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마취 사고와 의료 분쟁

[메디시네마 : 의사와 극장에 간다면] 박지욱의 메디시네마(93) 폴 뉴먼의 심판

일류 변호사에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갤빈. 몇 년간 수임도 거의 없는 처지가 호구지책으로 초상집을 찾아 다니며 유가족들에게 소송을 하라며 명함을 돌리는 신세입니다. 그런 삶을 견딜 수 없던지, 갤빈은 알코올로 위로 받으며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그를 딱하게 여긴 옛 동료는 갤빈에게 쉬운 일거리 하나를 알선해줍니다. 의료 사고 분쟁이었습니다.

보스턴의 유명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던 젊은 여인이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었고, 병원은 가족에게 위자료를 제시하며 합의하려 합니다. 갤빈은 변호사로 이 과정에 개입해 합의금을 받아주고 수수료만 챙기면 됩니다. 한마디로 누워서 떡 먹기지요.

하지만 가족을 만나고, 중환자실을 찾아가 환자의 비참한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갤빈의 생각이 변합니다. 어정쩡한 합의가 아니라 병원의 명백한 의료 과오 책임을 물어 정의를 세우고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하지만 이면 합의가 아닌 정식 재판을 하게 되면 갤빈이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평판 좋은 대형 병원과 호전적인 로펌입니다. 퇴물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변호사인 갤빈이 어려운 소송에서 승리해 정의를 구현하고 피해자 가족을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마취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한 여인을 둘러싼 의료 소송, 소송이 진행되며 펼쳐지는 법조인, 의료인, 보호자의 갈등과 고뇌를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원제 <the verdict>는 배심원의 평결(評決)을 뜻합니다. 어떤 평결이 나올지 궁금하시지요?

영화의 배경은 미국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에는 하버드대학이 있고 아울러 그 부속병원인 매샤츄세츠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이하 MGH)이 있지요. MGH 는 지금도 세계 최고의 병원이지만, 170년 전에 ‘현대 마취’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영광을 안고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마취 사고 이야기라, 어째 조금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대 마취의 탄생과 더불어 그 이권을 둘러싸고 관련자들 사이에 벌어진 다툼과 분쟁은 의사들의 ‘더러운 싸움’으로 알려져 세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었네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한번 알아볼까요?

1848년 10월 16일, 그날에 기해 현대적 마취기술이 의학에 도입됩니다. 그 전까지는 마취 없는 수술이 당연했고, 많은 환자들이 감당하기 힘든 통증으로 쇼크를 일으켜 심장이 멎었습니다. 외과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날쌔고 과감하게 칼과 도끼를 휘둘러야 했습니다. 끔찍한 수술과 엄청난 고통은 의사와 환자 모두를 힘들게 했지요.

나관중의 『삼국지』는 독화살이 박힌 관우가 화타(華陀)의 수술을 받으며 태연히 바둑을 두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관우일 수는 없는 일이라 지극히 평범한 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마취를 시도합니다.

식물에서 얻은 진정제를 사용하면 왠만큼 아픈 것은 견딜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술, 아편, 상추, 사리풀, 맨드레이크, 오디, 홉 등이 수술장에 들어옵니다. (상추 먹으면 잠 온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었군요) 네로 황제의 군의관으로 약초학의 대가였던 디오코리데스(Diocorides)는 다양한 진정 효과를 내는 식물들을 이용한 마취법을 잘 정리해두었습니다.

근대기에 들면 공기의 성질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뜻하지 않게 마취의 새벽을 엽니다. 영국의 화학자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는 1772년에 ‘아산화질소(N2O)’를 발견했다고 합니다(논란이 있습니다). 1798년에 영국의 베도스(Thomas Beddoes)는 흡입 마취제에 관심을 갖고 브리스톨에 <기체 의학 연구소(Pneumatic Medical Institute)>를 세웠는데 초대 소장으로 데이비(Humphrey Davy)를 앉힙니다. 이 곳에서 데이비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연구합니다.

험프리 데이비 ⓒ 위키백과

험프리 데이비 ⓒ 위키백과

데이비는 자신은 물론이고 친구들을 아산화질소 마취 효과를 시험하고, 1800년에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가스를 흡입하면 두통과 치통이 사라지는 효과가 있으니 의사들이 수술을 할 때 쓰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을 끈 것은 ‘가스를 흡입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연구소도 이 가스를 ‘웃음 가스(笑氣; laughing gas)’라고 불렀습니다.

덕분에 웃음 가스는 의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합니다. 모임에서 둘러앉아 가스를 돌려가며 흡입하고 서로 웃고 떠드는 놀이를 하는 것이 대유행을 합니다. 이유는 몰랐지만 이 가스를 마시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실실 나왔습니다. 이런 장면은 최근에 우리에게도 눈에 익은 풍경이었지요? ‘해피 벌룬’ 혹은 ‘마약 풍선’으로 알려진 이 것, 바로 그 성분은 아산화질소였습니다.

아산화질소 뿐만 아니라 ‘에테르(ether)’도 들이마시면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에테르 마시기도 덩달아 유행을 하지요. 곳곳에서 에테르 파티나 웃음 가스 파티가 열렸고, 처음에는 낄낄거리고 웃다가 나중에는 난장판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가 미국 조지아 주에서 일하던 의사 롱(Crawford W Long)은 에테르를 마신 사람이 넘어져 심하게 다쳤는데도 전혀 아픈 내색을 안 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에테르를 쓰면 무통(無痛) 수술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1842년 봄에 롱은 환자의 코에 에테르를 적신 수건을 대어 마취를 유도하고 환자의 목에 난 혹을 잘라냅니다. 수술 동안 환자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역사상 처음으로 ‘기체를 이용한 무통수술’이 성공했습니다. 이후로 7년 동안 매년 환자 한두 명에게 에테르 무통수술을 해주었지만, 이 사실을 굳이 세상에 알리지는 않습니다.

한편, 1844년에 코네티컷에서 일하던 치과의사 웰스(Horace Wells)는 웃음 가스 파티에 갔다가 다리를 심하게 다칩니다. 하지만 가스를 마신 상태라 아픈 줄을 모릅니다. 웰스 역시 이 특이한 경험을 가벼이 넘기지 않습니다. 동료에게 부탁해 자신이 직접 가스를 마시고 어금니를 뽑는 생체 실험을 당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어금니가 말끔히 뽑혀 있었으니까요.

이 후 15명에게 무통 발치(拔齒)를 시도해서 성공합니다. 이제 웰스는 자신감을 가졌고 1845년 2월에 의학의 수도인 보스턴으로 가서 과거의 동업자였던 후배 치과의사 모튼(William TG Morton)을 만납니다. 하버드대학의 의사들과 인맥이 두터웠던 웰스를 통해 실력 있는 외과의사를 소개받아 자신의 성공을 실증하고 싶었으니까요. 모턴은 MGH의 외과과장인 웨렌(John C Warren)을 소개해줍니다.

웨렌은 웰스를 많은 학생들과 의사들 앞에서 무통 발치를 시연하도록 초청합니다.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원한 학생의 이를 뽑도록 했지요. 하지만 웰스는 너무 긴장했을까요? 마취 강도가 너무 약했던지 학생은 발치 도중 아프다고 머리를 흔들고 말았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벌어진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이 한번의 실패는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주었고 이후로의 삶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마치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한 갤빈처럼 말입니다.

한편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중계자 모튼은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기체 화학에 대해 잘 몰랐던 그는 안면이 있던 화학자 잭슨(Charles T Jackson)의 자문을 얻어 비밀리에 에테르 무통 발치술을 개발합니다. 반 년이 지난 9월에 에테르 무통 발치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워렌을 찾아갑니다.

MGH에서 있었던 최초의 에테르 무통 수술 장면.  ⓒ 위키백과

MGH에서 있었던 최초의 에테르 무통 수술 장면. ⓒ 위키백과

1846년 10월 16일에 모튼은 자신이 직접 데려온 환자를 MGH의 공개 시연장에 누이고, 자신이 에테르(특허를 대비해 성분은 비밀로 했습니다) 마취를 합니다. 환자는 잠이 들었고 워렌은 25분 동안 환자의 턱에 있는 혈관종을 말끔히 제거합니다. 이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취는 그다지 과학적인 검증이나 논쟁 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효과는 척척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특이하게도 이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은 대학의 교수나 연구실의 과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재야의 (치과) 의사들이었지요. 그들이 발견하고 가다듬은 현대 마취법은 의학의 가장 큰 혁신 중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늘도 컸습니다. 누가 이 위대한 일을 처음 했는가를 두고(그에 따른 영광과 금전적 이득을 두고)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에테르에 대한 자문을 해주었던 잭슨은 모튼에게 이익의 10%를 요구했고, 무통 수술의 개념을 알려주었던 웰스도 자신의 업적을 빼앗겼다고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롱도 이미 7년 전부터 해오던 일이라며 마취의 친아버지를 확인하기 위한 더러운 싸움이 벌어집니다.

날선 공방전은 서로의 삶도 갉아내고 맙니다. 웰스는 34세에, 모튼은 49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잭슨도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죽습니다(75세). 그나마 지저분한 싸움에서 손을 뗀 롱만이 정상적으로 살았습니다. 롱은 ‘에테르’로 산모의 무통 분만을 무사히 마친 직후에 뇌졸중으로 죽습니다. 의사로서는 영광스럽게도 진료 현장에서 죽은 것이지요. 사후에 롱은 최초로 에테르 마취를 도입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살아서도 자신의 일을 계속 할 수 있었고, 죽어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으니 롱이 이 싸움의 진정한 승자였을까요?

지금도 MGH 는 매년 10월 16일을 ‘에테르의 날’로 기립니다. 롱, 웰스, 모튼.. 누가 그 일을 처음 했던 간에 1848년 10월 16일에 최초의 마취 수술이 MGH 에서 성공한 것은 사실이니 그 날을 기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시연장은 ‘에테르 돔(Ether Dome)’으로 불리며 사적지로 보존 전시되고 있습니다. 마취야 말로 미국이 의학사에 남긴 가장 굵직한 업적이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젠가 한번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MGH, 2006년.  ⓒ 박지욱

MGH, 2006년. ⓒ 박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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