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미인계까지 동원한 생물학계의 우상

노벨상 오디세이 (18)

1953년 4월 25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약 900단어로 된 한 페이지짜리 논문이 게재됐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작성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이란 제목의 논문이 그것이다. 이 논문은 과학계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버금가는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생물학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 발견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DNA가 어떻게 생명체를 구성하는 수만 개의 단백질을 암호화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의 유전자 치료법, 유전공학, 복제, 유전자 지문조회 등의 기술이 실용화된 것도 그 논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왓슨과 크릭은 물론 X선 구조분석 전문가인 모리스 윌킨스 등 3명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들이 DNA의 구조를 밝히기까지의 연구 과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말들이 많았다. 특히 왓슨의 경우 자기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DNA의 구조를 밝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DNA의 구조를 밝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당시 DNA 구조를 밝히려던 연구진 중 가장 유명하고 앞서가던 이는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이었다. 그런데 1952년 가을에 그의 아들인 피터 폴링이 왓슨과 크릭이 소속된 캐번디시연구소로 오게 됐다. 라이너스 폴링도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왓슨은 그의 연구 내용을 염탐할 목적으로 피터 폴링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마침 라이너스 폴링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담긴 원고를 아들에게 미리 보여주었는데, 거기엔 DNA의 구조를 삼중나선 모델로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왓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도 이미 삼중나선 구조로 모형을 만들다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에 폴링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명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해

왓슨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동원한 미인계도 서슴지 않았다. 그 대상은 바로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모리스 윌킨스였다.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연구하던 윌킨스는 결정화된 DNA로부터 얻은 X선 회절무늬의 전문가였는데, 그것은 DNA가 질서정연한 형태를 지닌다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폴리의 한 학회에서 윌킨스의 연구 발표를 접한 적이 있던 왓슨은 어느 날 우연히 윌킨스가 자신의 누이동생 엘리자베스 왓슨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걸 보고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윌킨스와 연구할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왓슨이 구상한 미인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윌킨스가 그의 예쁜 누이동생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왓슨은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윌킨스와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왓슨이 윌킨스를 상대로 미인계까지 고려한 것은 무명의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할 당시 왓슨은 겨우 25세, 그리고 크릭은 37세였으나 박사학위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저명한 생화학자 어윈 샤가프에게 화학적 기초 지식이 형편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또한 여러 곳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로 기본적 실험조차 하지 않은 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모델을 완성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런데 무명의 젊은 과학자라는 사실은 왓슨의 연구에 큰 장점이 되기도 했다. 유명 과학자의 경우 그동안의 업적과 경험에 매달려서 실수를 해도 좀처럼 번복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왓슨과 크릭의 경우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도 그때마다 즉시 유명 과학자들의 조언을 토대로 다른 대안을 모색해나갈 수 있었다. 또한 유명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왓슨에게 싫은 소리가 담긴 조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 같은 ‘이중나선’, 과학자 글쓰기 모델

노벨상을 받은 지 6년 후인 1968년 왓슨은 ‘이중나선’이라는 제목의 책을 단독으로 펴냈다. DNA 구조 발견에 얽힌 이야기를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 마치 소설 같은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고를 검토하던 하버드대학교 출판부는 출간을 포기해버렸다.

원고의 내용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료 연구자였던 크릭은 원고가 그대로 출판될 경우 명예훼손으로 왓슨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왓슨은 다른 출판사를 구하고 나서야 겨우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수정을 거쳤다고는 했으나 출간된 책에는 크릭을 비롯해 윌킨스, 프랭클린 등 동료 과학자들의 험담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출간 과정에서의 논란 덕분인지 몰라도 이 책은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목록을 차지했다.

왓슨의 ‘이중나선’은 과학자에게도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그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어낼 때 미국 의회에서 예산 지원을 결정한 것은 바로 이 책을 읽고 성장한 국회의원들의 지지를 받은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3인 중 왓슨이 제일 유명해진 것도 사실 이 책 덕분이다.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능란했던 왓슨은 과학 경영자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1968년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책임자가 된 그는 그곳은 세계적인 연구소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왓슨은 지난 2007년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프리카인의 지능은 우리와 같지 않으며, 인종 간 지능의 우열을 가리는 유전자가 앞으로 10년 내 발견될 것이다’는 발언을 한 것. 그로 인해 왓슨은 40년간 근무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강제 퇴출을 당하고 강연도 줄줄이 취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크릭은 2004년 세상을 떠났지만, 왓슨은 90세를 앞두고도 여전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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