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달의 기원, 갈수록 미스터리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56

지난 9월 25일, 26일 양일간 영국 버킹엄셔에서 열린 영국왕립학회 주최 위성 학술발표회에서는 달의 기원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 발행되는 학술지 ‘네이처’ 12월 5일자 표지에는 지구 둘레에서 달이 막 형성되는 장면을 묘사한 이미지가 실렸다. 달의 기원에 대한 가설은 오래 전에 나왔고 많은 증거가 이를 입증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이다. 도대체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었기에 ‘달 리메이킹(Remaking the Moon)’이라는 상업잡지 같은 제목까지 등장하게 됐을까.

▲ 거대충돌설은 달의 기원에 대한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1970년대 제안된 충돌설(A)은 화성만한 천체가 초기 지구에 충돌했다는 시나리오로 지구와 달의 동위원소비율이 비슷하다는 데이터를 설명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다. 지난해 새로운 충돌설 두 가지가 나왔는데, 빠르게 회전하는 초기 우주에 작은 천체가 충돌하는 시나리오(B)와 초기 지구와 거의 비슷한 천체가 충돌하는 시나리오(C)가 있다. 그러나 이들 시나리오 역시 부자연스러운 면이 많다고 한다. ⓒ‘사이언스’


먼저 최근까지 무난하게 인정받고 있었던 달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거대충돌설(giant-impact thory)을 보자. 약 45억 년 전 어느 날 초기 지구에 화성만한 거대한 천체가 충돌했다. 이 엄청난 사건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졌음은 물론이고 내부구조도 완전히 뒤죽박죽이 됐다. 또 충돌로 인해 온도가 수천도로 올라가면서 많은 물질이 녹아내렸다.

물론 충돌한 천체(이를 ‘테이아(Theia)’라고 부른다)도 박살이 나면서 대부분은 지구에 흡수됐다. 시간이 지나며 테이아의 질량 대부분이 포함된 새로운 지구가 형성됐고, 충돌 과정에서 떨어져나간 파편(대부분은 테이아에서 유래)의 이 응축하면서 달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달의 질량은 지구 질량의 80분의 1 정도다.

이 시나리오는 철이 지구 질량의 30%를 차지하는 반면 달 질량의 10%도 채 안 되는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철은 초기 지구 중심에 풍부했을 것이므로 충돌 파편 위주로 만들어진 달에는 당연히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달에는 휘발성 원소의 비율도 적은데, 역시 형성 초기 고열로 인해 기체화된 원소를 인력이 미약한 달이 붙잡아놓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위원소비율 너무 비슷해

그런데 지난 수년 사이 과거 아폴로 탐사에서 가져온 달의 암석을 정밀하게 분석하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즉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확률이 희박할 정도로 지구와 달 사이에 너무나 값이 비슷한 데이터가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달과 지구에서 암석의 산소 동위원소비가 거의 똑 같다. 그런데 달은 대부분 테이아에서 비롯됐고 지구의 경우 테이아의 비율은 10~15% 정도일 것이다. 결국 데이터와 가설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원시 지구와 테이아의 산소 동위원소비율이 원래부터 거의 같았다고 봐야하는데 개연성이 낮다는 것. 참고로 화성과 지구의 경우 비율 차이가 50배나 된다. 이 밖에도 텅스텐, 크로뮴, 타이타늄 같은 원소의 동위원소비도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나 이 모두를 우연이라고 하기가 곤란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기존 거대충돌설의 결함을 해결하는 새로운 충돌 시나리오 두 가지가 나란히 소개됐다. 미국 하버드대 지구행성과학과 연구진은 빠르게 자전하는 초기 지구에 작은 테이아가 충돌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예를 들어 지구 질량의 2% 정도로 달보다 2배 정도 무거운 테이아가 충돌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면 지구와 달에서 위의 동위원소비율에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 미국 웨스트연구소의 로빈 캐넙 박사가 제안한 시나리오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한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단계별로 설명한다. 행성의 온도는 색으로 표시했는데 파란색은 2000도 미만, 빨간색은 6400도 이상을 뜻한다. 1. 크기가 비슷한 두 행성이 충돌했다. 2. 충돌로 천체가 뭉개졌다. 3. 충돌 수 시간 내 파편들의 온도가 올라가며 녹아내렸다. 4. 행성 둘이 다시 충돌했다. 5. 철 성분이 질량 중심으로 모였다. 6. 초기 지구는 빠르게 회전했다. 7. 나선팔이 원반처럼 퍼졌는데 파편의 전체 질량은 달의 3배 정도다. 8(위). 약 100년에 걸쳐 파편 원반에서 달이 형성됐다. 8(아래). 수만 년 사이 지구의 자전속도가 달과 해 사이의 공명의 영향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사이언스’


한편 사우스웨스트연구소의 로빈 캐넙 박사는 반대로 오늘날 지구 질량의 30~45%에 이르는 커다란 테이아가 거의 비슷한 크기인 초기 지구(현재 지구보다 작다)와 충돌해 둘이 섞이면서 새로운 지구를 형성하고 파편이 모여 달이 됐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다. 역시 동위원소비율 문제를 해결하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캐넙 박사는 12월 5일자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를 포함해 지난해 발표된 새로운 가설들 역시 기존의 거대충돌설과 마찬가지로 결함이 있다고 고백했다. 즉 기존 가설은 두 천체의 충돌이라는 단순한 사건의 결과로 오늘날 지구와 달을 설명했고 최근 동위원소비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가설이었던 반면,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가설들은 작위적인 전제조건들이 많아 역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

즉 하버드 연구진의 시나리오는 충돌 뒤 형성된 지구와 달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 이 과잉의 각운동량이 현재 수준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과연 그랬을 지가 의문이라는 것. 자신의 시나리오 역시 거의 비슷한 크기의 천체가 충돌하는 상황을 가정하기 때문에 개연성이 매우 낮다는 것.

캐넙 박사는 글 말미에서 뜻밖에도 금성에서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즉 기존의 충돌설이 지구와 달의 동위원소비율이 다를 것이라고 추정하는 건, 초기 지구와 테이아의 동위원소비율이 다를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인데(달은 주로 테이아의 파편으로 이뤄져 있으므로), 이는 화성의 운석을 분석한 결과 화성의 동위원소비율이 지구와 다르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만일 금성의 암석을 분석한 결과 지구와 동위원소비율이 비슷하게 나온다면, 화성이 예외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기존 충돌설을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달의 기원을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도 금성 탐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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