 한다.

이론물리화학의 맥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한 이로 꼽히는 과학자 중의 한 명이 바로 김순경 박사이다. 그는 군론, 강전해질용액론, 수리물리학, 반대칭광학 현상, 유체의 수송현상, 화학 반응속도론, 기체의 흡착이론, 일반적인 통계역학 및 이론화학 분야에서 72편의 논문과 4권의 저서 및 3권의 역서를 발표 또는 저술하는 학술적 업적을 이루었다.

특히 그가 은퇴한 이후인 1999년에 화학과 물리학 문제에 응용한 독보적 연구결과를 정리해 발표한 ‘군론(群論, group theory)’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출판돼 세계적으로 좋은 평을 받은 바 있다.

세계가 인정한 학술 업적

1946년에 창립된 대한화학회는 1961년까지 학회로서의 활동이 좀 미미한 편이었다. 그런데 김순경 박사가 운영체제를 간사장 책임제로 개선하고 초대 간사장직을 수행하면서 활발한 추진력으로 학회 활동에 생기를 불어넣어 오늘날 대한화학회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또한 냉전 체제 속에서 구 소련의 반대를 무마해가며 1963년 국제순수화학및응용화학연합회(IUPAC)의 입회 승인을 얻어내 우리나라 화학계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미국에서 유학 후 귀국했을 때 그는 독지가들을 찾아다니며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해외 학술지 구독 모금 운동을 벌였다. 달러 환전이 어려웠던 그 시절 갖은 난관을 돌파하여 대통령의 환전 허가를 받아 해외 학술지 구독을 성사시켜 국내 화학 교육과 연구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한국을 떠나 있을 때도 평생 조국의 과학기술을 위하는 애국자로서 살았다. 생애 말년에 그의 한 제자가 조국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충고를 부탁하자 그는 “무슨 일을 할 때든 언제나 우리 민족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KSEA를 창립하기 전인 1968년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화학자 및 화공학자가 참여하는 재북미한인화학화공학자협회를 창립해 초대 부회장 및 2대 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대에는 과학기술처 장관을 도와 정책 자문을 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봉사를 했다.

특히 그는 해방 직후와 6.25전쟁 후의 혼란기에 예리한 지식과 자상한 인품을 겸비한 지성인으로서 후학들을 양성했으며, 그들이 오늘날 화학계의 중진이 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1년 대한민국학술상, 1972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화학계의 큰 별이었던 그는 2003년 3월 1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눈을 감았다. 평생 화학에 정진하여 세계가 인정한 학술 업적을 남긴 그는 2005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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