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울려 퍼진 과학의 함성

울릉도서 진행된 ‘이동형 무한상상실’ 현장

강릉, 포항 등 동해안까지 가서도 거친 바다를 뚫고 최소 3시간. 하루 배편 한두 척이 고작이지만, 가끔 기상이 악화되면 아예 출항을 멈춰 발이 묶일 수 있는 곳.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연간 4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해 추억을 쌓아가는 섬이 있다. 바로 울릉도다. 사방에 펼쳐진 산과 바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확 열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영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는 닫힌 공간이기도 하다. 섬의 산업이 어업, 관광업 등에 치중돼 있어 과학기술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 공간, 특히 창의성을 발휘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에 지난 22~23일 울릉도 일대 학교서 진행된 ‘찾아가는 무한상상실-2019 챌린지 프로그램’ 행사는 과학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자리가 됐다. 22일 오전에는 천부초등학교에서 ‘3D프린터 및 3D펜 활용 창작물 제작’이, 23일에는 저동초등학교와 울릉중학교에서 ‘미세먼지측정기 제작’, ‘VR 체험’, ‘3D프린터 활용 창작물 제작’, ‘Making&Thinking 미니카 대회’ 등의 다양한 체험이 진행돼 많은 호응을 얻었다.

무한상상실 홈페이지를 통해 프로그램 참여 신청 및 장비 예약을 할 수 있다.  ⓒ 무한상상실 홈페이지

무한상상실 홈페이지를 통해 프로그램 참여 신청 및 장비 예약을 할 수 있다. ⓒ 무한상상실 홈페이지

무한상상실은 국민들이 가진 창의성, 상상력, 아이디어를 창작 활동과 연결할 수 있도록 공간 및 기자재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무려 43만 명의 인원이 상상을 실체로 구현하는 경험을 하며 과학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현재 전국의 과학관, 공공기관, 대학 등 20곳에서 운영 중이며, 홈페이지(https://www.ideaall.net/)를 통해 프로그램 참여 신청 및 장비 예약을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 ‘이동형 무한상상실’은 지역 과학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은 무한상상실이 소외지역 및 소외계층을 직접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에만 12군데의 도서벽지 학교를 방문하는 등 총 180회에 걸쳐 3960명의 아이들이 과학의 기쁨을 누렸다.

무한상상 나래 속 반짝이는 눈망울

23일 오전 저동초등학교 강당에서 진행된 무한상상의 현장은 말 그래도 열광적이었다. ‘레진 아트’, ‘3D 프린팅’, ‘버튼 프레스를 활용한 나만의 굿즈 제작’ 등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로 이날 모인 121명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저동초 학생들이 미니카를 조립하고 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저동초 학생들이 미니카를 조립하고 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이날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프로그램은 미니카 만들기였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조립을 시작하자 살짝 술렁이던 행사장의 데시벨은 삽시간에 올라갔다.

“너무 어려워요. 좀 도와주세요.”

“내가 연결할게. 이거 봐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잖아. 그냥 선생님 불러!”

바퀴 하나 연결 못하고 울상을 지으며 도와달라는 목소리, 친구에게 잘난 척하는 목소리, 또 그에 맞서 격한 의견 충돌을 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러 퍼졌다. 다행히 진행요원들의 재빠른 대처로 1시간가량이 지나자 소란은 잦아들었다.

다음 차례는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주행 및 경주. 언뜻 보기에도 근사한 트랙에서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시험하는 것에 가슴 뛰지 않을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모든 출발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저동초에서의 무한상상은 무르익어갔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미니카가 주행을 시작하는 순간, 온 학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리고 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미니카가 주행을 시작하는 순간, 온 학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리고 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안정적 과학거점 구축 필요”

이번 행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교사에게도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저동초등학교의 정보부장인 손원용 교사에게 울릉도는 순수한 아이들의 공간이다. 그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이 정말 순수하다. 특히 정보나 체험활동이 제한적이기에 무엇을 해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과학 체험활동 기회가 적고, 교통편이 불편한 울릉도는 손 교사에게 안타까운 공간이기도 하다.

“1년에 1~2번 정도 소방서에서 소방 관련 체험 활동을 합니다. 1시간 정도면 끝나는 이 활동을 위해 울릉도의 모든 학생들이 모이곤 하죠. 그런데 북쪽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행사장까지 오는 데만도 1시간입니다. 1시간 내려와서 1시간 행사하고, 1시간을 다시 올라가는 과정에서 하루 일정이 전부 어긋나게 됩니다.”

그는 이어 “중요한 과학 행사에 참여하려면 포항까지는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소 2박 3일이다. 비용이나 시간도 문제지만, 인솔자까지 있어야 하기에 사실상 쉽지 않다”라며 “안정적인 과학문화 거점을 구축하여 이번 행사 같은 유익한 체험 활동이 정기적으로 진행된다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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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 아트’, ‘버튼 프레스를 활용한 나만의 굿즈 제작’ 등 다른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레진 아트’, ‘버튼 프레스를 활용한 나만의 굿즈 제작’ 등 다른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이동형 무한상상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이동형 무한상상실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이날 행사를 진행한 조은경 포항공과대학교 연구원 역시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지속가능성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경북권은 정말 넓습니다. 지역의 과학문화 확산 거점에 대해 고민하다가 ‘찾아오는’ 프로그램보다 ‘찾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핵심은 연속성.

조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스스로 메이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학교, 도서관 등 소규모 지역 거점의 역량을 발전시켜 지속가능한 과학체험활동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과학 체험을 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다.

이와 관련해 조 연구원은 “창작 활동에 대한 장벽이 높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지역 내에서 스스로 과학체험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인적·물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조 연구원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장에 맞는 기자재 도입이나 컨설팅,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을 통해 연속성 있는 과학체험 활동을 이어나가게끔 준비하고 있다”고 조 연구원은 밝혔다.

누구나 과학을 즐길 권리가 있다. 이를 알기에 전국의 무한상상실에서는 과학체험의 거점을 마련하고, 구석구석 찾아가며, 궁극적으로는 과학의 즐거움을 스스로 누리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울릉도를 가득 채운 저동초 학생들의 열정은 그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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