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도시 발달의 척도, 무도회

테에폴로의 <루브르의 미뉴에트>

도시가 발달할수록 주택과 교통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인간 생활이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와 함께 유흥시설도 생겨난다. 종교인이 아니고서는 누구나 사는 것에 불만이 있고 그 불만을 해소할 장소가 필요하고, 사람들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장소가 바로 유흥시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흥시설은 때때로 도시 발달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특별한 유흥시설이 없었던 과거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 무도회였다. 혼자 놀 수 있는 무언가가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혼자 노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즐겁게 놀 때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1754~55년, 캔버스에 유채, 81*105.

<루브르의 미뉴에트>-1754~55년, 캔버스에 유채, 81*105.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도시 광장에서 열린 무도회에 참석해 즐겁게 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 테에폴로의 <루브르의 미뉴에트>다.

광장 중앙에 화려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스커트를 들어 올린 채 왼발을 앞으로 내밀며 춤을 추고 있고, 앞에 있는 젊은 남자 역시 발을 들고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추고 있는 여인 뒤에는 검은 모자와 수염이 달린 노인, 가면을 쓴 남자, 검은 모레타 가면과 부채를 든 여인이 앉아 있다. 왼쪽에는 검은 삼각모자와 케이프를 한 바우타 남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얇은 천으로 된 모자를 쓴 여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상단 조각상 아래 테라스에는 구경꾼들이 춤추는 남녀를 구경하고 있고, 그 옆에는 마차를 탄 마부가 목을 빼고 구경하고 있다.

창문이 열려 있는 건물 앞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베이스, 목이 긴 금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앉아 있다.

여인이 왼발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미뉴에트를 곡에 맞추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미뉴에트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17~18세기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춤으로 쌍쌍이 짝을 지어 추는 춤 형식을 의미한다.

춤추는 남녀를 관람하고 있는 여인들이 들고 있는 부채는 날씨가 덥다는 것을 나타내며, 왼쪽과 오른쪽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녀는 구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악사들 위에 열린 창문 발코니에 기대어 무도회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건물의 주인으로 귀부인을 나타낸다.

왼쪽의 머리에 삼각 모자를 쓴 남자의 옷차림과 모자는 17~19세기 베네치아 남자들의 전형적인 옷차림이며, 바우타 가면은 카사노바를 뜻하는 가면으로 얼굴 전체를 덮는 것이 특징이다. 여인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여성용 가면 모레타로 타원형으로 눈구멍만 크게 뚫어 만들며, 크기는 얼굴의 중심부만 가려 신원을 숨길 수 있게 했다.

바우터 가면을 쓴 남자와 모레타 가면을 쓴 여인은 베네치아 카니발이라 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매년 사순절 날까지 10일간 열리는 베네치아 카니발은 12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세계 10대 축제에 속한다. 카니발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새기며 금욕을 해야 하는 사순절 기간이 시작되기 전 풍족하게 먹기 위해 연회를 벌리고 서커스, 가면무도회, 거리 축제 등을 즐기던 풍습에서 유래한다.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1727~1804>의 이 작품에서 가면을 통해 베네치아라는 것을 나타내지만, 곤돌라 대신 마차에 탄 마부가 카니발을 구경하는 모습은 내륙도시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도회는 카니발 기간에만 열렸었는데,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해 거대 도시가 탄생하면서 전문 무도회장이 생겨난다. 후에 전문 무도회장은 가난한 청춘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다.

-1876년, 캔버스에 유채, 131*175.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년, 캔버스에 유채, 131*175. ⓒ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전문 무도회장을 그린 작품이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다.

조명이 밝게 켜 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장 중앙에는 청춘 남녀들이 춤을 추고 있고, 오른쪽 하단에는 술병과 술이 놓여 있는 탁자 사이에 한껏 멋을 부린 남자와 여자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1860년 몽마르트는 시골이었지만 파리로 통합되면서 값싼 월세 때문에 노동자, 농부, 재봉사, 상인 등등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던 방앗간 물랭 드 라 갈레트도 도시로 통합되면서 일거리가 없어져 힘들어지자 주인이 시설을 개조해 음식점으로 만들었다.

일요일이면 가난한 젊은이들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기 위해 몰려들면서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서 춤은 상류층이든 노동자든 가장 선호하는 여가 활동이었다.

젊은 청춘들이 물랭 드 라 갈레트를 특히 좋아했던 것은 이곳에서 열리는 댄스파티 때문이었다. 댄스파티에서 젊은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스퀘어 댄스 뿐만 아니라 파트너와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왈츠를 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열 명의 악사들로 구성된 밴드가 오후 세시부터 밤 열시까지 음악을 연주했었다.

오른쪽 하단 진주로 장식한 헤어넷을 하고 있는 잔이 동생에게 몸을 숙이고 있다. 두 소녀는 재봉사로 르누아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여인상과 맞아 떨어져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소녀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들은 르누아르의 친구들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는 남자는 피에르 프랑 라미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는 노베르 고네트,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조르주 리비에르다. 그들은 모두 화가였으며 르누아르를 위해 모델이 되었다. 르누아르의 친구들과 가난한 이웃들은 이런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파티를 즐겼다.

무도회장을 비추고 있는 가스등과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손님들의 얼굴과 옷을 비추고 있는데, 이는 오후 시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멀리 식당 입구에는 많은 남자 여자들이 서 있다. 당시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에는 여성들의 입장이 허용되었으며, 남자는 역간의 입장료를 내야 했고 여성은 무료였다.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물랭 드 라 갈레트 근처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찾았으며 그곳에 유쾌하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좋아해 이 작품을 제작한다.

르누아르는 빠른 붓놀림으로 즐겁고 들뜬 찰나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빛과 그늘을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서 빛의 효과를 연구했던 인상주의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2481)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