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문화로서의 과학, 그리고 과학사

과학사는 창의성을 증진하는가?

미르(miR) 이야기 과학사는 과학이 반드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 쿤이 물리학의 예를 들어 설명했던 것처럼, ‘톰슨-러더포드-보어’로 이어지는 원자모형의 발전과정은 직선적이지 않다.

현대진화론의 발전과정에서 경제학의 게임이론이 받아들여진 역사는, ‘협동’이라는 진화론의 난제를 해결하는 문제풀이 과정 속에서 학문간의 협업이 이뤄진 경우다.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역사는 수많은 논쟁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분자생물학의 급속한 발전은 개체를 중심으로 연구되던 진화론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유전자 수준에서 위협받던 자연선택의 보편성 문제는 통계학자, 고생물학자, 지리학자, 생화학자, 분자생물학자 등이 참여한 지루한 논쟁과 협력을 통해 해결돼 왔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증거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동안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단백질을 강력한 유전물질 후보로 간주했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유전물질이 단백질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그의 강의에 큰 영감을 받았던 왓슨과 크릭은 결국 DNA가 유전물질이며 이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대발견을 이끌었다. 과학의 발전과정은 하나의 이론으로 포섭하기 힘든 다양성의 총체다.

과학사가 발견의 다양한 경로들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자의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기술된 과학자들 중 과학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거의 없다.

그들의 발견이 과학의 실제모습과 과학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토마스 쿤이 반대했던 왜곡된 과학교과서의 학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과학사가 과학자들의 창의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에 불과하다.

과학과 타학문의 연결고리로서의 과학사

일반적으로 인문학은 ‘문/사/철’,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고 한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특성상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윤리학을 전공하는 인문학자에게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고려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10년이 지난 논문은 잘 펼쳐보지도 않으며, 기념비적인 논문들만 가끔 언급하고 읽을 뿐이다. 과학은 태생적으로 비역사적인 특성을 지녔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과학이 아닌, 문화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과학이 다른 학문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방법론은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과학의 발견들이 철학에 미친 영향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둘째, 과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일은 17~18세기 자연철학과 과학이 크게 구분되지 않던 시기에 자주 등장했고, 19~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측정량이 이론을 제한하는 과학의 세속화 여정과 관계된다. 다른 학문에서 이론의 영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론은 재확인 가능한 측정량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사이비과학과 과학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다른 학문이 과학의 외부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메타과학 혹은 과학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공간에서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구조를 탐구하거나(과학철학), 과학의 역사를 통해 과학의 본질을 알아가거나(과학사), 과학자사회의 특성을 인류학적으로 탐구(과학사회학)해나갈 수 있다.

과학은 독특한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어떤 학문들에도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스며들어 그 학문 자체의 성격을 논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미학사회학’이라는 분야도, ‘사회학철학’이라는 분야도, ‘윤리학사회학’이라는 분야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과학학은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를 소재로 삼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과학학은 본질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과학학은 과학이 아니다1.

과학이 보여주는 강력한 특성 때문에, 종종 과학은 제어할 수 없는 도구로 여겨진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성과물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과학의 모든 성과물들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공학과 기술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과학의 발견은 실생활에 응용된다는 것이 증명돼 왔다2.

바로 이 측면 때문에 과학과 다른 학문들의 대화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철학자들은 도대체 과학이라는 괴물 같은 학문체계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고 싶어하고, 역사학자들은 과학의 역사를 통해 그 비밀을 벗기고 싶어한다. 사회학자들은 과학자사회라는 독특한 성격의 집단을 해부하고 싶어하고, 윤리학자들은 과학의 성과물들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윤리적 성격을 진단하고 때로는 과학의 발전을 제어하려고 애쓴다.

바로 이 공간에서 과학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과학학의 주제들은 다양하고, 그 공간에서 과학과 다른 학문들이 맺는 관계도 천차만별이지만, 과학학이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인 이상, 역사적 탐구는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의 한 축이 되기 때문이다3.

그리고 실제로 과학이 다른 학문과 상호작용하는 마지막 방법이야말로, 과학이 대중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영역이 된다. 과학에 종사하지 않는 학자들과 대중들은 바로 이 공간을 통해 과학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문화의 연결고리로서의 과학사

과학은 유럽에서 탄생했다. 과학이 바로 그러한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문화도 유럽에 종속적이다. 유럽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오랫동안 배양돼온 과학은, 그 문화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유토피아’ 등을 비롯한 유럽의 문학작품들 속에서 과학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방식으로 과학은 문화의 일부로 흡수된다. 과학이 문화의 일부가 된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유럽과 유럽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그리고 일찍부터 과학을 수입했던 일본 정도가 과학과 다른 학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로서의 과학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과학을 일종의 도구로 수입했다.

서구열강들이 과학을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도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였다. 서구인들이 강한 이유는 과학 때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으며,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과학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식이 논의됐다. ‘동도서기론’을 비롯한 다양한 부국강병론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이러한 고민이 반영돼 있다.

제국주의 정당화의 도구로서 수입된 과학이었지만, 과학이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과학을 제도화하는 방법에 따라 국가별로 과학의 모습은 상이해졌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관계가 모호하게 인식되면서 문화로서의 과학이 들어설 여지는 좁아졌다.

과학을 통한 기술, 기술을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논리는 상당히 강력한 이념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지금까지도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과학기술이라는 이념은 문화로서의 과학을 정착하는데 여전히 방해가 되고 있다.

결국, 도구로 수입된 과학이 제도적으로, 이념적으로 강화될 경우 과학기술강국과 같은 실용성의 측면에서만 과학이 다뤄지게 된다.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다양한 모순들의 축소판이다. 압축성장을 겪으면서 우리가 얻은 것들 못지 않게, 우리에겐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있다.

한국엔 도구로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도구로서의 과학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구로서의 과학만을 강화하면서 우리가 잃은 것, 그것이 바로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측면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공계 기피와 인문학의 위기, 청소년들 모두가 변호사와 의사만을 꿈꾸는 기형적인 한국사회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인문학의 위기와 이공계 기피현상은 같은 뿌리에서 기원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의 기준을 부자가 되는 것에서 구할 때,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모습이 구현될 때, 과학도 인문학도 번창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만든 유럽에서도, 자본주의를 극한까지 발전시킨 미국에서도 과학의 문화적 모습이 남아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의 잔재를 목도할 수 있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사회의 건강성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그것은 청소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인가의 문제이며, 사회의 구성원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곳에서 과학은 문화가 된다. 과학이 문화가 된 곳에서 그 문화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은 이렇게 형성된 문화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또한 문화는 과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고리 속에서 인문사회과학이 언제나 한 축을 담당한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는 절반쯤은 학문적 자폐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공계 기피현상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문화로서의 과학은 언제나 역사를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역사를 내팽개치고서는 과학의 문화적 속성을 거론할 수조차 없다. 그 과정을 건너뛴 채 현재 서구열강의 제도적 측면만을 분석해봐야 과학문화는 정착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가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과학사에 무지할 수 없다.

문화로서의 과학이 정착된 곳에서는, 자신의 학문이 가진 역사에 무지한 과학자가 과학자사회를 이끌 수조차 없다. 허버트 스펜서, 반네바 부쉬, 제임스 코넌트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이자 과학정책의 입안자들이 과학사를 깊이 공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학사는 과학이 문화로 정착하는 곳에서 필수적인 단계가 되고, 그렇게 형성된 문화가 곧 과학과 과학사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로서의 과학, 그 곳에서 과학사는 곧 그 나라의 역사다.





1. 따라서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과학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과, 과학자들이 현장에서 경험한 방식에는 언제나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과학자가 아닌 과학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대부분의 역할을 맡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2. 이는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의 일부분일 뿐이다. 과학과 기술 모두 자체적인 발달의 역사와 동력을 지니고 있으며 둘의 종속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지 바살라의 ‘기술의 진화’를 보라.

3. 이상욱, “역사적 과학철학과 철학적 과학사,” 한국과학사학회지, 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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