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마취 없던 시절의 수술 모습은?

[메디시네마 : 의사와 극장에 간다면] 박지욱의 메디시네마(15) 마스터 앤드 커맨드

로마제국의 막시무스 장군(2000년), 미국의 수학자 죤 내쉬(2001년), 영국 해군의 잭 오브리 선장(2003년), 영국의 로빈 훗(2010년), 파리의 자베르 경감(2012년), 구약 성경의 노아(2014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영화 배우는 누굴까요? 바로 러셀 크로우(Russel Crowe)입니다.

브라질 앞바다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해전

선이 굵은 남성적인 연기로 팬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새긴 영화는 <글래디에이터(2000년)>였고, 그 이미지를 지울 수 없도록 골수에 새겨버린 영화는 아마 <마스터 앤드 커맨더>(Master and Commander, 2003년)가 아닐까요?

영화의 무대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영국이 대치 중이던 1805년 4월, 브라질 앞바다입니다. 영국 해군 전함 <서프라이즈호>의 오브리 선장은 프랑스의 신출귀몰한 사략선 <아케론호>를 나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추격하지만 되레 역습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는 처지가 됩니다.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한 선장은 수리를 하기 위해 귀환하는 것도 포기하고 전속력으로 <아케론호>를 추격합니다. 하지만 다시 만난다 해도 최첨단 설계방식으로 제작된데다가 무장이나 병력에서 월등한 <아케론호>를 <서프라이저호>가 어떻게 감당해낼까요?

Master And Commander 영화 포스터.  ⓒ 포스터

Master And Commander 영화 포스터. ⓒ 포스터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오브리 선장이지만 영화로 보여주는 19세기 초 함선의 실생활도 큰 역할을 합니다. 그만큼 피터 미어 감독이 3개의 메이저 영화사가 지원하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치밀하게 당대를 고증해서 만든 영화이니까요. 특히 필자는 선의(船醫)인 스테픈 마투린의 활약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1814년 기준으로 영국 해군에는 14명의 내과의사(physician), 850명이 외과의사(surgeon), 그리고 500명의 의사 조수가 있었답니다. 감독의 착실한 고증을 참고로 당대에 활동했던 해군 외과의사의 활약상을 한번 살펴볼까요?

마취도 없이 자신의 몸에 칼을 댄 의사

<아케론호>와 1차 맞대결에서 3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자 마투린은 “바닥에 모래를 깔아라”는 말로 수술을 시작합니다. 왜 모래를 뿌릴까요? 설명은 없지만 바로 피 때문일 겁니다. 수술 부위에서 쏟아져 나올 피가 마루 바닥을 흥건히 적시면 바닥이 미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미끄러질 수도 있지요.

영화에는 세 번의 수술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투린이 스스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을 수술하는 장면입니다.

마투린이 총에 맞자 그를 치료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프랑스와 사이가 좋았다면 <아케론호>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프랑스 전함의 외과의사들 수준이 아주 높았습니다. 심지어 영국 넬슨 해군제독의 팔 절단 수술(1797년)도 프랑스 해군의사가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므로 마투린은 다른 환자들이 누리는 아편 마취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명료한 정신으로 그 고통을 온전히 참아내며 자신의 몸에 수술을 합니다. 다행히 수술에 성공해 목숨을 건지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누릴 수 있고, 수술하면 당연히 받는 마취의 역사는 어슬프긴 해도 생각보다는 오래되었습니다. 고통에 대한 감각을 억누르기 위해 쓴 마취약의 원조는 양귀비나 맨드레이크 같은 식물, 그리고 흔하게 얻은 알코올(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증 감각 마비 효과’는 충분하지 못해 팔다리를 절단이라도 해야한다면 환자가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면 건장한 장정 서너 명이 환자를 꽁꽁 붙들어 매어 ‘운동 마비’를 시킨 후에 의사는 재빨리 수술을 끝내야 했습니다.

‘웃기는 기체’가 마취약으로

마취법이 세상에 나온 것은 <서프라이즈호>의 성공보다 40년이 더 지난 일입니다. 영화에서 무적함선인 <아케론호>가 보스턴에서 양키들의 손으로 건조된 것처럼 마취법 역시 미국인들이 보스턴에서 처음 성공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쾌속 범선을 만들어낸 것처럼, 마취법을 발명하여 의학 역사 발전에 큰 획을 그어주었습니다.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처음 발견한 험프리 데이비(1778~1829). ⓒ 위키피디아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처음 발견한 험프리 데이비(1778~1829). ⓒ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 근원은 영국 화학자들의 손에서 시작합니다. 기체를 연구하고 새로운 기체도 합성하던 시절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체의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슬쩍 들이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산화질소(nitrous oxide)’라는 기체는 마시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그냥 히히 웃음이 나오고 마취-진통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마취 연구에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고 ‘웃기는 기체(笑氣))’라는 별명을 달고 파티석상에서 돌아가며 마시며 한바탕 웃고 떠드는 ‘유흥용’ 기체로 유명세를 탑니다.

지금도 치과용 흡입 마취제로 사용하는 아산화질소.  ⓒ 박지욱

지금도 치과용 흡입 마취제로 사용되고 있는 아산화질소. ⓒ 박지욱

나중에 롱이라는 미국 의사가 ‘에테르’도 ‘아산화질소’와 효과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에테르 마취로 환자들을 수술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웰스라는 치과의사는 ‘아산화질소’를 이용해 무통(無痛) 발치에 성공했고, 모턴이란 의사는 에테르를 이용해 무통 수술 공개 시연에 성공합니다. 1848년에 보스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케론호>을 만든 바로 그 양키들의 도시지요.

마취법의 발견 아니, 발명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외과의사들은 이제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수술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그냥 조용히 자는 환자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수술할 수 있었지요. 수술 시간의 제약에서 해방되자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도 가능해졌습니다. 뇌는 물론이고 복강, 골반 깊숙히 숨겨진 장기들도 이제 의사의 섬세한 칼끝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외과학은 19세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할 발판을 마련합니다.

의사 역을 맡은 배우 폴 베타니는 2년 전의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러셀 크로우의 룸메이트 역을 맡았던 배우입니다. 두 사람은 두번의 영화에서 아주 죽이 잘 맞았네요. 그리고 <뷰티풀 마인드>에서 크로우의 아내 역을 맡았던 제니퍼 코넬리와 영화를 통해 만나 결혼하였네요. 정말 훈훈한 영화지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정말 멋진 바다 사나이인 오브리 선장이 주인공이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 조언자, 그리고 첼로 협연자인 의사 마투린도 잘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배에 유능한 의사가 없었다면, 선장도 과감한 공격을 어쩌면 몇 번이고 망설였을지 모를 일 아닙니까?

하버드대 부속병원인 메사츄세츠종합병원(MGH)에 있는 에테르돔(Etherdome). 1848년 처음으로 공개적인 마취 수술이 성공한 장소다.  ⓒ 박광열

하버드대 부속병원인 메사츄세츠종합병원(MGH)에 있는 에테르돔(Etherdome). 1848년 처음으로 공개적인 마취 수술이 성공한 장소다. ⓒ 박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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