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동물 연구도 외모 지상주의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못 생긴 동물들일수록 멸종 위기에 몰려

영국 BBC 방송에서는 외모 중시 풍조가 법정 판결에서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가상의 법정 사건을 보도하면서 실험 대상인 시청자 집단을 A와 B로 나눠 A집단에게는 피고인의 사진으로 못 생긴 청년을, B집단에게는 멋진 청년을 제시한 것.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똑 같은 사건이었지만 못 생긴 청년에게는 40%가 유죄 판결을 내렸고, 미남 청년에게는 29%만 유죄 판결을 내린 것.

슬픈 일이지만 부모들도 자기 자녀들을 외모에 따라 차별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대형 쇼핑몰에서 이뤄진 한 관찰조사 결과에 의하면, 못 생긴 자녀의 경우 부모가 쇼핑에 정신이 팔려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례가 13%에 달한 반면 예쁜 자녀는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의 외모가 부모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여러 새끼들을 한번에 낳아 양육하는 동물의 경우 덩치가 크고 건강하게 생긴 새끼에게 선별적으로 먹이를 주고 그렇지 않는 새끼는 잘 돌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 세계에서의 이 같은 차별은 어미들이 새끼 양육이라는 힘든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 진화된 특성으로 해석한다.

2013년 약 10만 명의 네티즌이 참가한 투표에서 ‘가장 못 생긴 동물’ 1위에 뽑힌 블로브피시. ⓒ 유투브 캡처 화면

2013년 약 10만 명의 네티즌이 참가한 투표에서 ‘가장 못 생긴 동물’ 1위에 뽑힌 블로브피시. ⓒ 유투브 캡처 화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 기간 어미의 보호 없이는 살 수 없는 포유류 새끼들에게서는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가 발달했다. 돌출부가 작고 둥그스름한 머리, 작은 코, 정면을 향하는 큰 눈 등 사람과 동물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아기의 귀여운 특성이 바로 베이비 스키마다. 이 특성은 어미나 다른 성체로부터 양육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해, 베이비 스키마가 뚜렷할수록 보호 및 부양 행동이 촉진되는 반면 공격성은 낮아지게 된다.

못 생긴 동물들은 관련 연구 논문 수 적어

하지만 진화계통수 상 인간과 멀리 떨어진 동물의 경우 베이비 스키마는커녕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발달한 외모 자체가 혐오스러운 개체들이 많다. 우리 주변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귀가 좋은 사례 중 하나다.

2005년 미국 과학전문매체인 ‘라이브 사이언스’가 주최한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동물 콘테스트에서 3위를 차지한 아귀는 그 못난 외모 덕분에 몇십년 전만 해도 어부들이 잡으면 그냥 물속에 도로 던져버릴 정도로 흉물 취급을 받았다. ‘물텀벙’이라는 아귀의 별명도 잡으면 바로 바다에 버렸다고 해서 얻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아귀처럼 흉측한 외모를 가진 동물들은 학계의 연구에서 아직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동물학술지 ‘매멀 리뷰 저널’ 최신호에 게재된 호주 머독대학의 트리시 플레밍 교수와 커틴대학의 빌 베이트먼 교수의 공동 연구 논문이 바로 그것.

연구진은 1901년 이후 호주 정부 자금을 받은 포유류 관련 연구논문 1400여 개를 분석해 거기에 포함된 331종 포유류를 3가지 항목으로 분류했다. 즉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호주에서 원래 살았던 토착 동물은 ‘좋은 동물’군으로, 유럽토끼나 붉은여우, 야생고양이 등 외부에서 들어와 토착 생물에 해를 끼치는 외래종은 ‘나쁜 동물’군, 그리고 박쥐와 설치류 등 흉측한 외모를 지닌 동물은 ‘못 생긴 동물’군으로 나눈 것.

그 결과 못 생긴 동물로 분류된 종은 전체의 45%에 달할 만큼 월등히 수가 많았지만, 관련 논문은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좋은 동물에 대한 연구논문은 월등히 많았으며, 못 생긴 동물에 비해 유력 학술지에도 논문이 더 많이 실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돈’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잘 생기고 인기 있는 동물은 정부 및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기 쉽지만, 못 생기고 관심이 덜한 동물에게는 자금 지원이 되지 않아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생태계 종의 다양성 유지에 큰 위협

문제는 못 생긴 동물들이 이처럼 관심을 받지 못함에 따라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에 의하면 유럽인 정착 이후 호주에서만 20여 종이 멸종됐으며, 현재 추가로 20여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약 10만 명의 네티즌이 참가한 투표에서 ‘가장 못 생긴 동물’ 1위에 뽑힌 블로브피시가 비슷한 사례다. 호주 및 뉴질랜드 연안의 수심 600~1200m 심해에 서식하는 이 물고기는 근육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살이 흐물흐물해 수영도 잘하지 못하는 독특한 종이다.

그런데 정작 더 슬픈 일은 평화롭게 살던 이 물고기가 최근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바닷가재와 게 등을 잡기 위한 저인망 어업으로 인해 이 물고기까지 싹슬이 되고 있기 때문. 식용 어종은 아니지만 못 생긴 외모로 인해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보호의 손길도 미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동물의 미를 인간을 잣대로 평가한다는 건 오만이다. 생태계 보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의 다양성인데, 인간의 오만이 그 같은 종의 다양성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블로브피시를 못 생긴 동물 1위로 뽑는 이벤트를 개최한 단체는 영국의 ‘못 생긴 동물보호협회’다. 귀엽고 인기 있는 동물뿐 아니라 못 생긴 동물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단체의 설립 목적이다. 앞으로는 정말 ‘못 생긴 동물 보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모양이다.

(11058)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