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닝 꽁치’ 컴퓨터에 물어봐

슈퍼컴퓨터 '왓슨'에게 요리를 묻다

 ‘꽁치’ 때문에 전국이 시끄럽다. 대한민국 최고라 불리는 셰프들을 불러다 가정집 냉장고에서 나온 재료를 주고 15분 안에 맛있는 요리를 만들게 하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생긴 사건이다.

지난주 방송에서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셰프라 불리는 청년이 괴상한 요리를 만들어 비난을 받았다. 시중에 판매되는 꽁치 통조림을 꺼내 생선살을 뼈째 졸였다. 통조림의 국물도 버리지 않고 양송이 수프와 함께 끓인 후 식빵 조각을 넣어 흡수시켰다. 출연진은 “비릴 텐데요” 하면서 말렸지만 별도로 굽지도 않은 보통 식빵 위에 모든 재료를 올려서 ‘맹모닝’이라는 이름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맛은 역시나 비렸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는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해괴한 요리를 내놓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맞나”, “외모만 가지고 TV 출연을 했다”, “비린내도 못 잡으면서 요리사라 할 수 있나” 등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방송사 홈페이지도 하차를 요구하는 글이 며칠 새 수백 개나 달렸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빵 사이에 생선을 끼운 요리를 판매한다”, “모든 생선 샌드위치가 비린 것은 아니다”, “새로운 맛을 찾기 위한 도전이 아닐까” 하는 옹호 의견도 있었다. 이에 방송된 조리법을 그대로 재현해서 먹었다가 “역시나 비리다”고 평가한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꽁치로 샌드위치를 만들면 정말로 맛이 없을까. 맵지 않은 양념으로는 꽁치의 비린내를 잡을 수 없는 걸까. 다른 요리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셰프로 데뷔한 요리사가 있다.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다.

TV 예능프로그램의 요리사가 꽁치 샌드위치의 비린내를 잡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다. ⓒ JTBC

TV 예능프로그램의 요리사가 꽁치 샌드위치의 비린내를 잡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다. ⓒ JTBC

인지컴퓨팅으로 요리책까지 펴낸 슈퍼컴퓨터

왓슨은 지난 2011년 미국의 TV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 출연해 인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440만 달러(약 45억 원)로 제퍼디 역사상 가장 많은 상금을 받아갔던 출연자 브래드 러터(Brad Rutter) 그리고 74번으로 가장 오래 연속우승을 이뤄낸 출연자 켄 제닝스(Ken Jennings)와 대결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왓슨은 2800개의 CPU를 갖춘 슈퍼컴퓨터다. 보통 컴퓨터가 2시간 걸릴 계산을 3초만에 끝낼 수 있다. 퀴즈쇼에 참가할 때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 4테라바이트의 정보만을 내장했다. 사회자가 문제를 읽어주면 로봇 손가락으로 버저를 누르고 화면에 3가지의 답안 후보들을 보여준 후 확률 상으로 정답에 가장 가깝다고 계산되는 항목을 음성으로 말했다. 다음 문제의 분야도 인간 경쟁자들처럼 직접 읽어서 선택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왓슨은 인간의 생각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인지 컴퓨팅(congnitive computing)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요리책’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요리학교 ICE(Institute of Culinary Education)와 제휴해 세상에 없던 요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난 4월에 발매되어 현재 판매 중인 요리책의 제목은 ‘왓슨 셰프와 함께하는 인지 요리(Cognitive Cooking with Chef Watson)’다. 개발과정 소개와 더불어 65가지의 새로운 조리법이 담겼다. 올해 초 미국 오스틴에서 개최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발에서는 왓슨이 개발한 요리를 만들어주는 푸드트럭이 등장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요리는 무엇이 다를까. 왓슨 셰프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책에 담긴 조리법뿐만 아니라 새로운 요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http://www.ibmchefwatson.com) 특정 재료를 선택하면 왓슨이 원격서버에 저장된 기존의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 보여주는 식이다.

비린 생선을 조리할 때는 향신료, 허브, 술이 필수

여기에는 △클라우드 네트워킹 △빅데이터 분석 △인지 컴퓨팅의 3가지 기술이 사용되었다. 우선 클라우드 네트워킹은 서버에 담긴 수천 가지의 재료 정보를 섞어가며 결과를 확인한다. 여기에는 빅데이터 분석도 함께 사용된다. 수많은 재료를 섞는 과정에서 탄생한 조리법의 수만 해도 10의 18제곱 즉 1조의 100만 배인 100경 가지에 이른다.

이어서 인지 컴퓨팅은 주어진 요소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추가 질문을 던져 학습 능력을 높인다.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들을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분석해 정확한 맛과 향 그리고 식감과 모양새를 인지한 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조건을 찾아낸다. 사람의 미각을 정신물리학적으로 분석한 모델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해서 9가지의 추천 조리법을 내놓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왼쪽 끝에는 ‘정석대로(keep it classic)’라 써 있고 오른쪽 끝에는 ‘독창적으로(surprise me)’라 적힌 기다란 막대가 있고 그 위의 버튼이 좌우로 50단계씩 움직이며 하나의 재료당 100가지의 조리법을 보여준다. 재료 하나만 선택하면 총 900가지의 조리법을 개발해주는 셈이다. 모두 기존에 있던 음식이 아닌 왓슨이 새로 만들어낸 요리다.

슈퍼컴퓨터가 인지컴퓨팅과 빅데이터 기술로 만들어낸 요리책 '왓슨 셰프와 함께하는 인지 요리'

슈퍼컴퓨터가 인지컴퓨팅과 빅데이터 기술로 만들어낸 요리책 ‘왓슨 셰프와 함께하는 인지 요리’ ⓒ IBM

그렇다면 왓슨 셰프는 ‘꽁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선택할 수 있는 재료 중에 꽁치(saury)가 없어 가장 맛이 비슷한 ‘고등어(mackerel)’를 골랐다. 그러자 순식간에 결과가 나왔다. 밀전병에 싸먹는 타코(tacos), 화이트 소스로 졸이는 프리카세(fricassee), 수프처럼 생긴 차우더(chowder), 카레를 넣어 끓인 스튜(stew), 육회 무침과 비슷한 타르타르(tartare), 센불에 겉면을 빨리 익히는 시어(sear) 등 조리 방식도 여러 가지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요리에 고추, 마늘, 후추, 커리 등 맛과 향이 강한 향신료가 들어갔다. 맵지 않은 차우더와 화이트 소스의 프리카세에는 고수, 타임, 파슬리, 오레가노, 딜 등 많은 양의 허브를 집어넣었고 때로는 럼, 와인, 맥주, 브랜디, 아락, 마데이라 등 술을 넣기도 했다.

왓슨이 제시한 조리법들을 살펴보자 TV 속 꽁치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비린 생선을 쓸 때는 향신료를 넣은 매운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순한 맛을 내려면 허브와 술을 넣어서 냄새부터 확실히 잡았어야 했다. 왓슨은 재료를 썰지도 프라이팬을 뒤집지도 못하지만 20대의 셰프가 아직 체득하지 못한 노하우를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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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한성희 2015년 6월 4일1:08 오전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주체가 셰프 아닌 ‘왓슨’인 시대가 오겠네요. 아니면 사물인터넷시대를 맞아서 냉장고 자체에 미니 왓슨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tv에서 셰프를 볼 필요도 없이, 우리가 알아서 냉장고에 부착된 왓슨이 계산한 요리법대로 요리하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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