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4,2019

독버섯으로 우울증 치료한다?

청자고둥 독은 항암제로 개발… 이이제이 방식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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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 ‘이이제이(以夷制夷)’ 바람이 불고 있다. 이이제이란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서, 자신의 적을 제압하는데 있어 또 다른 적을 이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의료 분야와 이이제이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의외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이이제이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 wikipedia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이이제이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 wikipedia

예를 들면 버섯에 포함된 환각 성분이나 조개에 들어있는 독성 성분이 바로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물질로 존재하다가도, 어떤 특정 질병만 만나면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는 이이제이 성분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링크)

마법 버섯이 보유하고 있는 진통 및 환각 성분

버섯 중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버섯보다 먹을 수 없는 버섯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이른바 독버섯이라 불리는 존재들인데, 먹으면 죽게 되는 치명적인 버섯부터 시작하여 두드러기 같이 가벼운 부작용만 발생하는 버섯까지 종류만 해도 무척 다양하다.

그런 독버섯들 중에서도 ‘마법 버섯(magic mushrooms)’이라는 이름의 버섯은 독특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환각 성분이다. 환각버섯속(psilocybe)에 속하는 이 버섯을 사람이 섭취하게 되면 즉시 환각 증상이 나타나게 되고, 반복해서 섭취하다 보면 마약처럼 중독 현상까지 발생하게 된다.

마치 삿갓을 쓴 것처럼 보여 일명 ‘삿갓 버섯’으로도 불리는 이 버섯은 원산지가 중남미다. 강력한 진통 기능과 함께 환각 증세까지 일으키는 성분 때문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만병통치약으로도 여겨져 왔다.

이 같은 버섯의 효능을 눈여겨 보았던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연구진은 마법 버섯 속에 들어있는 사일로사이빈(psilocybin)이라는 성분이 진통 및 환각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석 결과 사일로사이빈이 세로토닌 촉진물질(serotonin agonist)임을 확인한 연구진은 이를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우선 19명의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사일로사이빈 투여 실험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10mg의 용량을 투여했고 1주일 후에 다시 25mg을 투여했는데, 그 결과 환자들의 우울증 증상이 호전된다는 점을 파악했다.

마법 버섯의 주요 성분인 사일로사이빈의 구조식

마법 버섯의 주요 성분인 사일로사이빈의 구조식 ⓒ Johns-Hopkins.edu

조사에 참여했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한 관계자는 “사일로사이빈 투여 후 우울증 환자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시스템(MRI)으로 촬영한 결과 뇌의 편도체(amygdala)의 기능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히며 “편도체는 스트레스나 분노와 같은 감정에 작용하는 부위로서 사일로사이빈의 영향으로 환자들은 안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진이 사일로사이빈의 환각 효과를 활용하여 우울증 치료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면, 미국 UCLA대의 연구진은 진통 효과를 중심으로 다양한 적용 방안을 개발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UCLA 연구진이 12명의 말기암 환자들에게 사일로사이빈을 투약한 결과, 대부분의 환자들이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한채 편안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직장암 말기환자였던 팸 사쿠다(Pam Sakuda)의 경우는 사일로사이빈의 탁월한 진통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유명하다. 사일로사이빈 임상 테스트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번져서 생존기간이 길어봤자 1년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았던 환자였다.

그러나 사일로사이빈을 정기적으로 투여받고나서부터 사쿠다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그는 고통에서 해방되자 그랜드 캐년까지 등반할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고, 그렇게 남은 인생을 고통없이 4년을 더 살다가 숨을 거뒀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임상 테스트를 총괄했던 UCLA대의 찰스 그로브(Charles Grobe) 교수는 “말기암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현재는 호스피스들이 환자 곁을 지킨다”라고 말하며 “하지만 사일로사이빈이 상용화되면 호스피스들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양한 치료제로 활용될 청자고둥의 독성 물질

버섯의 환각제 성분을 우울증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사례는 청자고둥(cone snail)이 가진 독성 물질인 코모톡신(conotoxin)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청자고둥은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강력한 독을 가진 어패류 중 하나인데, 이 같은 코모톡신을 무기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미국 국립표준기술 연구소(NIST)의 프랭크 마리(Frank Marí) 박사와 연구진은 현재 코모톡신을 활용하여 유용한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코모톡신이 가진 속효성 마비 기능과 세포막을 빠르게 녹이는 기능, 그리고 중추신경계 자극 기능을 활용한 치료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자고둥의 독을 이용하여 다양한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청자고둥의 독을 이용하여 다양한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 UCLA

속효성 마비 기능은 코모톡신이 가진 순식간에 신경을 마비시키는 능력 때문에 가능하다. 이 같은 코모톡신의 기능에 대해 마리 박사는 “투여되자마자 마비를 시킬 수 있는 기능은 차세대 항암제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세포막을 약하게 하거나 녹일 수 있는 기능은 불임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의견이다. 코모톡신과 비슷한 성분이 포유류의 정자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는 정자가 난자의 세포막을 녹이고 들어가 수정을 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기능은 초파리 뇌의 반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는데, 실험을 통해 코모톡신이 운동과 관련된 신경 중추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코모톡신이 앞으로 파킨슨 병과 같은 신경질환을 치료하는 물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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