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미래를 기억(?)한다

[김제완의 과학세상] 김제완의 과학세상(1) 휠러의 사고실험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말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허황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네이처’(Nature Physics 25 May 2015)에 발표된 논문에서 호주대학교 연구팀은 이를 확인했다고 단언했다. 그 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배경에 깔린 이야기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존 휠러(John Wheeler: 1911~2008)라는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있었다. 그는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일반상대성 이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학자이기도 하지만 ‘블랙홀’이란 용어를 만들어 이 말을 대중화한 사람으로 일반인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인터스텔라’영화를 기획한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이나 이탈리아의 루피니(Remo Ruffini) 같은 학자가 휠러 교수의 뒤를 이어 상대성 이론을 대중화 하는데 힘쓰고 있다.

휠러 교수는 뿐만 아니라‘웜홀’(시공을 가로질러서 갈 수 있는 길) 아이디어와 ‘반전자는 전자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실체’라는 생각도 처음 도입했다. 이는 그의 학생이었던 파인만(Richard P. Feynman:1918~1988,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양자장론의 계산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는 기법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원자의 크기 정도가 되는 미시의 세계에서는 고전 물리학이 적용되지 않는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이런 미시의 세계에서는 맞지 않고 소위 말하는 양자론의 슈뢰딩거 방정식이 그 세상을 지배한다. 미시의 세계에서는 ‘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상식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전자는 파동인 동시에 입자이기도 하다. 양자론의 세계에서 전자란 파동이며 동시에 입자인 이중성을 지니고 있고 또한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밤하늘을 보고 명상하는 휠러 교수 ⓒ AIP

밤하늘을 보고 명상하는 휠러 교수 ⓒ AIP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전자선을 슬릿(Slit)1과 슬릿2를 열어 놓은 채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체크하지 않으면 파동의 모습이 나타나고 슬릿1 또는 슬릿2를 통과하는 것을 확인하면 입자처럼 나타난다. 그림에서 파란색의 곡선은 슬릿1 또는 슬릿2를 통과한 것을 확인한 입자들이 쌓인 영상이고, 노란색 모습은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관측하지 않았을 때 파동의 모습이다.

 

전자의 슬릿 통과 ⓒAIP

전자의 슬릿 통과 ⓒAIP

미시의 세계에서 존재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관측을 했을 때만 그 존재의 모습이 확인되지, 관측을 하지 않았을 때는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닌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1978년 휠러 교수는 아주 색다른 제안을 하였다. 그는 전자가 슬릿을 통과하고 난 뒤에 체크하여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확인을 하면 스크린의 영상이 입자의 모습을 가지고, 확인하지 않으면 파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슬릿을 통과한 뒤에 체크하는 것이기 때문에 슬릿 통과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은데 역시 어느 슬릿에서 왔는가를 지나고 난 뒤에라도 확인하면 입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파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슬릿을 지나고 난 뒤에 체크하기 때문에 전자는 슬릿을 지날 때는 이를 몰라야 하는데 마치 안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양자론의 세계에서는 미래에 일어난 일이 과거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 상식으로는 과거에 있었던 일은 기억할 수 있지만 미래에 생길 일을 미리 알고 기억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런데 호주 연구팀이 이런 상식을 뒤엎었다. 호주 국립대학교의 트라스코트(Anders Trascott)와 그의 대학원 학생이 레이저 격자를 만들어 절대온도 0도(섭씨 –273도)에 가까운 ‘보즈-아인슈타인 응집물질’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원자를 이용하여 휠러의 사고실험을 확인했다는 논문을 ‘네이처 물리’온라인에 발표한 것이다.

그 옛날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에서는 관측하여야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에 불만을 품고 “달은 우리가 바라볼 때만 존재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없다는 말인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휠러의 사고실험을 실현한 장치 ⓒ ASU

휠러의 사고실험을 실현한 장치 ⓒ ASU

휠러 교수 역시 그와 같은 맥락으로 우주는 우리가 관측했기에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고 특히 먼 곳에서 오는 은하계의 영상이 중력렌즈를 통하여 이중으로 보이는 것도 우리가 그 영상을 다시 두 슬릿을 통과시키는 것처럼 반투명 유리로 된 Beam-Splitter로 관찰하면 파동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다.

휠러 교수께서 살아계셨다면 이번 실험결과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을지, 또 어떤 명언을 남겼을지 궁금하다. 그는 이런 말로 시간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간이란 모든 것이 함께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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